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언젠가 만날 당신의 파라다이스

영화 <인디 아일 (In the Aisles)>(2018)

by 무비 에세이스트 J

우리는 누구나 에서 눈을 떠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치고 향하는 곳 역시 집이며, 하루를 내려놓고 온전히 자신이 되어 하루를 마감하는 곳 역시 집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집은 어떤 공간일까요.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저 불빛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걸까


우리의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집이란 당연하게 우리를 품어주고 우리를 받아주는 곳이기에, 마치 공기처럼, 그 존재가 느껴지지도, 그 의미가 와닿지도 않은 곳입니다. 그러나, 이곳 인디 아일에서 집은 새로운 형태와 의미를 지닌 채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집이 무엇인가 하는 엉뚱하지만 난해한 질문의 답을 생각해보며 오늘의 영화 인디 아일을 시작해 보겠습니다.




-감독, 배우-

영화 <인디 아일>은 2018년에 개봉된 독일의 드라마 영화입니다.


감독 토마스 스터버


감독은 토마스 스터버라는 젊은 감독으로 2015년에는 영화 <헤르베르트>로 독일 영화상 작품상 은상을, 2018년에는 영화 <인디 아일>로 베를린 영화제 에큐매니컬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실력파 감독입니다.


프란츠 로고스키


배우로는 우선 남자 주인공 크리스티앙 역의 프란츠 로고스키를 알아볼까요. 프란츠는 2018년 이 영화로 베를린 영화제에서 37개국으로 구성된 유럽영화진흥위원회에서 수여하는 유망주에게 주는 상인 슈팅스타상을 받았고, 2018년 독일 영화제에서는 역시 인디 아일로 최우수 남우주연상을 받은 독일 배우입니다.


잔드라 휠러


마리온역을 맡은 잔드라 휠러는 니나 호스, 줄리아 옌체와 함께 독일을 대표하는 3대 여배우이며, 특이사항으로는 그녀가 동독 출신이라는 점입니다. 각종 상을 휩쓸며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데요, 특히 2016년 토니 애드만으로 유럽 영화제와 독일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으며, 다수의 할리우드 영화 출연으로 우리나라에도 이미 얼굴이 알려진 배우입니다.


페터 쿠르트


브루노 역의 페터 쿠르트는 2015년에 헤르바르트라는 영화에서 이미 토마스 스터버 감독과 한 차례 호흡을 맞춘 바 있으며 그의 열연은 감독에게 작품상의 영광을 안겨 주기도 했습니다. 잔드라 휠러와 마찬가지로 동독 출신의 배우입니다.


-줄거리-


황량한 고속도로가에 위치한 한 마트에 새로 취직한 젊은 크리스티앙은 브루노라는 나이 든 고참을 도와 지게차를 운전하여 물건을 나르고 진열하는 일을 시작하게 됩니다.

(위) 황량한 마트 밖 풍경과 마트 (아래) 처음 만난 크리스티앙과 브루노


그곳에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의 눈에 자신보다 나이가 좀 더 들어 보이지만 매력적인 마리온이라는 여자가 들어옵니다. 그는 곧바로 마리온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끼고, 짧은 휴식시간에 잠깐 동안 커피를 마시거나, 물건을 진열하며 시선을 교환하고 그녀의 생일엔 마트에서 내다 버린 작은 케이크 조각을 나눠먹고,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자신이 과거에 공사장에서 해고당한 일들을 이야기하며 그녀와 가까워집니다.


(위 왼쪽부터) 처음 눈에 띈 마리온, 진열대를 사이로 시선을 교환하는 둘, 휴게실 커피자판기 앞의 둘, (아래 왼쪽) 둘만의 생일파티, 크리스마스 파티에서의 진정한 공감의 순간


한편 브루노는 크리스티앙에게 자신의 업무를 가르치며, 함께 휴식시간에 담배를 피우고 짧은 대화를 나누며, 자신이 과거에 고속도로를 질주하던 트럭 운전사였고, 동독이 서독과 통일을 하면서 일하던 회사가 현재의 마트로 바뀌어, 트럭 운전 대신 지게차를 몰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어딘가 슬퍼 보이고 우울해 보이는 브루노의 이야기를 크리스티앙은 말없이 들어주곤 합니다.


마트 밖 도로를 응시하며, 자신의 젊은 날을 추억하는 브루노


한편 크리스마스 파티가 끝나고 마트에서 마리온을 만난 크리스티앙은 다정하게 마리온에게 인사말을 건네지만, 웬일인지 차갑게 그를 대하는 마리온. 자신이 잘못한 것 있냐며 걱정하는 크리스티앙에게 돌연 화를 내고 사라져 버립니다.


