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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샘 Nov 11. 2019

'꽃' 보다 엄마

꽃을 사랑한 엄마의 손이 이리 고왔을까? 엄마를 만지고 안아보고 싶지만 지금은 만날 수가 없다. 하여 엄마의 젊음을  빼닮은 내 손을 대신 찍었다.

나를 알려면 나를 품고 키워낸 엄마를 알아야 되지 않을까. 엄마이기 전에 한 사람, 채경례의 인생을 알고 싶었다.
 
어린 시절에 본 엄마는 유난히 꽃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겨울이면 눈밭에서 진달래 가지를 꺾어와 따뜻한 아랫목에서 피워내고, 산에 들에 꽃이 만발한 봄이면 철쭉을 한 아름씩 꺾어와 창가에 두었다. 밤이슬이 차가운 가을엔 이삭 배낭을 짊어진 엄마의 어깨 위에서 코스모스가 춤을 추었다.

엄마의 꽃 사랑은 그뿐이 아니었다. 한주먹 땅도 없는 하모니카 사택 처마 밑에 채송화, 백일홍, 접시꽃, 해바라기 꽃씨를 뿌리고 비좁은 돼지 울 지붕엔 분꽃 밭을 만들었다.

엄마는 배급이 끊기고 양식이 귀하던 시절에도 강냉이 한 사발(1kg)에 참나리 꽃씨 몇 알을 바꿔왔다.
엄마의 꽃 중에 꽃은 튤립이었다. 이름도 생소한 꽃(튤립)에 대해 설명하는 엄마의 눈빛은 언제나 반짝거렸다. 튤립을 본 적 없는 나는 그 꽃은 엄마의 눈빛처럼 신비로울 거라 상상했다.

참나리는 엄마가 강냉이 한 사발에 바꿔온 씨앗을 뒤울에 심은 꽃이다. 이 꽃을 보면 아버지와 엄마가 뒤울에서 이야기 나누던 장면이 떠오른다.

하지만 당신의 인생은 꽃처럼 어여쁘지 않았다. 엄마는 ‘꽃’보다 ‘흙’에 파묻힌 인생이었다.

26살, 선으로 만난 남자와 결혼하고 자식 셋을 낳을 동안 남편은 집보다 병원 침대에 눕는 날이 더 많았다. 어쩌다 보니 가장의 짐을 짊어진 엄마는 봄이면 뙈기밭을 구해 감자를 심고, 여름이면 누에를 키우고, 가을이면 이삭을 줍고, 겨울이면 두부와 밀주를 만들고, 어미돼지를 키워 새끼를 받아 다섯 식구를 먹여 살렸다.

나의 기억에 아직 남아있는 엄마의 초상은 무거운 이삭 배낭을 짊어지고 누렇게 웃고 있는 모습이다. 당신은 다 해진 바지를 덧기워 입고 구멍 난 운동화를 신어도 남편과 자식만은 최고로 내세우고 키워낸 나의 영웅, 가족을 지켜내기 위해 기꺼이 흙이 되어준 내 생애 최고의 은인이다.

몇 년 전,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혼자가 된 엄마는 남쪽에서 같이 살고 싶다는 딸의 소원을 뿌리치고 남편 무덤 지켜야 된다며 여전히 흙에 사신다. 너희들 좋은 곳에 살면 그것으로 당신 인생 충분히 보상받은 거라며 자식에게 기대기를 만류하신다.

이른 봄, 엄마를 그리워하는 진달래를 만났다.

연분홍 진달래가 피는 계절이 오면 나는 엄마가 그리워진다. 지금쯤 엄마는 남쪽으로 달리는 기차를 보며 자식의 안녕을 빌고 있을까. 한 번도 본 적 없는 손주와 새파란 20대의 모습으로 사라진 딸의 얼굴을 생각하고 있을까.
나는 언제쯤 엄마를 안아볼 수 있을까.

진달래, 민들레, 철쭉, 백일홍, 개나리, 접시꽃, 코스모스, 호박꽃, 할미꽃...
세상의 모든 꽃을 사랑한 엄마는... 엄마가 꽃인가, 꽃이 엄마인가.

엄마는 왜 그리도 꽃을 사랑했을까. 남편도, 부모도 기댈 곳 없는 험한 세상에서 꽃은 엄마에게 얼마큼의 위로가 되었을까 묻고 싶지만 물을 길이 없다.  

만약 나에게 딱 한 가지 소원을 이룰 수 있다면 주저 없이 ‘엄마를 보내주세요.’ 간절히 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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