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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Jan 25. 2021

"이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있어요"

포르투의 악몽

“이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있어요. 3박 4일 동안 아주 편안하게 숙소에 머물렀다고요. 떠날 때 나에게 열쇠를 직접 건넸고 무려 반갑게 작별 인사를 나눴고요. 심지어 그녀는 내 영어를 거의 알아듣지 못해서 여러 번 설명을 해줬어요.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선의를 악의로 보답하다니. 너무 화가 나네요. 이 사람 말은 들을 가치조자 없어요”


여기에서 이 사람, 그녀는 나를 지칭한다. 숙박 앱에 포르투 숙소 후기를 남겼더니 흥분한 호스트가 나를 모함하며 남긴 답변 글이었다. 나에게 해명하는 글은 아니었다. 내 리뷰를 볼 예비 앱 방문자에게 내가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널리 알리는 글이었다. 어투는 공격적이고 적대적이었다. 나는 호스트가 남긴 허위 사실 때문에 공개적으로 명예훼손을 입었다. 졸지에 거짓말쟁이에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악의에 찬 사람으로 전락했다. 지금도 답변을 떠올리면 목에 가시가 걸린 것만 같다. 호스트의 거짓 답변은 내게 칼이 되어 아직까지도 가슴에 응어리져있다.




예약한 포르투 숙소는 조리대와 가스레인지, 세탁기 등이 갖춰진 원룸형 아파트였다. 숙박 앱 평가도 좋고 깔끔해 보여서 골랐다. 여행 막바지라 빨래를 할 수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이번에는 호스트에게 미리 공유한 시간에 딱 맞춰서 숙소에 도착했다. 리스본에서 여행자 임대 아파트를 이미 경험했기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고자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숙소는 사진으로 본 그대로였다. 공간은 넓었고 깨끗했다. 조리기구와 세탁기도 잘 작동했다. 호스트는 매우 친절했다. 포르투 지도를 펼쳐서 현지인이라서 알 수 있는 꽤 먼 거리에 있는 해수욕장까지 상세한 설명을 아끼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체크아웃을 할 때는 열쇠를 그냥 테이블 위에 놓고 가면 된다고 안내했다.


여행을 한 지 일주일이 지나자 꽤 피로했다. 호스트가 떠난 뒤 잠시 침대에 누워서 고단한 몸을 달래기로 했다. ‘쿵, 쿵, 쿵, 쿵’, ‘블라 블라 블라 블라’ 침대는 포근했으나 주변 환경은 전혀 아늑하지 못했다. 머문 객실은 1층인데다가 건물은 유동인구가 많은 도보에 딱 붙어있었다. 닫힌 창문 너머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소리, 말소리 심지어 그들의 그림자가 끊임없이 지나갔다. 차가 내는 굉음에 가까운 소음은 두말할 나위 없이 초 단위로 계속 들렸다. 2, 3층에 머무는 사람들이 계단을 오르내리는 소리는 별것 아니었다.


각종 소음도 스트레스였지만 모르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계속 왔다 갔다 하니까 심리적으로 불안했다. 꼭 파놉티콘에 갇힌 것처럼 낯선 누군가에게 감시받는 기분이 들었다. 맞은편 건물이 너무 가까워서 창문을 열어 환기할 엄두를 낼 수도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안이 훤히 들여다보여 블라인드조차 올릴 수 없었다. 자연광은 고사한 채 어두운 실내는 몇몇 조명에 의지할 뿐이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면서 마음을 편히 먹어보려고 했다. 결국 한 시간도 채 버티지 못하고 침대를 박차고 일어났다.


