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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Jan 20. 2021

때론 포기하는 것도 큰 용기입니다

드넓은 '몬세라트'를 걷다가 얻은 깨달음

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드를 느끼면서 헤갈레이라 별장이 보이는 헤갈레이라 별장 야외 카페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었다. 아늑하고 단정한 카페에서 보낸 싱그러운 짧은 시간은 여전히 기억에 남아있다. 식사 뒤 몬세라트 Palácio&Praque de Monserrate에 가고자 별장에 올 때 내렸던 버스정류장에 다시 갔다. 신트라역에서 탄 435번 버스는 헤갈레이라 별장을 지나 몬세라트로 향하기 때문이다. 몬세라트행 버스를 타는 사람은 나 혼자였고 버스 안에도 사람은 많지 않았다. 아마도 관광객 대부분은 신트라역 앞에서 434번 버스를 타고 인기 관광지인 무어성과 페나성으로 향하는 모양이었다.


몬세라트는 고요했다. 입장객은 나 외에 커플 한 쌍이 전부였다. 포르투갈에 온 뒤로 언제나 사람으로 붐비는 오버투어리즘을 경험했기에 한산한 관광지는 낯설었다. 몬세라트에 온 이유도 호기심 때문이다. ‘환상 속에 숨겨둔 비밀의 정원을 찾고 있다면 몬세라트로 가자.’라는 여행서에 적힌 이 한 줄을 읽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신트라 왕궁, 무어성, 페나성, 헤갈레이라 별장과 달리 몬세라트는 지도에 정확한 위치가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그저 신트라 빌라 서쪽으로 ‘몬세라트 가는 길’이라고 붉은 화살표로 표시돼 있었다. 지도에 표시하지 못할 만큼 꽤 먼 거리구나 싶으면서 과연 어떤 곳일지 궁금증은 더 커졌다.


‘숨겨진 비밀의 정원’은 몬세라트와 꼭 맞는 수식어였다. 입구를 지나 표지판을 따라 내려가자 거대한 이국적인 정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헤갈레이라 별장의 정원이 숲에 길을 내 만든 모양새라면, 몬세라트는 인위적으로 조성한 대형 정원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멕시코 정원에서는 처음 보는 독특한 여러 식물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가도 가도 끝이 나질 않는 멕시코 정원을 한참 걷다가 영국 정원에 도착했다. 여기에는 장미가 품종별로 심겨 있는 모양이었다. 가을이라 꽃은 자취를 감췄고 장미 줄기와 품종이 적힌 표지판밖에 볼 수 없어서 아쉬웠다. 봄에 장미가 만발하면 환상적인 광경일 것 같다.


몬세라트 공원


몬세라트 공원


야성미 넘치는 정원은 18세기에 부유한 영국 상인 제라드 드 비슴 Gerard de Visme이 조성했다. 이후 풍경화가 윌리엄 스톨데일 William Stockdale이 런던 큐 왕립식물원 Kew Gardens의 지원을 받아 정원을 확장한다. 런던 큐 가든에 갔을 때 놀랐던 기억이 떠올랐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드넓은 잔디밭을 자유롭게 거니는 공작 두 마리가 눈에 띄었다. 순간 ‘내가 지금 출입제한 구역에 잘못 들어왔나?’ 싶었다. 날개를 활짝 펼 수 있는 공간이 겨우 확보된 쇠창살로 막힌 동물원 좁은 우리에 갇힌 공작이 이때껏 익숙했기 때문이다. 머리를 한 대 쿵 맞은 듯한 충격이었다. 자연에서 자유롭게 활보하는 동물이 자연스럽고, 우리에 갇힌 모습이 부자연스러운 상황인데 오히려 반대로 생각하고 있었다. 큐가든에서 공작은 공작대로 자유로웠고 나는 제대로 된 길로 접어든 게 맞았다. 몬세라트와 큐 가든은 고유한 자연의 매력은 살리되 인공으로 조성한 정원과 건물이 잘 조화를 이룬 면에서 서로 닮아있었다.





