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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Sep 04. 2020

바깔라우전문점에서 '왜 대구 요리밖에 없냐'고 푸념했네

포르투갈 신트라 트렌디한 대구요리전문점 'Bacalhau na Vila'

Bacalhau na Vila(바깔랴우 나 빌라)라는 식당을 가기로 했다. 사실, 혼자 여행할 때는 레스토랑에 가기 꺼려진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많은 양을 다 먹지 못해 남기는 양이 더 많기 때문이다. 정갈한 음식을 맛보러 갔다가 지구에 음식물 쓰레기를 더했다는 죄책감에 우울해지고 싶지는 않다. 바깔랴우 나 빌라는 메뉴별로 저렴한 가격에 비례해서 양도 적어 보였는데, 나처럼 위가 작은 홀로 여행하는 사람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신트라 궁전 부근의 거미줄처럼 얽힌 상점 골목을 돌고 돌아 마침내 바깔랴우 나 빌라를 발견했다. 너무 배가 고파서 중간에 포기할 뻔했지만, 그랬다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초콜릿 케이크를 먹는 행복을 누릴 수 없었겠지.


자리에 앉아 영어로 쓰인 메뉴판을 찬찬히 살펴봤다. 스페인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로 된 메뉴판도 있었다. TRADITIONAL CODFISH TAPAS, OUR RECIPES OF CODFISH TAPAS 라는 항목 안에 다양한 대구 요리들이 있었다. 다행히 영어 단어 Codfish가 생선 대구라고 알고 있었다. 대구 수프, 대구 샐러드, 대구구이, 대구 샌드위치…… 대구 살을 으깨서 수프나 샐러드, 샌드위치를 만드나 보군. 대구 케이크? 대구 패스추리? 대구로 케이크와 페스추리를 만든다고? 한국에 여행 온 외국인이 Korean Pancake라는 부침개 영문 번역을 보고 익숙한 달콤한 맛을 떠올리며 주문했다가 각종 채소를 넣고 널따랗게 구운, 부침개가 나와서 당황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무리 상상력을 발휘해 보아도 달달한 케이크와 생선 대구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어쨌거나 이곳은 대구 요리 천지였다.


포르투갈에서 대구 요리는 대중적인지, 어제 간 식당에서도 대구 스테이크를 팔고 있었다. 통으로 구운 짭짤한 대구구이 한 조각은 얼마나 크던지 하루가 지났는데 아직 입에서 짠맛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오늘은 색다른 음식을 먹으려고 했는데, 아예 대구 요리 전문점에 오고 말았다. 이는 포르투갈에 무지한 탓으로, 알고 보니 포르투갈어 Bacalhau(바깔랴우)는 생선 ‘대구’였다. 이런 기본적인 정보를 몰라서 나는 Bacalhau na Vila 즉, 가게 이름이 ‘대구 마을’인 곳에 와서 식사를 마칠 때까지 왜 이 음식점에는 대구 요리밖에 없는지 모르겠다며 투덜거렸다. 이 얼마나 우스운 상황인지. 가게 이름이 김치 고을인 김치 음식 전문점에 온 외국인이 여기는 김치찌개, 김치찜, 김치부침개, 두부김치, 심지어 삼겹살이나 피자도 볶은 김치를 곁들여 팔 만큼 왜 ‘김치’로 만든 음식밖에 없느냐고 묻는다면 식당 주인은 과연 무슨 표정을 지을까. 포르투갈에서 나는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질러버렸다.


이 레스토랑은 왜 대구 요리 천지인지 여전히 의문인 채로 일단은 대구 패스추리에 도전하고 무난한 샐러드와 세븐업을 주문했다. 의외로 대구의 짭짤한 맛과 고소한 패스추리의 조화가 괜찮아서 대구 패스추리도 먹을 만했다. 세븐업은 스프라이트와 맛이 비슷한 음료로 우리나라로 생각하면 사이다이다. 포르투갈에서 스프라이트를 주문할 때마다 종업원은 대신 세븐업이 있다고 안내해주었다. 아마도 포르투갈에는 스프라이트가 수입이 거의 되지 않는 모양이라고 짐작하고, 나도 이제 더는 스프라이트를 찾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바깔랴우 나 빌라는 가게 이름, 간판과 메뉴판, 실내 인테리어 디자인, 메뉴, 심지어 접시 디자인 하나까지 모든 것을 대구로 일괄하고 있었다. 가게 이름이 대구 마을인 것은 두말할 나위 없고, 가게 로고는 대구 몸통부터 꼬리까지 표현했다. 아마도 바다를 상징하는 푸른 바탕에 가게 로고가 간판, 메뉴판, 접시 등 이곳저곳에 그려졌다.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며 메뉴판을 꼼꼼하게 살펴보니 포르투갈 대구 요리의 역사, 식당의 운영 취지와 지향점 등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었다.


