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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Mar 16. 2024

엄마가 여전히 안타까운 딸들에게 하고 싶은 말

왜 착한 엄마는 무능한 아빠와 이혼을 안 할까?

성인이 된 딸들이 가부장적인 환경에서 안타까운 인생을 산 엄마가 안쓰러운 마음에 엄마를 벗어나지 못하고 주위를 맴도는 경우는 매우 흔합니다.


친구처럼 엄마와 통화도 자주 하며 일상을 나누고 하소연을 들어주고, 여전히 권위적인 아버지에게 엄마 대신 맞서서 엄마를 보호하고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되찾아주고, 힘든 인생을 산 엄마를 기쁘게 하고자 기꺼이 내 돈으로 같이 여행도 가고 맛집도 가고 좋은 공연도 관람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혼자서 또는 다른 사람들과 좋은 여행지나 음식점을 가면 힘들게 나를 키워준 엄마 생각이 먼저 납니다. ‘다음에 엄마와 다시 꼭 와야겠다’라고 다짐하며 버킷리스트로 남겨둡니다.


오늘도 무능력하고 고집불통인 아빠 때문에 자신이 얼마나 힘든 하루를 감내했는지, 취업준비생인 동생의 예민함 때문에 얼마나 눈치를 보고 있는지, 동네 친구가 상처 주는 말을 해 얼마나 억울했는지 – 책임감 강하고 착한 엄마가 계속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고자 무능하고 무례한 주변 사람들 때문에 얼마나 인내하고 전전긍긍 살고 있는지 듣고 있으면 ‘엄마의 인생은 왜 하루도 편할 날이 없을까. 주변 사람들은 왜 엄마를 가만두지 않을까’ 안쓰럽고, 엄마를 괴롭게 한 사람들에게 화가 납니다. 순하고 바보 같은 엄마를 더 잘 이해하고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어쩌면 딸들은 부모에게 제대로 사랑과 인정받지 못하고, 어렸을 때부터 자기 욕망에 충실하기보다 타인의 욕망에 따라 그들을 돌보는 데 익숙한 안타까운 자신의 모습을 엄마에게 투사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엄마를 챙기고 돌보는 건 결국 안쓰러운 자기 자신에게 무한한 사랑을 베풀고 따뜻하게 돌보고 싶은 결핍을 만회하려는 시도인 셈입니다. 


지금부터 하는 말들은 다소 불편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저의 독립성을 저해하고 의존성을 부추긴 헌신적이고 의존적인 엄마에게서 벗어난 과정이기에 글을 이어가려고 합니다.


정말 착한 엄마는 안쓰럽고 안타깝고, 고집불통 아버지는 무능하고 나쁜 걸까요?


여기서 중요한 건 착한 엄마가 나쁜 아버지와 여전히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다는 겁니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비로소 소리가 나는 것처럼, 인간관계도 궁극적으로는 두 사람의 역학 관계로 만들어집니다. 서로 무의식적으로 무엇인가를 주고받고 상호 의존하며 각자에게 만족감을 주는 지점이 있기 때문에 관계가 깨지지 않고 (비록 역기능적일지라도)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겁니다.                    

역학 관계 力學關係
부분을 이루는 요소가 서로   의존적으로 제약하는 힘의 관계


한마디로 안타깝고 착한 엄마도 나쁘고 무능한 아버지에게서 (무의식적으로) 자신에게 중요한 가치(결핍)를 채우고, 얻는 것이 있기 때문에 그 불행해 보이는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겁니다.




그럼, 엄마는 대체 무엇을 얻고 있었을까요?


각 가정의 사정과 상황, 엄마의 성격과 성향 등에 따라 차이는 있더라도 대체로 다음의 것들을 충족하고 있을 겁니다.



- 가정의 울타리에서 경제적 안정성을 획득해 자신의 의식주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생존의 욕구를 충족하고 있습니다.


- 부족하고 못난 남편을 돌보고 챙기는 확고한 역할에서 매사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삶의 의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 남편이 무능하고 무책임하고 못된 사람일수록 가정을 버리지 않고 곁에서 지키며 자신을 희생하는 것은 주변의 안타까움과 연민, 동정을 불러일으키고, ‘대단한 사람’, ‘책임감 있는 사람’, ‘불쌍한 사람’, ‘선하고 좋은 천사 같은 사람’이라는 인정과 평판을 얻게 됩니다.