몬세라트 궁전은 외관부터 범상치 않다. 아라비안나이트의 주인공인 셰에라자드 Scheherazade가 살고 있을 것 같다. 가톨릭 국가인 포르투갈에 있을 법한 건축물은 아니다. 독특한 개성이 넘치는 무어성, 페나성, 헤갈레이라 별장에 이어 몬세라트 궁전까지…… 신트라는 잠시도 지루할 틈이 없는 종합 선물세트 같은 다채로운 도시이다. 언덕 꼭대기에 있는 화려한 이 건물은 영국인 백만장자 프랜시스 쿡 경 Sir Francis Cook이 19세기에 건립했다. 무어-고딕-인도 양식이 혼합된 궁전이다. 식물을 모티브로 한 독특한 문양이 어우러진 패널과 일렬로 늘어선 붉은 기둥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시공간을 뛰어넘어 인도 무굴 제국에 있는 듯했다. 그나저나 백만장자가 이토록 흔했던가?


몬세라트 궁전


몬세라트 전체 면적은 30ha(헥타르)라고. 30ha는 300,000㎡이자 90,750평이다. 축구장 면적을 약 7,500㎡(약 2,250평)라고 했을 때 축구장 40개를 합친 면적이다. 어쩐지…… 비탈길을 따라 조성된 정원을 계속 내려갔다가 영국 정원에서 몬세라트 궁전까지 올라가는데 숨이 엄청나게 찼다. ‘궁전이 거기서 다 거기겠지’라고 포기하려던 찰나에 궁전이 모습을 드러냈기에 간신히 궁전 관람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인생은 늘 포기하려던 마지막 순간에 길이 열리는 것 같다’라고 하기엔 그렇게 성공한 기억들만이 남아있어서 성립하는 말이라고 믿는다. ‘조금만 더 힘을 내보자.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야. 이번에 시도해보고 안 되면 포기하자’라고 마음을 먹은 뒤 마침내 성취한 이야기가 주로 회자하기 때문이다. 같은 마음을 먹고 결국 실패한 경우는 잘 알려지지 않는다. 그렇게 실패한 이야기도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최종 승리를 거뒀을 때 에피소드 과정으로 인정받는다.


“때론 포기하는 것도 큰 용기입니다. 힘들면 그냥 포기하세요.”


tvN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최고의 투수에서 수감자로 전락한 김제혁 선수가 싱어송라이터가 꿈인 한 교도관의 딸이 만든 음악 CD에 사인과 함께 남긴 말이다. 2년 동안 성과 없이 꿈을 이루고자 음악에 매진하던 중 낙담한 교도관의 딸은 최고의 야구 선수에게 응원을 얻고자 했는데 의외로 ‘포기하라’는 메시지가 돌아왔다. 포기하지 않고 각고의 노력 끝에 이룬 성취의 열매는 더없이 달콤하다. 내가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언덕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결국 몬세라트 궁전을 볼 수 있었듯이. 하지만 몬세라트 궁전을 꼭 보지 않았어도 나는 인생을 계속 다른 의미 있는 일들로 채워갔을 것이다.


같은 목표를 놓고 경쟁을 해야 할 때는 필연적으로 승패가 갈릴 수밖에 없다. 주목받는 승자는 극소수이고 대부분은 쓴 고배를 마신다. 무조건 포기하고 나태하여지라는 말이 아니다. 다만, 마지막 기회라고 믿는 대다수 사람에게는 길이 열리지 않는 것도 사실이기에 분명 ‘때론 포기하는 것도 큰 용기’일 것이다. 모순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후회가 남지 않도록 스스로가 믿는 최선을 다하며 자신에게 물었을 때 부끄럽지 않은 시간을 가꾸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도전을 계속하든, 결국 포기를 하든 그 시간을 차곡차곡 모으면서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한 번 즈음은 ‘포기하려던 마지막 순간에 길이 열리더라고요’라는 말을 하는 주인공으로 주목받는 행운이 찾아오지 않을까. 아님, 말고. 이미 내가 내 인생의 충실하고 진실한 주인공인걸.


참! 몬세라트에 갈 계획이라면 튼튼한 체력과 근력, 편안한 운동화, 든든한 식사, 틈틈이 목을 축일 물은 필수이다. 조용한 자연과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천국 같은 곳이다. 아닌 사람에게는 별 감흥이 없을 수도 있다. 아마도 몬세라트 대신 페나성을 둘러본 후 넓은 페나 정원을 거닐어도 충분히 만족할 것이다나에게 몬세라트는 잠시나마 소음과 번잡함에서 벗어나 마음을 다독이고 정화한 장소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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