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에어(2009)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내가 머무르는 곳은 어디든 책이 쌓여있습니다. 읽기위한 구입이 당연히 첫번째 이유이기도 했지만, 주변에 책이 없으면 불안하고 잠이 오지 않는 등 책자체에 대한 애정이 제 삶을 크게 차지하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집안 곳곳을 차지하고 있는 책장의 존재는 세상에서 가장 부자라는 생각을 갖게 해주었고, 이런 책들과 함께 하며 살 수 있는 내가 무척 자랑스럽기 까지 했습니다.
그리고는 시간이 흘러 책을 사랑하던 어린 나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내 곁에는 나와 함께 세월을 지나온 책들이 함께 하고 있죠. 그러나 여전한 책들과는 달리 책을 만나면 책의 세계에 빠져 현실을 잊어버리곤 했던 어린 나는 더 이상 없었습니다. 책을 마주하여 그 책이 받아야하는 온당한 관심을 쏟아주고, 그 책이 열어주는 세상으로 겁없이 걸어들어가 일상의 한시적 이탈을 즐기던 내가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어린 내가 가능했던 온전한 몰입의 상태. 왜 어른인 나에게는 몹시도 힘든 일이 되고 만걸까. 꽤 오랜 시간 제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이 의문은 영화 인디에어를 통해 이해를 얻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해답을 알게 해준 영화, 오늘의 영화 인디에어 입니다.
인 디 에어( Up in the air)는 2009년 개봉한 미국의 코미디 드라마 영화입니다. 제이슨 라이트먼이 감독하고 2001년 월터 컨이 쓴 동명의 소설을 기반으로 셀던 터너와 라이트먼 감독이 공동 각본을 썼습니다.
영화는 1년 322일 미국 전역을 여행하는 미국 최고의 해고 전문가 라이언 빙햄(조지 클루니 분)의 여행기를 다루고 있으며, 또한 베라 파미가, 애나 켄드릭이 출연합니다. 촬영은 주로 미주리주세인트루이스에서 진행되었으며, 디트로이트, 오마하, 라스 베이거스와 마이애미에서 여러 장면이 촬영되었습니다.
미국 최고의 해고전문가 라이언 빙햄은 자신의 고향은 비행기라고 말하곤 하는데, 1년 중 322일을 출장여행으로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기 때문입니다. 제목 그대로 땅에 발을 붙이고 있는 시간보다 하늘에 떠 있는 시간이 많은 사람인 거죠. 어린시절 양로원으로 들어가는 할머니를 보며 독신주의로 돌아선 그의 유일한 목표는 천만 마일리지를 모아 세계 7번째로 플래티넘 카드를 획득하는 것입니다. 비행기의 소파와 싸구려 기내식이 무엇보다도 편한 빙햄은 가방속에 모든 것을 버리라고, 그 짐들 중 가장 무거운 것은 인간관계라는 빈 가방론을 주장하며 동기부여 강의를 하러 다니기도 합니다.
실제로 그는 결혼을 하지도 않고, 가족간 교류도 거의 없습니다. 이런 철학으로 여행 중이던 그는 호텔에서 그와 비슷한 여인 알렉스를 만나게 됩니다. 꼭 닮은 그들은 자신들의 철학대로 쿨한 만남을 지속하지만 연락과 만남이 계속되면서 빙햄은 생애 처음으로 진실한 관계와 정착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한편, 라이언 빙햄의 천만마일리지 달성계획에도 문제가 생기게 되는데, 회사에서 엘리트 신입사원 나탈리의 아이디어인 온라인 해고 시스템 도입을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시스템이 도입하게 된다면 빙햄은 더 이상 해고대상자를 찾아다니며 해고를 통보할 필요도, 새로운 도전을 해보라는 조언도 해줄 수 없게 됩니다. 실의에 빠진 해고자들에게 한치의 따뜻함도 불어줄 수 없는 이 시스템을 반대하는 빙햄은, 이 프로그램의 개발자인 엘리트 사원 나탈리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고 이에 사장은 나탈리에게 노하우를 전수하라며 함께 출장을 보냅니다. 항공 서비스와 업무 수행에 능숙한 라이언과 달리 시행착오를 겪던 나탈리는 실제로 사람을 해고한다는 것의 무게를 깨닫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중 나탈리가 연인에게 실연을 당하는 일이 생깁니다. 연인을 위해 훨씬 나은 취업기회를 버린 그녀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이었습니다. 이러는 사이 해고 대행 시스템 도입은 확정되고 둘의 출장은 종료됩니다. 출장 후 여동생의 결혼식에 참여해야 하는 라이언은 그 자리에 알렉스를 초대하고 그 동안 소원했던 가족들과도 재회합니다. 동생의 결혼식을 통해 알렉스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되고, 동시에 가족의 따뜻함역시 깨닫습니다. 이후 라이언은 여느 때처럼 동기부여 강연을 하던 중 알렉스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깨닫고 이를 즉시 표현하고자 하는 열망에 휩싸여 강의 도중 뛰쳐나가 알렉스가 살고 있는 시카고로 찾아갑니다. 부푼 마음을 안고 초인종을 누른 라이언. 그러나 문을 열어준 알렉스의 등 뒤로는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고, 그녀를 부르는 남편의 목소리를 들려옵니다.