-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자식들을 위한다는 핑계로) 이혼하지 않고 강한 인내심과 절제력을 발휘해 가정을 지켜내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 이혼녀라는 부정적인 사회적 시선과 편견을 회피할 수 있습니다.



착하고 이해심 많은 엄마는 생각보다 훨씬 사회적 시선에 민감하고, 여러 편견에 사로잡혀 있으며, 융통성은 부족하고 고집이 센, 전통적인 가치관을 사수하는 보수적인 사람입니다. 남자가 여자보다 우월하며, 여자는 남자에게 보호받아야 한다는 성 차별적인 사고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엄마와 분리되지 못하고 동조하고 있는 나도, 겉으로 드러나는 이성적인 모습과는 다르게 이러한 엄마와 비슷한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여성에게 경제력이 없고, 이혼한 여성을 향한 부정적인 편견이 강했으며, 가정에서 여성의 가사와 돌봄, 자녀 양육이 당연시되던 시대를 산 엄마가 안타깝지 않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지만 딸의 관점에서 착한 엄마의 안쓰러움을 확대해서 보는 것과는 달리, 엄마는 아빠와의 관계에서 엄마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한 많은 결핍을 충족해 왔다는 겁니다. 물론, 이것이 올바르거나 바람직한 행동이라고 옹호하는 것은 아닙니다. 불쌍해 보이며 딸의 공감과 위로, 연민과 동정, 동조를 이끌어낸 건 일종의 엄마의 생존 전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엄마는 (의식하지 않았어도) 자신의 생존에 유리하게 자식을 포함한 주변의 여론 등을 의식해 철저히 이용하며 적응해서 오늘날에 이른 것이니까요.


지금보다 억압적인 시대를 산 엄마를 안타까워하는 마음은 인지상정이지만, 그렇다고 엄마의 인생 전체를 불쌍하다고 함부로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모를 뿐인지 아버지와의 결혼생활이 엄마에게도 대체할 수 없다고 믿은 행복과 기쁨이 존재했기에 지금까지 관계를 끌고 온 것일 테니까요. 비록 아이 같이 연약해 보이지만 엄마는 무의식적으로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조작할 줄 아는 여우 같이 영악한 연륜 있는 어른입니다. 최소한 내가 계속 감정을 살피고 돌봐야 한다며 착각해서 끌려다닐 만큼 약한 존재는 결코 아닙니다. 따라서 엄마를 오로지 안쓰러운 시선으로만 바라보며 성인이 된 내가 그 인생을 보상할 책임과 의무는 없다는 말입니다.




매정하게 들릴지라도 엄마의 지나간 시절을 놓아두고 2024년의 내가 살고 있는 각자의 20대, 30대, 40대…… 현재의 시대를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세대가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는데 나는 무슨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집중해야 합니다. 윗세대인 엄마가 아니라 아래 세대인 10대가 더 나은 세상을 살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이것이 정말로 보살핌이 필요한 엄마를 할 수 있는 능력 내에서 보살피지 말라는 의미는 아니라는 거 아시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엄마에게 투사한 (과도한) 관심과 사랑, 돌봄과 배려를 우선은 나 자신에게로 돌려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그토록 받고 싶어 하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자기 자신에게 주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서 받았으면 하고 꿈꾸던 사랑을 자신에게 주는 것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긍정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너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다른 누구도 사랑할 수 없다 You never love anybody if you are unable to love yourself”는 격언이 딱 들어맞는 순간이었다. 이제 나는 그 격언을 이렇게 고치겠다. “너 자신에게도 주지 않는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받을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하지 마라 Do not expect to receive the love from someone else you do not give yourself”
_벨 훅스, <All about Love(이영기 옮김, 책읽는수요일, 2012.10)>, 105쪽 중에서



헌신하고 좋은 사람 같지만 독립심을 저해하고 의존적인 엄마와의 구체적인 일화는 아래 글을 참고해 주세요.



<부모님과 헤어지는 중입니다>를 구매하시면 더욱 풍성한 이야기를 읽으실 수 있습니다.


이 책의 부제는 '알코올 중독 아버지와 가스라이팅 어머니로부터의 해방일지'입니다. 

억압하고 지배적이며 자기중심적인 부모에게서 정서적으로 독립한 과정을 그린 개인적인 경험담입니다.

부모에게 제대로 사랑을 받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온전한 사랑을 제대로 주고받는다는 의미와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지 깨달은 과정을 쓴 책으로, 착취하는 관계에서 나 자신을 보호하는 법도 담고 있습니다.


좀 더 자세한 책 소개는 각 온라인서점을 확인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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