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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람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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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비 에세이스트 J Sep 22. 2024

그녀의 커피

하루아침에 여름이 자취를 감추고 가을이 온 천지의 주인이 되었다. 이토록 시원한 바람이 이토록 파란 하늘이 지난하게 이어진 여름의 장막 뒤에서 얼마나 애타게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을까. 가을을 내내 기다려온 우리의 심정과 조금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마침내 가을이 왔다. 내가 기억하는 모든 시간 속에서 가을은 나에게 특별한 계절이었다. 그러나 3년 전 9월의 어느 저녁 이후 나는 가을을 비롯한 모든 계절을 잃은 채 땅과 하늘의 중간 어딘가에서 부유하고 있었다. 나는 그저 숨을 쉬고 있는 어떤 형체에 지나지 않았었다. 




감당할 수 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해도 우리의 이성은 곧바로 스위치를 꺼버리지 않는다. 차라리 모든 이성과 감정이 작동을 멈춘다면 견디고 버텨나가기가 훨씬 수월할 텐데 그럴 수 있는 방법은 죽음뿐이니 그것은 방법이 되지 못한다. 나 역시 그랬다. 나의 모든 세상이 뒤집혔고 시간은 거꾸로 흘러가는 듯했다. 먹지 않아도 잠을 안 자도 하루에 수만 보씩 걸어도 고통은 멈추지 않았고 머릿속에서는 수만 가지 목소리가 동시에 터져 나와 잠시도 나를 가만히 있게 하지 않았다. 수업을 하다가도 수시로 눈물이 흘러나왔고 수업이 없는 시간에는 어김없이 뛰쳐나가 오열하기 일쑤였다. 도저히 버틸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숨을 쉬는 것도 힘들어서 차라리 숨을 쉬지 말까도 고민했다. 어쩌면 그랬을지도 모른다. 학교의 1층, 자신의 방에서 한 학기 내내 나를 맞아준 그분이 없었다면 말이다.       


3년 전 9월의 그날 아침도 역시나 거의 잠을 자지 못한 채 출근을 하고 있었다.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혼란스러운 가운데에 문득 1층에 계시는 부장님이 떠올랐다. 대화도 거의 제대로 해본 적 없는 그 부장님이 왜 떠올랐던 걸까. 그녀는 다음 해 2월에 명예퇴직을 앞둔 33년 차 선생님이셨다. 가끔 지나치며 인사를 나눌 때마다 그분에게 풍기던 자상함과 밝음, 자신감이 늘 좋아 보였었다. 나에게 없는 그 장점들이 부럽고 존경스러웠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기댈 곳이 필요했고 나의 슬픔을 지켜봐 줄 사람이 필요했다. 말 그대로 나만을 생각한 다분히 이기적인 이유에서 나는 다짜고짜 그녀를 찾아가기로 했다. 


"부장님, 사람은 혼자서도 살 수 있을까요?"


노크도 하는 둥 마는 둥 그녀의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기가 무섭게 인사도 잊은 나는 다급하게 그녀에게 묻고 있었다. 말이 제대로 나오지도 않았다. 이미 눈물로 엉망이 되어 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부장님은 책상에 앉아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보시다가 깜짝 놀라면서 일어나셨던 것 같다. 그리고 나에게 책상 앞 의자를 가리키시면서 앉으라고 하셨다. 


"커피 한잔 할래? 잠깐만 기다려."


나는 대답도 제대로 못하고 고개만 까딱거리고는 의자에 앉았다. 어느새 내 앞으로 밀어주신 크리넥스 티슈통에서 티슈를 꺼내어 흐르는 눈물을 연신 닦으며 부장님이 커피를 내리시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9월의 아침, 모두가 출근하기 한참 전의 이른 시간, 그녀가 혼자 사용하던 정갈하고 고즈넉한 공간에 자신의 슬픔과 절망을 잔뜩 짊어지고 침입해서는 허락도 없이 자신의 짐을 마구 풀어놓은 무례한 후배교사를 위해 그녀는 정성스럽게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울고 싶으면 울어. 여기 화장지 많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해. 아니면 커피 좀 마시고."


