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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이또이 Dec 19. 2021

뭐라도 되고 싶은 나 무엇이 되고 싶은 나

무언가에 계속 부딪히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생각해보니 확신을 가지고 무언가 해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학창시절, 중간고사며 기말고사를 생각해보면 확신을 갖고 시험지를 받았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대학시절, 또한 평가의 기준이 모호할 때가 많았고 열심히 한 과목은 그럭저럭 괜찮았고 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져온 기억은 그리 많지 않다. 공부하는 방법을 몰랐던 걸까? 아니면 관심 없는 과목은 아예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았던 걸까? 죽어라 공부한 기억은 없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좋은 결과를 기대한 적도 없다.


하면 되겠지. 그래 '뭐라도 하면 되겠지' 하고 방향도 없이 '열심히만' 했던 것 같다. 주변 사람들이 그런 나를 보면 '참 열심히 하네'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정작 그 과정에 알멩이가 빠졌었다는 걸 지금에야 알아차린다. 방향도 없이 그저 뭐라도 되고 싶은 마음에 관심 가는 대로 호기심 닿는 대로 널뛰기만 한 게 아닌가. 청춘은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으니 나름의 이유는 있었던 거다.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하고 싶은 걸 찾아 떠나는 탐험가 기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야 멋진 청춘이라 생각했으니 내 행동에 타당한 근거를 스스로 만들어내며 마흔으로 진입했다.


물론, 관심이 바뀔 때마다 호기심이 먹이를 당겼을 때마다 나의 에너지는 그 어느때보다 알피엠을 높여 시동을 걸었다. 그 열정이란 녀석은 무엇을 해낼 기세로 당분간 나를 움직였고 무언가에 계속 부딪힐 때마다 새로운 호기심을 사냥해 마음은 떠나고 있었다. 꾸준히 한 게 없으니 유지하고 있는 성과도 없고 지금에 나는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은 향기가 난다. 그리고 그 사람은 아름답다. 난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 아름다운 사람. 그건 늘 되뇌며 간직해왔던 나의 궁극적인 목적지이다. 지금 글을 열심히 쓰고 있다고 해서 나의 목표가 글쟁이인가? 그림을 열심히 그리고 있다고 해서 나의 목표가 '꿈을 그리는 행복한 화가'인가? 붓글씨에 매료되어 있다고 해서 서예가를 목표로 하고 있는가? 꼭 무엇이 되어야겠다는 목표가 분명해야 삶을 리드할 수 있는 것일까?


아름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 꼭 무언가가 되어야만 하는 걸까 질문을 던지고 있다. 두 아이의 엄마, 한 남자의 아내, 엄마 아빠의 딸. 난 누군가의 무엇이 되어 나를 찾다 끝나는 인생길에 외롭게 쓰러지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눌리고 싶지는 않다. 글 쓰는 게 재미있어서 언제는 글쟁이가 됐다가 그림 그리는 게 좋아서 내 그림이 옥션에서 수천 수억에 팔리는 상상도 해봤다. 무언가 해낼 수 있는 힘 '역량'이 부족한 거겠지. 조바심이 나를 등떠밀며 '뭐라도 되겠지. 뭐라도 해야하잖아' 빨리 뭐라도 해보라고 부추긴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그 조바심 녀석, 20대 30대 때 호기심을 낚던 그 모습 그대로 내게 달라붙어 있다. 그런데 난 지금 아무나 할 수 있고 언제고 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닌 나만이 할 수 있는 '무엇'을 찾고 있는 중이다. 나도 아직 잘 모르겠다. 그 '무엇'이 내게 조금씩 곁을 주는 것 같으면서도 멀어지고 그 빈자리에는 조바심이 자리를 차지하고는 능청스럽게 다리를 떨고 있다. 경계하고 멀리 해야 할 그녀석 '조바심'.


"자기야 나는 멋지게 늙고 싶어. 그리고 난 우리 엄마나 시어머님처럼 늙기 싫어. 죽어라 일만하다 병든 우리 엄마의 삶도 싫고 쿨하지만 늙어감에 힘없게 죽는 이야기를 늘어 놓는 어머님처럼 늙기도 싫어. 난 우리 애들이 결혼을 하고 배우자에게 나를 소개할 때 우리 엄마는 좀 특이해 그래서 재미있어 하고 말해줬으면 좋겠어. 어머니는 매일 가면 아픈 이야기만 하고 죽는 이야기만 하고 그것 외에는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 지치게 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 게 가장 두려워. 난 지금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 나 잘 하고 있는 걸까?"


특이하고 재미있게 나이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우리 모두 죽음으로 가고 있는 길에 올라탔다고 해도 우리가 그 안에서 이야기 할 수 있는 게 꼭 먹고 사는 이야기, 죽는 이야기, 아픈 이야기, 누구 돈 번 이야기, 드라마 이야기 그런 것만 있는 건 아니잖은가. 아이들이 교육을 마친 후에도 이 시대의 아이들의 교육을 걱정하고 싶고, 노인이 되어서도 아이들 그림을 들여다보고 싶고, 손주들의 글쓰기를 봐주면서 동심을 훔치며 장난치고 싶다. 그런 할머니가 되고 싶다.


뭐라도 되고 싶었던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 나에게 계속 질문을 한다. 어떻게 살고 싶은지. 어떻게 늙고 싶은지. 무엇을 해야 가장 행복한지. 무엇으로 나를 소개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나의 글을 읽고 '맞아. 나도 그래' 속으로 말하고 있다면 그 또한 삶의 방향을 잡고 있는 중일 거다. 어쩌면 이 고민들은 죽기 직전에도 계속 될 수 있다. 그 때까지도 계속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면 말이다. 죽는 것도 공부라고 했던가. 이 끝나지 않는 여정은 곧 막을 내리겠지만 내 삶에서 외롭게 끌려가고 싶지는 않다. 그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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