큰 충격에 사로잡혀 뜬눈으로 밤을 지새고 비행기를 타고 떠나려는 라이언에게 알렉스가 전화를 걸어 옵니다. 그녀는 사실 가정이 있는 사람으로, 라이언을 일종의 탈출구로 여겼을 뿐이라며, 언제든 자신이 필요하면 전화를 하라고 하죠. 알렉스의 전화를 끊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라이언은 그렇게나 원했던 1000만 마일리지를 달성합니다. 그러나 왠일인지 기뻐하지 않는 것 같은 라이언. 회사로 돌아와 부동산 투자에 실패해 신혼여행 자금이 없던 동생 부부에게 자신의 마일리지를 양도하려던 라이언에게 사장은 나탈리의 퇴사를 알려줍니다. 라이언과 나탈리가 출장 중 해고했던 여성의 자살이 그 이유였고 이를 계기로 화상 해고 시스템 역시 중단되어 라이언의 일상은 원래대로 돌아갑니다. 나탈리 역시 다른 도시로 이주하여 자신과 맞는 회사에 지원하여 면접을 보게 되고, 이때 사장은 라이언의 추천서를 언급하며 그녀를 고용하게 됩니다. 이렇게 자신의 주변상황을 일단락하고 또 다시 길을 나서며 공항에 들어선 라이언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공항의 운항 스케줄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비행기에 탑승한 것 같은 라이언의 나레이션이 나오고, 곧바로 해고당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보여주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공항은 매우 흥미로운 아이러니로 가득한 곳입니다. 전국 혹은 전세계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잠깐씩 머물지만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이유는 단 하나 떠나기 위해서입니다. 떠나기 위해 머무는 곳, 공항. 저마다 끌고 다니는 가방안에는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소품으로 가득하고 그들의 몸은 이곳에 있으나 마음은 이미 다른 곳에 가있습니다. 모여있으나 모여있지 않은 곳, 곁에 있으나 곁에 없는 곳이 바로 공항입니다.
그러니 고립된 존재로서의 인간을 공항만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곳도 드물죠. 먼 발치에서 바라 본 공항은 온갖 종류의 사람들로 북적이며 활기가 넘쳐 보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들 모두는 각각으로 존재할 뿐, 소통도 유대감도 없습니다. 그들은 단지 서로 다른 목적지를 향하다 우연히 한 지점에서 교차하게 된 것 뿐이죠. 우리의 일상도 이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각자의 삶의 여정대로 바쁘게 움직이며, 함께 모여 하나의 조직을 이루어 나가지만 실은 수많은 독립된 인격들이 촘촘하게 모여 서로 다른 여정을 품은 채 각각 외롭게 모여있는 것 뿐입니다.
영화는 해고된 사람들의 인터뷰로 시작하여, 같은 사람들의 인터뷰로 끝이 납니다. 영화 시작 무렵의 인터뷰에서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졌던 그들은, 영화의 말미에 가서는 가족이 있으므로 이 절망도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말을 합니다. 왜 이런 장면들이 필요했던 걸까요.