이해할 수 없이 화를 내는 마리온


그 이후 마리온이 마트에 나타나지 않자, 크리스티앙은 마리온의 소식을 궁금해 하지만 그녀는 나타나지 않고 이에 몹시 초조한 나머지 퇴근 후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스스로 연락을 끊어버린 예전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 밤새 술을 마시고 다음날 마트에 술이 취한 채 지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 크리스티앙을 챙겨주러 온 브루노에게 마리온의 소식을 묻고, 어렵사리 마리온에 대해 알게 되죠. 남편에게 이따금 가정폭력을 당한다는 사실을 말이죠. 그런 그녀가 너무도 걱정되던 크리스티앙은 다음날 꽃을 들고 마리온의 집에 찾아가서 열려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 몰래 그녀의 집안과 방 안을 둘러봅니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크리스티앙의 눈에 좀 전까지 함께 있었던 것 같은 마리온 부부의 침실이 눈에 띕니다. 그때 샤워를 하는 마리온의 소리가 들리고, 샤워실을 향해 계단을 오르던 크리스티앙의 눈에 샤워실 문틈으로 마리온의 얼굴이 들어옵니다. 그녀를 바라보던 그 순간 마리온이 문밖의 인기척을 알아차린 걸 알게 되자 그곳을 뛰쳐나오게 됩니다. 그녀를 위해 준비했던 작은 꽃다발은 식탁 위에 둔 채로 말이죠.


(위 왼쪽부터) 부부 침대, 계단에서 마리온의 샤워실을 바라봄 (아래 왼쪽) 문틈 사이의 마리온, 꽃을 두고 간 크리스티앙

마리온을 봤으나 생각이 복잡한 크리스티앙. 그도 그럴 것이 마리온을 걱정해서 찾아갔던 그곳에서 그가 본 것은 생각보다 잘 지내고 있던 마리온의 모습과 남편과 함께 하는 그녀의 삶이었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마트로 돌아온 마리온은 예전처럼 크리스티앙에게 마음을 열어 보이며, 미소를 지어 보입니다.


다시 돌아온 마리온

그녀는 크리스티앙에게 꽃다발을 주어서 고맙다고 말합니다. 이에 에스키모식 인사로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크리스티앙. 이제 둘 사이에는 서로를 향한 따뜻한 감정이 생겨납니다. 무어라 규정할 수 없는 이 감정은 마치 사춘기 소년과도 같은 조심스러움이 묻어나 있습니다.

에스키모식 인사로 마음을 전하는 크리스티앙과 마리온. 키스였다면 담지 못할 감정의 순수함이 담긴 명장면


한편, 브루노가 출근하지 않아 브루노를 찾는 크리스티앙에게 브루노의 충격적인 자살소식이 전해집니다. 마트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은 큰 충격에 휩싸이게 되고, 동시에 그 누구도 브루노의 현재 상황을 알지 못한 채 오랜 시간 함께 일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브루노는 늘 동료들과 함께 였지만 실은 고독한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크리스티앙은 얼마 전 브루노의 초대로 그의 집에서 함께 술을 마셨고, 그때 브루노가 젊은 시절 아우토반을 거침없이 내달리던 과거를 사무치게 그리워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브루노의 진실을 알고 있기에 브루노가 마지막에 목을 매어 자살한 그의 집을 찾아가게 되고, 집안 곳곳에서 초라하고 외로웠을 브루노의 일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왼쪽부터) 브루노가 목을 매었을 것 같은 고리, 그의 장례식

브루노의 장례식이 진행되고 크리스티앙은 다시 마트에서 일상을 시작합니다. 브루노가 탔던 지게차를 타며 브루노에 대한 기억에 상념에 잠기는 그의 곁엔 웃음을 띠고 다가오는 마리온이 이제는 존재합니다. 크리스티앙이 브루노를 그리워하며 슬퍼하는 모습을 보던 마리온은 브루노가 알려준 지게차의 비밀을 크리스티앙에게 알려줍니다. 지게차의 지게가 조용히 내려올 때 그곳은 더 이상 마트가 아니라 파도소리가 가득한 해변이 된다는 것을 말이죠. 그 마법 같은 둘만의 해변에서 영화는 끝이 납니다.


(왼쪽부터) 함께 하는 새로운 일상, 지게차에서 파도소리를 함께 듣는 마리온과 크리스티앙

-생각하나- <무대 밖의 우리들>


우리가 일상적으로 드나들며 물건을 사고 시간을 보내는 마트는 일 년 365일 언제나 똑같은 정갈함으로 우리를 맞이합니다. 물건이 팔려나가 빈자리가 생겨도 이내 한결같이 채워지는 진열대를 보며 신기해 하거나 발걸음을 멈추지는 않습니다. 그저 당연하게 여기는 마트 안 풍경. 그 당연함 뒤에는 물건을 창고에서 가져와서 종류별로 진열해주는 누군가의 노고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바로 그 누군가의 삶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우리 곁에 있지는 않아도, 늘 우리 곁에 소리 없이 존재하는 그들. 감독은 그림자 속에 가리워진 우리 이웃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그들의 삶도 우리의 삶과 같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조명을 받으며 대접을 받는 고객 신분인 우리와 달리, 마트 안 그들은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조명밖의 누군가일 뿐입니다. 우리가 무대 위에 있다면 그들은 무대밖에 있는 셈이죠.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관점일 뿐입니다. 그들의 관점에서 본다면 무대밖에 있는 사람은 오히려 우리가 될 수 있습니다. 평범한 공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마트의 뒤편에는 그곳이 자신의 무대이고, 그곳이 자신의 세상 전부인 사람들의 일상과 삶의 이야기가 존재합니다. 평범한 마트의 통로에는 이렇게 상반되어 보이는 사람들 모두의 삶의 고민과 문제들이 함께 흐르고 있습니다.



