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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Dec 29. 2020

포르투갈 신트라에서 닷새를 머문 이유

여행의 방식

신트라에 오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닷새를 머물기로 한 호텔 노바 신트라 Hotel Nova Sintra 때문이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는다는 노랫말을 그대로 옮긴 듯한 풍경에 매료돼 여행 전부터 이곳에 푹 빠져 있었다. 틈날 때마다 숙소 사진을 보고 또 보면서 신트라에 머물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이곳은 초록색 지붕은 아니지만 빨간 머리 앤이 마릴라, 매튜와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낸 에이번리 Avonlea의 그린 게이블스 Green Gables 같았다. 산이 둘러싼 작은 마을의 녹음이 우거진 야외 테라스에서 싱그러운 일광욕을 즐길 수 있었다. 리스본에서 여행자이자 관광객이었다면, 신트라에서 나는 한껏 여유로운 휴양객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보통은 리스본에 적을 두고 당일치기로 둘러보는 신트라에서 네 번의 밤을 보내기로 했다.


동화 속 집처럼 생긴 호텔 노바 신트라


신트라는 높지 않은 산이 마을 전체를 포근하게 감싸고 있다. 늘 산이 보이는 곳에 살았던 사람들은 산이 주는 아늑한 정취에 익숙하다. 공기처럼 당연해서 때로는 산의 존재를 잊고 살아가는데, 막상 산이 없는 환경에 놓이면 이상한 허전함을 느낀다. 이십 대 초반, 런던 생활 5개월에 접어들었을 때 나도 이제 향수병이 오는구나 싶었다. 어느 날, 차를 타고 가는데 차창 너머로 끝이 보이질 않는 지평선을 바라보며 막연한 적막감을 느꼈다. 문득, 이곳은 내가 살던 한국과 달리 산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갑자기 산이 너무 보고 싶어졌다. 내 향수병은 산이 주는 위로가 부재해 생겨났다.


평생 지평선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조선인들에게 이 벌판의 황막함은 더욱 강렬하게 느껴졌다. 그제야 사람들은 자신들이 산과 산 사이에서 태어나 산을 바라보고 자랐으며 산등성이로 지는 해를 보고 잠자리에 들었음을 깨달았다. 넘어갈 아리랑고개가 없는 끝없는 평원은 그야말로 낯선 풍경이어서 사람들은 딱히 바닥이 딱딱해서라기보다 지평선이 주는 막막함과 공허로 뒤척였다. _ 김영하, <검은 꽃> 104쪽 중에서


어렸을 때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에서 3~4분 정도 걸어가다 횡단보도를 건너면 아차산에 올라갈 수 있었다. 자유와 낭만으로 가득했던 이십 대 초반의 추억을 간직한 대학교 캠퍼스 뒤로는 안산이 자리 잡고 있다. 삼십 대에 근무한 회사의 사무실 창밖으로는 나지막한 정발산이 보였고, 현재 거주지에서는 저 멀리 장엄한 북한산이 보인다. 초중고등학교 교가에서 00산, 00강이 괜히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유한킴벌리의 숲 환경 캠페인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라는 문구가 익숙하지만, 모든 나라가 자국의 자연을 묘사할 때 ‘우리 강산’이라고 표현할 수는 없다.


숙소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도 다락방 창문 너머로 보이는 산이었다. 침실에서 산이 보이는 순간, 타지에서 은연중 쥐고 있던 긴장감을 완전히 놓아버렸다. 타국의 낯선 호텔이 아닌 한국의 친척이나 지인 집에 놀러 온 착각이 들었다. 산꼭대기에 어렴풋하게 성곽이 보였는데 무어성 Castelo dos Mouros이 맞는지 긴가민가했다.


숙소 다락방에서 바라본 신트라 풍경. 산 꼭대기에 무어 성이 보인다.