비행기가 이륙하는 장면을 떠올려 보겠습니다. 긴 활주로를 전 속력으로 내달리다 점차적으로 활주로를 벗어나며 마침내 공중으로 날아오르죠. 비행기의 비상에는 이처럼 플랫폼이 되어 자신을 아프게 내어준 활주로가 꼭 필요합니다. 비행기는 미사일처럼 단번에 날아오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사회적 성장과정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의식이 생겨나는 순간부터 자신의 욕망해소를 위해 혹은 자아실현을 위해 무던히도 노력합니다. 성취를 위해 이런 저런 노력을 기울이다보면 어느새 우리는 우리가 속한 곳을 벗어나 한참 높은 곳에서 비상하게 되죠. 우리의 노력은 우리에게 어느 정도 만족할 만한 성과를 가져다 주고, 우리는 이제 그런대로 자신에게 만족하며 삶을 꾸려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삶은 계속되겠죠. 라고 끝을 맺고 싶으나, 갑자기 뚝하고 이 흐름이 끊겨버립니다. 그리고는 익숙했던 그 삶에서 추방당합니다. 아주 오랫동안 혼자뿐이었음을 깨닫고 오갈데가 없어 절망하게 되죠. 그러다 문득, 오래전에 떠나왔던 그곳이 떠오릅니다. 아주 오랫동안 등한시 했던 곳이었건만 나락으로 떨어진 우리를 따뜻하게 품어줍니다. 그리고 그들의 온기로 인해 우리는 다시 한번 생의 에너지를 느낍니다. 우리가 발을 딛고 힘을 받을 수 있는 그곳. 우리가 성장하여 멀리 날아오를 때 까지 내내 말없는 버팀목이 되어주고는, 우리가 떠난 후에도 우리를 기다리며 식지않는 온기를 지니고 있는 곳. 바로 우리의 가족이죠.
늘 비상을 꿈꾸는 우리는 우리의 꿈에 마음을 빼앗겨 나의 비상을 위해 활주로가 되어주었던 그들을 쉽사리 잊어버립니다. 오직 추락의 순간에서야 나를 온전히 받아주는 유일한 것이 활주로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죠. 그러나 추락의 순간에 나를 품어주는 그들의 온기는 우리에게 생명의 활기를 불어넣어주고, 그로인해 머지않아 우리는 또 다시 길위에 오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족이란 이런 존재입니다. 해고된 사람들이 절망에 그치지않고 희망을 다시 가질수 있는 것도 가족이 있어서임을 감독은 보여주고 싶어했던 것입니다.
영화의 시작.일년 중 대부분을 비행기에서 보내고 호텔에서의 낯선 잠을 일상으로 여기는 해고 전문가 라이언 빙엄의 모습은 사뭇 자신감에 넘쳐 보입니다. 마치 자신만의 왕국에서 군림하는 왕처럼 모든 면에서 당당하고 특별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이런 라이언도 어느 호텔의 바에서 만난 알렉스라는 여자에게 쉽게 빠져들고 결국에는 그녀와 함께 하고 싶어 그렇게도 자신이 거부하던 정착을 받아들이려 하면서 그가 세워왔던 견고했던 세상은 무너지게 됩니다. 라이언은 왜 이리도 쉽게 알렉스를 받아들이고 싶었던 걸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그는 외로웠기 때문이었죠.
라이언의 외로움을 말하기에 앞서 우리는 외로움과 고독에대해 좀더 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현재 외로움과 고독이 구분없이 혼용해서 사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 두 단어는 그 쓰임에서 구별이 필요하죠. 노르웨이의 철학자 라르스 스벤젠은 고독을 외로움과 구별하면서, 혹은 고독을 특별한 종류의 외로움으로 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외로움은 필연적으로 고통이나 불편의 느낌을 포함한다.” 그가 보기에 외로움은 부정적 감정이지만 반면에 고독은 오늘날 소멸하고 있는 능력인 것입니다. 또한 스벤젠은 “어쩌면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문제는 과도한 외로움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적은 고독일 것이다.”라고도 말하고 있습니다.
혼자만의 세상에서 자신이 세운 규칙에 의해 살아가던 라이언은 비행기가 자신의 집이라고 말할 정도로 정착을 거부하고 심지어 가족의 존재마저 부담스러워합니다. 이런 자신의 삶이 완벽하다고 생각한 그는 짐가방을 비우고 가볍게 살라는 강연을 하며 자신의 철학을 설파하기까지 하죠. 그러다 막상 알렉스를 만나 그녀에게 이끌리면서 그는 점차 자신이 얼마나 외롭고 공허한 삶을 살고 있는지 깨닫게 되고, 그제서야 자신의 삶을 채우고자 하는 강한 욕망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자신의 공허한 삶에서 탈피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외로움으로부터 도망치려고 하면서 고독의 기회를 놓쳐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고독이란 무엇일까요?
