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마일펄 Jan 18. 2021

신비로운 동화 속 탐험을 떠나다

백만장자의 취향이 담긴 '헤갈레이라 별장'

오늘은 435번 버스를 타고 헤갈레이라 별장과 몬세라트를 갈 계획이다.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완만한 언덕을 따라 조금 올라가자 우거진 나무들 뒤로 그림 같은 헤갈레이라 별장이 나타났다. 꼭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한 우아한 귀족 부인이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여름휴가를 와서 편안한 시간을 즐기고 있을 것 같았다. 즐겨하는 게임 심즈에서 백만장자만큼 부유한 심만이 소유할 수 있는 웅장하고 로맨틱한 저택이 눈앞에 있었다. 헤갈레이라 별장은 벽돌 사이사이 회색빛 라인이 그어져 있는 독특한 흰색 외벽이 인상적이다. 고딕 양식이 반영된 뾰족한 첨탑, 저택의 지붕과 창문은 제로니무스 수도원과 벨렝탑에서 본 아름다운 마누엘 양식으로 장식돼 있다.


수풀 너머 보이는 헤갈레이라 별장


별장의 백미는 울창한 나무로 둘러싸인 산책로가 펼쳐진 미로 같은 정원이다. 영어로 ‘Initiation Wells’라고 쓴 표지판을 따라가다 보니 마침내 찾아 헤매던 신비로운 ‘우물’에 도착했다. 고개를 숙여 내려다보니 지하 저 바닥 아래까지 내려갈 수 있는 나선형 계단이 연결되어 있다. 영화 <해리 포터> 시리즈의 한 장면이라면 깊은 지하에서 포악한 용 한 마리가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올 것 같다. 정말로 불을 뿜는 날개 달린 거대한 용이 있는지 없는지 내려가 보기로 한다.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살짝 긴장한다. 호기심과 상상력 덕분에 여행과 인생은 더 즐거운 것 같다.


지하 27m 깊이인 이곳은 포르투갈어로 Poço Iniciático, ‘입회 우물’이다. 하지만 익히 알고 있는 우물처럼 물을 긷는 용도로 사용하진 않았고, 템플 기사단 등 비밀결사조직의 입회식이 이뤄졌다고 추정한다. 입회 우물은 마법의 숫자로 여겨지는 3에 3을 곱한 값인 9층 구조이다. 나선형 계단을 따라 한참 걸어서 우물 바닥까지 내려간 뒤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봤다. 둥그런 우물 입구 너머로 눈부신 햇살, 초록빛 잎사귀와 조금 전 나처럼 아래를 내려다보는 사람들의 얼굴이 조막만 하게 보였다. 다음에는 우물과 연결된 은은한 조명이 비추는 어둡고 좁은 지하 통로를 따라 걸었다. 인공 동굴 끝에서 새어 들어오는 햇빛을 향해 걷고, 브로콜리수프 빛깔 연못과 징검다리를 건너 탐험을 계속한다. 이처럼 신트라에서는 책이나 영화를 보며 가진 동화적 환상을 끊임없이 충족할 수 있다.


아래에서 올려다 본 우물


중세를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 소설이 연상되는 나선형 계단


초록빛 연못과 징검다리


헤갈레이라 별장은 브라질의 커피 재벌 안토니우 카르발류 몬테이루 António Carvalho Monteiro가 이탈리아 건축가 루이지 마니니 Luigi Manini에게 의뢰해 설계했다. 안토니우는 백만장자 몬테이루 Monteiro dos Milhões라고 불릴 정도로 대부호였는데, 1892년에 헤갈레이라 남작의 저택을 사들여 자신의 취향과 이상에 맞게 개조한다. 자신의 취향에 맞게 개조하고 꾸민 드넓은 정원과 호화로운 저택이라…… 정원 부지는 너무 커서 숲을 방불케 하고 길을 잃을까 염려될 정도이다. 대체 어느 정도의 재력을 갖춰야 이런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우고 실행할 수 있을까. 오늘날과 비교하면 개인용 비행기로 전 세계 어디든 자신이 원하는 때에 날아갈 수 있는 정도일까. 부동산을 매입할 때 국내를 넘어서 전 세계를 대상으로 고려하는 수준일까. 중세 신화에 등장할 법한 용 한 마리는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는데 백만장자의 사고방식과 일상생활은 전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이전 20화 포르투갈 신트라 '페나 성'에서 엇갈린 만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