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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Jan 13. 2021

포르투갈 신트라 '페나 성'에서 엇갈린 만남

동화 속 상상의 궁전, 페나 성(페나 국립궁전)

신트라에는 상상 속에 존재한다고 믿던 성들이 실제로 존재한다. 페나성 Palácio Nacional da Pena과 헤갈레이라 별장 Quinta da Regaleira도 그 상상 속 성이다. 상상이 현실로 구현된 동화 속에서 툭 튀어나온 광경을 보며 ‘시간이 걸리고 돈이 들 뿐 세상에 구현하지 못하는 기술은 없다’라던 개발자 친구가 한 말이 떠올랐다.


무어성을 걷다가 저 멀리 산꼭대기에서 알록달록한 건축물을 보았는데, 긴가민가한 그 성이 바로페나성이었다. 기운이 빠질 때 즈음 눈에 들어온 페나성을 바라보며, 오늘 저곳에도 가겠다는 일념으로 다시 힘을 내 무어성을 한 바퀴 완주했다. 오전 11시가 지나자 무어성을 찾은 사람이 부쩍 늘었다. 다시 434번 버스를 타면 페나성에 갈 수 있지만, 나는 미리 준비한 과일과 빵으로 간단히 요기한 뒤 15분 남짓 오르막길을 걸어 페나성에 도착했다.


정오를 조금 지난 시각, 페나성 입구는 이미 관광객으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놀이공원이나 공항 체크인 데스크에서 볼 수 있는 지그재그로 이동하는 입장 대기 줄에 사람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서 있었다. 투박한 무어성보다 화려한 외관이 눈길을 사로잡는 페나성에 더 매력을 느끼는지 이곳에는 단체 관광객을 싣고 온 대형 버스가 많이 주차돼 있었다. 요즘엔 ‘이렇게 외진 곳에 사람이 올까?’ 싶은 외딴 섬에 있는 소문난 관광지나 음식점도 막상 가보면 줄을 서서 기다려 입장하는 시대이다. 모두 인터넷과 스마트폰, 와이파이와 LTE, 검색과 추천기술이 발전한 덕분이다.


무어 성에서 페나 성 뒷면이 보인다




페나성이 매력적인 이유는 독특한 색감과 여러 양식을 섞어 놓은 형태 때문이다. 지금껏 내가 본 유럽의 웅장하고 화려한 성(궁전)은 완벽한 좌우대칭을 추구한다. 성을 쌓은 회색 또는 갈색 돌의 빛깔이 외관에 고스란히 드러나고, 외벽에는 대형 직사각형 창문이 똑같은 모양으로 연달아 뚫려 있다. 반면, 페나성은 개나리 같은 노란색, 벽돌보다 채도가 높은 붉은 색 도료로 외벽이 칠해져 있다. 어떤 외벽은 작은 연보라색 타일을 하나씩 이어 붙여 전체를 감싸며 고풍스러운 문양을 자아낸다. 곡선과 원기둥, 원뿔 모양을 적절히 활용해 획일적이지 않도록 제각기 다른 모양으로 건물을 지어 재미를 더한다. 전통적인 유럽 궁전보다 모스크가 특징인 이슬람 사원이나 테트리스 게임에 등장하는 러시아 성당이 떠오르지만, 또 그것들과 똑같지는 않다. 이렇게 여러 양식에서 영감을 얻어 아름다운 신트라에 어울리는 낭만적인 독특한 성이 탄생했다. 바깥으로 넓게 돌출된 물결처럼 굴곡진 야외 테라스도 인상적이다. 이곳에서 푸르른 산과 어우러진 신트라를 바라보노라면 세상의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질 것 같다.


페나성은 19~20세기에 영국, 벨기에, 포르투갈, 불가리아 등을 통치한 작센 코부르크 고타 왕가 Saxe Coburg-Gotha의 페르난두 Fernando가 1840년에 프러시아 건축가 루트비히 본 에슈베게 Ludwig von Eschwege에게 의뢰해 만들었다. 무어 양식, 마누엘 양식, 네오 로마네스크 등이 섞여 있는 19세기 포르투갈 낭만주의의 걸작으로 꼽힌다.


알록달록 신기한 '페나 성'


포르투갈 신트라 '페나 성'




나는 여행에서도 사진을 많이 찍는 편이 아닌데, 알록달록한 어여쁜 궁전을 마주하니 평소에 없던 사진 욕심이 생겼다. 성 입구에 도착한 뒤부터 실컷 관람하고 성을 나설 때까지 쉬지 않고 사진을 찍었다. 성 입구를 나설 때조차 발걸음을 늦춰 쉴 새 없이 셀카봉 버튼을 눌러 수도 없는 셀프카메라 사진을 남겼다. 이 특별한 사진을 혼자 간직하기는 아쉬워서 SNS에 공유하니 모처럼 댓글이 몇 개 달렸다. 하나 둘…… 댓글을 읽다가 순간 화들짝 놀랐다.


‘엇! 저도 오늘 페나성 갔었어요. 아침부터 점심 정도까지 있었어요.’


전 세계 수백 개 나라 중 포르투갈에, 포르투갈 수많은 도시 중 신트라에, 신트라 여러 인기 관광지 중 하필 페나성에, 같은 날 비슷한 시각에 지인이 함께 머물고 있었다. 뉴욕이나 런던, 도쿄, 파리 같은 메트로폴리스나 포르투갈 대도시인 리스본, 포르토라면 그럴 수 있다, 생각했을 것이다. 세상 참 좁다지만 이렇게 좁은 줄은 미처 몰랐다. 괜히 머리는 서늘하고 등골은 오싹했다. 갖은 인위적인 표정을 지으며 셀프카메라에 집착하던 낯부끄러운 모습을 지인에게 들킨 것만 같아 얼굴에 열이 올랐다. 물론, 지인은 그곳에서 나와 마주치지 않았기 때문에 댓글로 자신의 안부를 전한 것이지만. 여행지에서 스쳐 지나간 관광객은 어차피 두 번 다시 마주칠 일 없다는 생각에 혹시나 평소 하지 않던 몰염치한 행동을 하지는 않았는지 자신을 스스로 돌아봤다. 지금 아무도 나를 모르더라도 그중 누군가는 언젠가 나를 알게 될지도 모르며, 내가 사는 이 지구는 참 좁으니 언제, 어디서든 자유의 의미를 남용하지 말고 나 자신에게 떳떳하게 살아가자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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