-생각 둘- <속박>


인간은 누구나 자기만의 생이 있고, 자기 앞에 놓인 그 생에는 스스로만이 짊어지고 나가야만 하는 책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우리는 자신이 짊어진 짐에 압도당하고, 그 짐에 짓눌린 채, 빠져나오기보다는 익숙해진 그 무게를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 듯합니다. 스스로 자신의 삶에 속박되는 것입니다.


영화의 세 인물은 모두 각자의 삶에 속박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비행은 불행한 현재로 이어져 그 어느 곳에서도 인간다운 대접을 받지 못하고, 사회의 변두리를 기웃거리며 자존감을 잃고 공허한 삶을 살고 있는 크리스티앙, 매력적인 외모와 착한 마음씨를 지녔으나 가정 폭력에 시달리며 껍질뿐인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마리온, 젊은 시절 자유롭게 아우토반을 내달리던 과거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현재에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브루노. 인생을 자유롭게 산다는 것은 자신답게 자신의 의지와 요구를 관철시키며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채워나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때, 이 세 사람은 결코 자유로운 인생을 살고 있지 않은 것이죠. 이 들이 속박에서 벗어나는 길은 브루노의 경우처럼 물리적으로 생을 마감함으로써 속박을 강제로 끝내버리거나, 아니면 다른 누군가의 존재로 인해 자신의 상황을 변화시켜야 가능할 것입니다.




-생각 셋- <해방: Two Minuses Make One Pus>


속박에서 해방되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영화에서는 그 방법으로 사랑을 제시합니다. 에밀 아자르의 소설 “자기 앞의 생”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 “사람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다”처럼 감독은 속박되어 살고 있는 주인공들을 속박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사랑”이라는 가장 강력하고 전통적인 무기를 투입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사랑은 단순히 남녀 간의 에로스적인 사랑만을 보여주고 있지는 않아 보입니다. 크리스티앙과 마리온의 마주침은 “하나의 결핍이 또 다른 결핍을 알아보며 반응을 일으킨다”는 평론가 신형철 씨의 글귀를 떠올리게 합니다. 크리스티앙의 마리온에 대한 반응은 마리온의 크리스티앙으로의 재 반응으로 이어지며 둘은 감정의 소통을 이뤄내는 것이죠. 감정의 소통을 통해 두 사람은 잃었던, “나”라는 존재의 가치를 회복하게 됩니다. 가치 있는 “내”가 없다면 결코 가치 있는 “우리”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런 둘의 만남은 영화 속 대사처럼 “두 개의 마이너스가 만나 하나의 플러스를 만들어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의 플러스가 되어서야 크리스티앙과 마리온은 현실의 제약과 속박에서 자신들만의 해방구를 찾아 자유를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생각 훈련- <나만의 파라다이스>


영화에서 크리스티앙은 마리온을 볼 때마다 파도소리를 듣습니다. 마리온은 불행한 결혼생활의 장소가 되고 있는 자신의 집에 해변 그림을 걸어두고 해변 그림으로 된 퍼즐을 맞추고 있습니다. 여기까지의 이 두 사람의 행위에는 상대의 참여가 없고 오직 고독한 자신만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마트의 풍경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해변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마트의 휴게실에서 둘은 커피를 함께 마시고 케이크를 나눠 먹으며 그 공간에 “우리”라는 존재를 쌓게 됩니다. 마트에 물건을 차곡차곡 쌓듯, 그들은 자신들의 감정을 꺼내어 쌓아 갑니다.




잃었던 웃음을 되찾게 해준 상대가 있으신가요. 그 사람과 함께 라면 마트도, 자판기 커피뿐인 휴게실도 순식간에 파도가 일렁이고 햇살이 눈부신 파라다이스가 될 것 입니다. 젊은 시절의 좋았던 추억은 마치 움직이는 축제처럼 평생 늘 황홀한 기억으로 따라다닌다고 헤밍웨이는 말했습니다. 우리를 마음 편히 존재하게 하는 곳, 진정한 나의 집, 곧 우리의 파라다이스는 우리의 웃음을 찾아준 그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곳, 바로 그곳일지 모릅니다.

keyword
이전 03화21세기 현실 동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