이곳에 앉아 있으면 아침에는 파랗게 변해가는 하늘을 볼 수 있고 점심에는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얼굴로 맞을 수 있다. 해가 떨어지는 시간이 되면 매일 다른 하늘을 창틀을 프레임 삼아 그림을 보듯 넋놓고 바라볼 수 있다. 유난히 뜨거웠던 여름 하늘은 노을도 그 열기 만큼이나 장관을 이루는데 색의 변화는 순식간에 일어나 찰나를 눈으로 직접 담지 못하면 아쉬워 돌아서기도 여러번이었다.
건물의 그림자가 점점 길어지는 요즘은 해가 떨어지고도 남아 있는 빛이 어슴푸레 창문을 비집고 들어와 고요히 앉아 있으라 권한다. 그럴 때면 오색찬란했던 색으로 연주를 일삼던 하늘은 오간데 없고 빛은 빌딩의 윤곽선만 남길 뿐 유유히 시간 속으로 함께 사라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 시간 속에 나의 하루도 자취를 감추는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러한 감정들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고 또 그러한 습관을 꽤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사실이다.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나는 매일 생각이 다른 데 닿는다. 최근 며칠은 십여년 전 업데이트가 마지막이었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떠올렸다. 나의 학력, 경력, 특기 그리고 여러 회사에서 일궈낸 성과들이 지원하는 회사에 맞춰 아주 조금씩 그 변화를 달리했다. 자기소개서에 '이은하'는 누구인가. 지금의 나는 그를 모르는 듯 진정 내가 쓴 글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낯설기만 했다. 직업과 꿈을 같은 것으로 착각했던 그때. 직업과 꿈은 동일하고 그래야만 성공적인 삶이라 생각했던 그때.
난 일을 참 잘했다. 적어도 나를 아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일도 참 많았다. 이직을 하면 내가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일은 미친듯이 달려들었고 야근은 으레 따라 붙었다. IT 회사는 야근이 많고 또 당연히 그런 것처럼 업계에서 소문난 야근 그룹 아닌가 말이다. 일을 책임감 있게 처리한다는 건 야근을 해서라도 일정을 맞출 수 있다는 이야기였을 테고 창의적 사고력은 벤치마킹에 능하고 경쟁사의 잘하고 있는 사업을 카피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을까. 업계 1위 회사에서 일한 적이 없는 나는 늘상 그렇게 따라가는 일을 해야만 했다. 그건 2위가 1위가 될 수 없는 숙명적인 일이었다.
강주원 산문집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당신에게>를 읽으면서 아이를 낳고도 직장 생활을 이어 갔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겠구나 생각하게 된다. 어쩔 수 없이 무직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주부의 삶을 살고 있다 생각했다. 나의 선택이 아니었으니 무직의 꼬리표는 잊을만 하면 심기를 건드렸고 마음 먹고 잡사이트에 들어가 검색을 하기도 했다. 예전의 내 경력을 앞세워 지원할 수 있는 회사는 없었다. 더군다나 난 십여년 전 업데이트가 마지막인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의 그가 아니었다. 책임감은 어찌 될 지 모르겠고 창의적 사고력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란 걸 알기에 내가 그런 능력을 필요로 하는 일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더군다나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직업이 아니라 권태롭더라도 오래 내 삶과 함께 갈 수 있는 동료 같은 꿈을 찾는 것이다. 배부른 소리? 아니, 그건 배부른 소리가 아니라 꿈을 먹고 살아야 사는 것처럼 살고 있다 생각하는 사람의 배고픈 소리다.
안녕하세요.
저는 녹즙 배달을 하고 있지만 배우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택시 기사를 하고 있지만 배우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막노동을 하고 있지만 배우입니다.