그녀가 건네준 커피잔을 양손에 쥐니 신선하고 진한 커피 향이 나의 코에 와닿았다. 그제야 나는 한참의 시간 동안 커피를 놓고 지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평소 커피가 내 몸의 반이라고 외치며 하루도 커피 없이 지나간 일 없던 나. 커피를 마시지 않는 날은 내가 몸이 아픈 날일 정도로 커피는 나의 일상이었는데... 그 커피를 마시지 않고 있다는 사실마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잠시 멈췄던 눈물이 또다시 하염없이 쏟아져 나왔다. 부장님은 나의 이런 모습을 바라보시면서도 어떠한 질문도 하지 않으셨다. 그저 잔잔한 음악을 틀어 두시고 자신이 보던 화면으로 다시 고개를 돌리셨을 뿐이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던 나는 계속 울기만 했다. 그러기를 한참, 조회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고 나는 채 마시지 못한 커피와 부장님을 번갈아 바라보며 인사를 드리고 그녀의 방을 나왔다. 그날 나는 이 아침이 그녀와 내가 보내게 될 특별한 아침의 첫날이 될 줄은 전혀 몰랐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그녀의 방을 다시 찾았다. 그녀는 어제와 마찬가지의 자세로 앉아있었지만 어제만큼 나의 출현에 놀라지는 않으셨다. 나를 보시자마자 미소로 반기시며 즉각 일어나셔서 커피를 내리기 시작하셨다. 어제 내가 다녀간 뒤 혹시 몰라서 맛있는 커피를 준비해 두셨다는 말씀만 하셨다. 나는 조금도 나아진 상태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감사하다는 인사정도는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커피를 건네주시며 내 앞에 앉는 부장님에게 어제의 기습방문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울음이 거의 태반이었던 나의 말을 부장님은 아마 알아듣기 힘드셨을 것이다. 그럼에도 고개를 끄덕여주셨던 것은 나의 말보다는 나의 마음을 듣고 있으니 계속하라는 표시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렇게 9월의 어느 아침에 시작된 나의 방문은 겨울 방학식 아침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아주 드물게 아침에 처리할 급한 일이 생기지 않고서는 우리가 만나지 못한 날은 없었다. 또한 그녀를 만나던 시간 동안 내가 울지 않은 날은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조금씩 조금씩 내가 쓰는 티슈의 양이 줄어들고 있었다. 티슈의 양이 줄어드는 만큼 우리의 대화는 늘어갔고, 나는 서서히 그녀가 주는 커피 향을 음미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한 학기가 끝나가고 있었다. 겨울 방학이 다가올 때 즈음, 나는 거의 울지 않고도 부장님을 찾아뵐 수 있게 되었다. 이윽고 다가온 부장님의 퇴임식. 나는 오랜만에 얼굴에 화장도 옅게 하고, 미리 예약해 둔 근처 꽃가게에서 꽃다발을 찾아왔다. 그러나 막상 꽃다발을 안고 그녀의 방, 그 특별한 공간에 발을 들일 마지막 순간이 오자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너무나 참혹했던 시간에 나를 들여 깊게 품어주었던 곳. 짙은 커피 향으로 나의 마음을 위로하고 다독여 주던 곳. 무엇보다 부장님. 나의 부장님. 친하지도 않았던 후배 한 명을 위해 교직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선뜻 내주어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워 주셨던 다시없을 분. 이제 그곳도 그분도 그 시간도 다시없을 거란 생각이 온갖 감정을 일으켜 나를 휘감아 버렸다.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부장님이 계시던 공간은 다른 용도의 교실로 바뀌어 있었다. 한동안 출근길에 괜스레 그 교실 앞을 지나가보곤 했었다. 내 발소리만 듣고도 미리 커피를 내리고 계시던 부장님이 눈앞에 그려졌다. 그 교실이 있던 복도에만 닿아도 새어 나오던 커피 향이 너무 그리웠다. 불이 꺼진 교실 창을 들여다볼 때마다 눈물이 맺혔다. 그러나 울고 있지는 않았다. 내가 아직도 울고 있으면 어떡하나. 이제는 부장님도, 부장님의 커피도 없는데. 




모든 것은 시간의 흐름 속에 함께 흐른다. 나의 그 시간들도 결국 흘러서 아직 온전하게는 회복되지 못한 약해진 나를 기어이 가을로 데려다 놓았다. 죽음이 두려워 필사적으로 나이를 먹고 싶지 않았던 한 때의 내가 있었지만, 지난 3년간 겪었던 통증으로 인해 가끔은 정말로 시간이 약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도 했다.


지금도 나의 부장님을 뵙는다. 퇴임 후에는 한 달에 한 번 꼬박꼬박 뵈러 다녔지만 이제는 다른 지방으로 이사를 가셔서 두어 달에 한 번씩 KTX를 타고 뵈러 간다. 부장님을 뵈러 가는 날은 설레는 날이기도 하다. 새로운 삶에서 새로운 얼굴로 살아가시는 부장님은 한 번도 같은 얼굴을 하고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보니 부장님을 찾아갔던 나의 행동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무례하고 배려심이 없었던가를 통감하게 된다. 명예퇴직을 앞두고 여유 있게 하루를 열며 이것저것을 정리하고 생각할 수 있는 절호의 시간을 내가 온통 빼앗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더 존경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 역시 누군가 나를 찾아와 도움을 원한다면 기꺼이 그 손을 잡아주고 싶다. 가능하다면 두 손으로 꼬옥 오랫동안 말이다. 


한 사람의 사랑과 희생은 이렇게 순환하는 것이 맞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야 한다. 


"난 더 이상 OO 샘이 나를 안 찾아올 줄 알았어. 그때는 너무 힘들었으니까 왔겠구나 했지. 이렇게 1년이 넘도록 날 찾아올지 몰랐네."


학교를 떠나고 1년이 넘었던 어느 날 부장님께서 내게 하신 말씀이었다.


"제가 평생 찾아뵌다고 말씀드렸잖아요, 부장님. 제가 그 은혜를 어떻게 잊어요? 절 정말 살려주셨어요."


진실이다. 부장님은 그 시절, 나를 말 그대로 살려주셨다. 나는 그 마음 언제나 잊지 않고 그녀를 찾아갈 것이다. 한 번은 내가 그녀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나는 지치지 않고 거듭 그녀를 찾아가 향기로운 커피를 청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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