이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딱히 무엇을 먹고 싶다거나, 나가서 구경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여행을 떠난 뒤로 쭉 혼자였는데, 더더욱 혼자가 되고 싶었다. 푹신한 소파에 웅크려 앉아 책을 읽다가 소파 귀퉁이에 머리를 대고 누웠다. 행복했다. 가까운 누군가가 내 모습을 보았다면, ‘한국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을 왜 굳이 돈을 들여 외국까지 가서 하느냐’라며 타박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포르투갈 신트라의 마음에 쏙 드는 호텔 다락방에서 좋아하는 책을 읽다가 스르르 눈이 감기는, 이날의 낮잠은 결코 한국 주말의 일상적인 낮잠과 같지 않다.


가족과 밥벌이 중심으로 흘러가는 일상에서 내 뜻대로 한다고 믿는 일들에 현미경을 들이대 고배율로 확대하면, 눈치껏 다른 이의 바람대로 행동하면서 자신이 선택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다른 이의 시각을 빌린 생각을 제 생각이라고 착각하고서 말을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이다. 물론, 인간은 서로 작용과 반작용을 주고받으며 관계를 맺고, 그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성장한다. 맺고 있는 모든 관계의 총합으로 한 사람의 정체성을 규정한다는 말에도 동의한다. 하지만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이 모든 관계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싶다. 나에게는 혼자 하는 여행이 해방을 실천하는 방법이다. 그래서 여행에서 자는 낮잠은 집에서 주말에 자는 낮잠과 결코 같을 수 없다.




예전에는 여행지의 공항에 착륙한 뒤 여행지를 둘러보고, 다시 여행지의 공항에서 한국으로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까지의 시간을 여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젠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그 시점부터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인파 속에서 저 멀리 아주 작게 들려오는 자신의 이름에 신기하게도 귀가 쫑긋 세워지지 않는가. 마찬가지로 계획한 여행지 정보가 들려오면 저절로 귀가 기울여진다. 몸은 한국에 머물러 있지만, 정신은 이미 여행을 시작했다. 한편, 여행지에서 돌아온 뒤에도 여행은 계속 이어진다. 사진을 정리하고 감상을 기록으로 남겼을 때 비로소 그 여행은 일단락된다. 나는 지금 글을 쓰면서 접어두었던 기억을 다시 꺼내 포르투갈을 새로이 여행하고 있는 셈이다.


여행의 정의를 새로 내린 뒤로 여행에 한결 여유가 생겼고, 여행 순간순간을 더 즐기게 되었다. 반드시 가야 한다는 유명 관광지와 식당을 기필코 방문하겠다는 강박을 내려놓았다. 추천 장소와 맛집을 탐방하는 경험도 중요하지만,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인지, 좋아할 만한 일인지’가 더 소중해졌다. 여행에서만큼은 다른 이의 시각을 빌리지 말고, 온전히 나 스스로 있는 힘껏 세상을 바라보고자 한다. 세포 하나까지 오감을 열고 무엇이든 간에 피부에 와닿는 그대로 온전히 느끼고자 한다.


이것이 포르투갈 신트라에 닷새를 머문 이유이다. 누군가는 그 시간이면 크지 않은 포르투갈의 도시 2~3곳은 더 돌아볼 수 있으리라 조언할 것이다. 신트라가 물론 아름답지만 볼거리에 비해 5일은 너무 길며, 귀한 시간을 어쭙잖게 허비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관광객 대다수는 오전 일찍 신트라에 와서 한나절을 보낸 뒤 저녁에 기차를 타고 다시 리스본으로 돌아가겠지만, 나는 신트라가 좋았고 이곳에서 가능한 한 길게, 오래 머물고 싶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자꾸 보고 싶고, 같이 있고 싶고, 그러다 보면 같이 살고 싶어지듯이. 나는 그냥 이곳이 좋아서 닷새를 머물기로 했다.


타의에 따른 ‘~을(를) 해야 한다’라는 강요와 억압에 익숙해서 눈치 볼일 하나 없는 자유로운 여행에서 노곤함이 밀려와 낮잠을 자면서도 ‘과연 이렇게 시간을 낭비해도 되는 걸까?’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는다. ‘뭐, 어때. 여행인데. 심지어 지금은 완전히 혼자인데.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 시간을 흘려보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라고 나 자신을 다독인다. ‘~을 해야 하는’ 반복적인 일상 시간을 ‘~를 하고 싶은’ 비일상적인 여행의 시간으로 덧입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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