소개 글에 따르면, 포르투갈인은 대구를 15~16세기부터 북해에서 포획했다. 소금에 절여 말린 대구는 뱃사람들에게 유용한 식량이었다. 이 생선은 맛이 좋을 뿐만 아니라 실용적이라 한번 말려놓으면 부서질 염려가 없다. 과거 이곳 사람들은 배 안에 바캴랴우를 가득 싣고 지구의 반이 자신들의 몫이라고 믿으며 정복하러 나섰다. 돌처럼 딱딱해진 생선을 물에 담가 소금기를 빼면 다시 싱싱한 형태로 돌아오면서 육질은 쫄깃해지고 풍미가 더해진다. 이후 포르투갈인의 전체적인 대구 요리 소비가 늘면서 바깔랴우는 어느새 포르투갈을 국민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포르투갈에서 바칼랴우가 얼마나 보편적이냐면 포르투갈 회사원은 명절에 통통한 말린 대구의 중간 토막 한 상자를 선물로 받아온다. 우리나라의 설날, 추석에 맞먹는 포르투갈 명절인 부활절과 크리스마스 식탁에 반드시 대구 요리가 오른다. 포르투갈인은 바칼라우를 ‘피엘 아미고 Fiel Amigo’라고 부르는데, ‘충실한 친구’라는 뜻이다.


포르투갈인이 할 수 있는 대구 요리는 1001가지(원문: The Portuguese say there are 1001 ways to cook codfish)라는 말이 있다. 101을 1001로 잘못 본 줄 알고 몇 번이나 숫자를 확인했는데, 무려 1001가지가 맞았다. 바깔랴우 나 빌라에서는 현대적인 요리기법으로 전통적인 맛을 살려 대구 요리를 한다. 다소 적은 양을 다양한 방식으로 요리한 대구 음식을 손님이 맛보도록 하는 것이 가게의 운영 취지이다. 그야말로 대구 요리에 진심인 포르투갈 레스토랑이다. Share it at your table, share with your family, share with your friends, just share it 이라는 문장으로 소개는 끝맺는다. 갑자기 소중한 사람들이 그리워졌다. 사랑하는 이들과 식탁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정성껏 요리한 음식을 ‘Share it’ 하고 싶어졌다.



Bacalhau na Vila


운영: 월~토 12:00~18:00, 19:00~22:00

        일 12:00~17:00

가격대: € 7~16

위치: 신트라 궁전에서 도보 5분 이내

주소: Arco do Terreirinho 3, 2710-623 Sintra

전화: +351 913-166-101


전날 먹은 바칼라우 아사두Bacalhau assado. 마른 대구를 물에 불린 뒤 올리브유와 마늘을 넣고 오븐에 구운,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대구 요리.


대구 요리 (사진 출처: 업체 제공 사진). 바칼라우 아사두Bacalhau assado. 보통 굽거나 삶은 감자와 함께 먹는다.


대구 요리 (사진 출처: 업체 제공 사진). 대구가 들어간 샐러드인 듯하다.


대구 요리 (사진 출처: 업체 제공 사진). 아마도 대구케이크로 추정한다.


Bacalhau na Vila 영어 메뉴판. 대구 샐러드/구이/수프/패스추리 등 다양한 대구 요리를 맛볼 수 있다.


Bacalhau na Vila 영어 메뉴판 가게 소개. 로고가 생선(대구) 몸통부터 꼬리를 표현한 듯하다.


Bacalhau na Vila 는 신트라 궁전 부근 골목에 있다. 내가 묵던 숙소에서 약 1km 남짓 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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