‘포르투는 옛 건물들이 많아서 늘 보수 공사를 하고 있어요. 종종 발생하는 소음에 지역민은 익숙하지만 처음 방문하신 분은 아닐 수도 있어요. 필요한 분은 준비된 귀마개를 사용하세요’라는 메모를 발견했다. 협탁 위에 귀마개 두 쌍과 같이 놓여있었다. 황당했다. 포르투 전역이 이처럼 소음에 시달린다면 주민들은 일찌감치 전부 아름다운 포르투를 떠났을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투숙객을 위하는 것처럼 친절하게 적은 문구이지만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호스트가 분명히 이 공간은 시끄럽다고 알고 있다는 증거였다. 투숙객 중 이 사실을 호스트에게 문제제기를 한 적이 있다는 말이었다. 그럴싸하게 포장해서 현실을 왜곡한 메모에 화가 나서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역시나 귀마개로는 해결이 되지 않았다. 숙소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주변이 소란스러워도 상관이 없었다면 상대적으로 비싼 원룸형 아파트에 투숙할 이유가 없었다. 여러 명이 함께 쓰는 게스트하우스면 충분했다. 이번 여행에서는 쾌적하고 조용한 숙소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내는 일도 중요했다. 남은 여행을 망칠 수는 없었다. 숙소를 옮기면 계획에 없던 지출이 생기는 걸? 방을 옮겨 달라고 요청할까? 등을 고민하다가 오늘 하룻밤은 견디고, 내일 숙소를 옮기기로 마음을 먹었다. 솔직하게 '1층이라서 소음이 크다고 느끼실 수도 있어요'라고 적혀 있었다면 상황이 좀 바뀌었으려나. 일단은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다음 날, 호스트의 안내대로 테이블 위에 열쇠를 올려놓고 조용히 방을 빠져나왔다. 새로 예약한 숙소는 한 블록 거리라 별로 멀지 않았다. 3층이고 골목 안쪽이라 조용하다 못해 적막했다. 보수 공사 때문에 도시 전체가 소음에 시달린다는 호스트의 주장은 억지라고 증명됐다. 소음은 숙소와 방의 위치 때문인 게 확실했다.


3박 요금을 지불한 채 그곳에서 하루밖에 머물지 못했다. 그조차도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으며 불안한 마음을 겨우 참았다. 숙소를 옮기느라 한 도시에서 도시세도 두 번이나 지불했다. 떠날 때 직접 열쇠를 받았다는 호스트의 답글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그녀와 나는 체크인할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주쳤다. 사실 왜곡으로도 모자라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며 무시하고 차별했다. 누군가가 지어낸 없는 사실 때문에 모함을 받고, 외국인에게 밑도 끝도 없이 무시와 차별을 받는 경험은 난생처음이었다.


별점 평가를 중요시하는 호스트를 탓하고 싶지는 않다. 높은 별점과 평가는 그녀의 영업 활동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테니까. 하지만 나는 결국 숙소를 옮겼고 추가 비용을 지출했다. 나처럼 소리에 예민하거나 숙소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자 하는 이들에게 내 리뷰는 꼭 필요한 정보라고 생각했다. 대체로 투숙객들은 숙소에 높은 만족감을 나타냈기에 내 평가는 소수의견이라 대세에 지장도 없었다. 심지어 리뷰는 바로 등록되지 않고 앱 운영자의 승인 절차를 거쳐 수일 후 공개되는 정보이다. 의견을 수용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호스트의 자유이자 선택이라 치더라도, 거짓말과 무시하는 말로 남을 모함하고 공격 하다니 …… 무척 실망스럽고 상처를 받았다. 인간의 추악한 양면성을 보았다. 몇십만 원짜리 특별한 인생 경험이었다.




‘You are bad guests’ 스위스 그린델발트 호텔을 체크아웃할 때 호텔 매니저가 건넨 말이다. 식당 등 부대시설을 이용하지 않아 추가 비용이 없자 아쉬운 마음에 튀어나온 농담이었다. 동생은 ‘저희는 나쁜 손님이 맞아요. 하지만 걱정 마세요. 금방 또 올 거니까.’라고 응대했다. 호텔 매니저는 이어서 ‘한국에서 스위스가 얼마나 먼 지, 이곳까지 여정이 얼마나 긴지 잘 알고 있어요. 쉽게 올 수 있는 곳이 아니지요. 찾아줘서 고맙고, 남은 여행도 즐겁게 보내세요’라고 배웅을 했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이 담긴 공감하는 짧은 한 마디에 스위스는 참 좋았던 곳이라고 기억 속에 최종 저장되었다.


나쁜 손님과 거짓말쟁이. 둘 다 부정적인 표현인데 말하는 사람의 의도 때문에 하나는 행복한 추억으로, 다른 하나는 꺼내고 싶지 않은 악몽으로 남아 있다. 여행의 오랜 기억은 결국 사람과 말 한마디가 좌우하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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