직업은 꿈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강주원 작가의 글에서 처럼 직업이 꼭 꿈일 필요는 없음을 다시 느끼게 된다. 직업이 꿈과 같은 사람들도 있겠지. 그런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꿈에 진심인 그 마음으로 직업도 진심으로 열심을 다할 것이기 때문이다. 꿈이 없어 헤매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있으며 꿈을 찾았을 때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는 시기도 반드시 올 거라 믿는다. 그 모습이 예전의 나와 다르다해서 과거를 부정할 필요도 지금을 부끄러워 할 필요는 조금도 없다 느끼기 시작했다.
같은 자리에 앉아 지는 태양이 머물고 있는 하늘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도 해본다.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난 매 순간이 진심이었다. 역량과 맞지 않는 꿈을 꾸었을 뿐이지 최고의 마케터, 최고의 광고쟁이, 최고의 서비스 기획자 모든 것이 내 꿈이었고 바램이었다. 다만, 좀더 자신에게 솔직했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는 거다. 나를 너무 몰랐던 게 아닌가 의문이 드는 거다. 직장 생활을 할 때 가장 힘들었던 건 야근도 아니었고 가중되는 업무의 양도 아니었다. 나를 표현 할 수 없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그나마 가장 재미있었던 과정은 역시 크리에이티브 한 일이었다.
사진을 찍고, 스토리를 만들고 디자인을 예측하며 기획안을 작성하고 나의 말이 상대를 설득하며 새로운 그림을 그릴 때 흥분되고 신났었다. 내가 만든 기획안으로 탄생한 녀석들이 광고 스팟에서 돌아가고 사람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공간이 되고 획일적인 안이 아닌 크리에이티브한 창조물이 나왔을 대의 희열은 잊을 수가 없다. 그런 재미를 아는 내가 나의 쓸모를 다한 것처럼 업무를 처리 할 때 이미 나는 그 자리에 없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그런지 영혼이 빠져버린 나를 버티지 못하는 지랄맞은 성격은 엉덩이가 무겁게 진득하게 한 우물을 팔줄도 모른다.
마음의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으로 뱃머리를 잘도 바꾸며 살았던 것 같다. 예상치 못했던 휴학이며 그 기간 동안 경험한 디자인의 세계와 광고의 세계는 방향을 제대로 틀어 무역 전공인 나를 마케팅과 홍보의 세계로 견인했다. 뒤늦게 교환 학생으로 말레이시에 가게 된 일이며 문뜩 서른을 바라보는 초읽기 시점에서 유럽으로 단기 어학연수겸 배낭여행을 떠난 것이며 모두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했기에 가능했던 일들이다.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고 사진을 찍겠다고 껍적댄 것이며 그 자유 분방함으로 광고 회사에 들어가 마케터로 활동한 것이며 마음이 흐르는 대로 그렇게 살아왔다. 마음과 부딪치기 시작한 것은 내가 하는 일이 내가 원하는 일일 것이라 착각하기 시작하면서 부터였던 것 같다. 그러니 없는 역량을 있는 듯 포장하며 내가 쏙 빠진 자기소개서를 내밀고 면접 장소에 나가 영혼 없는 대답들을 한 것이 아닌가 말이다. 참 부끄러운 기억이다.
지금은 무엇이 중요한가 하니 스스로에게 솔직한 거다. 꿈은 솔직한 나로부터 태어난다. 이루는 것을 생각하면 꿈없이 살아가는 게 오히려 속편하겠지만 그건 또 재미없을 것 같다. 강주원 작가의 말처럼 지금 당장은 꿈이 없더라도 내가 정한 방향으로 항해하다 만나게 될 수많은 기회를 맞이하며 살아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거다.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은 꿈, 꼭 잡고 싶은 꿈이 생기면 그것을 목적지로 정해 새로운 항해를 시작하면 되는 거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당신에게 中)
한 곳에 진득하게 앉아있지 못하는 내가 무한한 하늘이 보이는 이 공간이 참 좋은 이유는 나를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창조는 지루한 루틴을 개고 나오는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한 생각들이 톡톡 터질 때 이 곳은 더이상 지루한 곳이 아니게 된다. 내일은 또 어떤 하늘을 만나게 될까....
#지루한것이더이상지루하지않을때
#내가더이상누군가가아닌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