독일계 미국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자신의 저서 에서 고독과 외로움을 분리하며 고독을 “내가 나 자신과 교제하는 실존적 상태”라고 정의합니다. 아렌트는 인간은 누구나 하나인 자신안에서 둘로 분열되는 자신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녀에 따르면 내가 내 자신과 대면한다는 것은 그 둘의 대면이 되는 것이고, 나 자신과의 대화를 한다는 것은 그 둘간의 대화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자신과의 대화를 가르켜 ‘사유’라고 명명했습니다. 이런 아렌트의 정의대로 고독과 외로움을 다시 한번 구분해 본다면, 고독과 외로움은 홀로 있는 행위는 동일하지만 고독은 자기 자신과 대면하고,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하는 상태인 반면, 외로움은 타인에게 버림받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자기 자신에게 조차 버림받는 고립상태인 것입니다. 이렇게 고독할 줄 모른 채 외로움에 빠져 있는 인간은 생존본능에 의해 주변의 사람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자 노력하지만 직접적인 소통이 어렵기 때문에 쉽게 온라인상의 소통에 의존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런 소통은 결국 폴란드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지적처럼 현대인들로 하여금 고독의 기회를 영원히 잃어버리게 만들죠. 이런 관점으로 우리 주변을 바라보자니 현대인들의 일상은 외로움속에서 절규하는 공허한 몸부림으로 가득 차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 속 라이언 빙햄또한 자신의 내면안에 있는 자기 자신과의 대면을 위해 노력하는 대신, 타인과의 손쉬운 소통에 기대어 외로움에서 도망치려고만 했던 그저 외로운 사람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노르웨이의 시인 울라브 하우게는 시집 '내게 진실의 전부를 주지 마세요'에 수록된 '고독의 산 뒤편에서'라는 시에서 고독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고독은 달콤하다─ / 다른 사람들에게 / 돌아가는 길이 / 열린 동안은, / 너 자신만을 위해 / 네가 빛나는 건 아니다.”
알렉스와 헤어진 후 라이언은 퇴사한 회사동료를 위해 추천서를 써주고, 동생 부부를 위해 오랫동안 힘들게 모아온 마일리지를 나눠줍니다. 그리고는 다시 예전처럼 공항으로 향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자신의 행선지를 향해 기계적으로 이동하는 대신, 미국의 수많은 도시들로 향하는 비행편이 빼곡하게 채워진 운항 스케줄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젖습니다. 예전의 라이언이었다면, 그에게 저 수많은 행선지들은 단순히 자신이 업무를 하러가는 공간 그 뿐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가 찾아가야 하는 것은 생명력이 없는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그 장소를 채워주고 있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도 알지 못한 채 곧 해고되어 추락할 운명에 처하겠지만 소중한 가족들이 있기에 다시금 기운을 낼 수 있겠죠. 라이언이 그랬듯 말이죠.
영화의 마지막에서 라이언은 더이상 외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홀로있어도 자신과 대면하여 자기 자신을 인생의 동반자로 받아들임, 즉 고독의 시간을 가질수 있게 되어 외롭지 않기 때문이고, 타인에게 향하는 문을 닫아버린 채 고독의 시간을 갖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길을 열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즉, 하우게의 말처럼 '내가 빛나는 건, 이기적이고 편협하게 나만을 위해서 그리고 어쩌면 나로 인해서'가 아니라 '나의 뒤에서 어둠을 담당해준 나의 사람들'이 있어서 이고, 그러니 내가 빛나는 순간은 나와 그들이 함께 만든 순간'이란 사실, 내가 홀로하는 순간, 나는 나와 함께 있지만 또 너와 함께 한다는 진리가 겨울밤 하얀 눈처럼 그의 마음에 내려앉아있기에 라이언은 외로울 필요가 없어진 것입니다.
처음의 제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인디에어를 보고 저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니, 어린 시절 제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온통 책에 빠질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미성숙한 수준이나마 독서를 통해 고독의 시간을 가졌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인이 되어 책과의 오롯한 시간에 대한 관용이 적어지는 건, 저 역시 홀로 있음을 못견디고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수많은 이유들을 합리화해가며 점점 고독의 시간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동시에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제라도 잠시 세상과의 문을 닫고 나 자신에게 오랜만에 말을 걸어보아야 겠습니다. 그러다보면 책과의 대화도 시작할 수 있지 않을 까 싶습니다. 내가 원할 때 언제든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문이 있고, 문밖에는 나의 사람들이 있음을 알고있으니 저의 고독의 시간이야말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달콤한 그리움, 재회의 반가움이 가득한 시간이 될 것 같아 살짝 설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