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파두와 사우다드
포르투갈과 우리나라는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아주 다르다. 일단, 각각 유라시아 대륙의 극과 극인 서쪽과 동쪽 끝에 있다 포르투갈은 유럽에 속한 역사적으로 가톨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이고, 우리나라는 동아시아에 있는 유교 문화권에 속한 국가이다. 그런데 낯선 포르투갈을 여행하는 동안 곳곳에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정서적으로 분명히 존재하는 어떤 동질감을 느꼈다. 포르투갈인은 무표정해서 퉁명스러워 보이지만 한번 말을 트면 몸에 밴 따뜻하고 친절한 기운이 묻어난다. 약간 수줍은 듯하면서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미소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평소 얌전하고 무뚝뚝해 보이는 포르투갈인도 한번 흥이 분출하면 그들이 뿜어내는 열정은 어마어마하다고. 어딘가 익숙한 묘사이지 않은가? 포르투갈인을 한국인으로 바꿔서 읽어도 별로 어색하지 않다.
민족과 국가보다는 인간 개개인의 특성과 개성을 존중하려는 시대이지만 조상 대대로 이어져 온 민족성과 정서는 자연스레 묻어나기 마련이다. 특히, 그 문화에 물들지 않은 다른 문화에서 온 외국인은 어떤 특이점을 단번에 알아차린다. 21세기에도 한국인은 여전히 ‘정(情)’이나 ‘한(恨)’처럼 말로 잘 설명되지 않는 고유한 정서를 인간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표현하곤 한다. 포르투갈인에게도 따뜻함과 친절함 너머에 ‘무언가’가 내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나중에 내가 느낀 아우라는 포르투갈인 중에서도 특히 리스본 사람의 정서인 ‘사우다드 Saudade’라고 알게 되었다.
숙명론적 인생관 ‘사우다드’
사우다드는 포르투갈 사람이라면 누구든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정서이다. 처음에는 우리나라의 ‘한’과 비슷한가? 싶었다. 그러나 사우다드가 생겨난 배경을 이해한 뒤, 두 정서는 결코 같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이 풀어낼 수 없는 억울한 심경을 꾹꾹 눌러 담은 ‘응어리진 감정’이라면, 사우다드는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역사를 반복하면서 생겨난 ‘체념’ 내지는 일종의 ‘관조’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르투갈은 2010년대 들어 유럽 재정위기 여파로 구제금융을 받고 수많은 사람은 일자리를 잃었으며, 복지 축소를 감내하며 힘겨운 시간을 버텨야 했다. 경제가 어느 정도 회복이 된 오늘날에 이르러 포르투갈인이 따뜻한 미소를 지어 보일 때도 어딘가 서글픈 느낌이 드는데, 그들의 부모님, 조부모님, 증조부모님, 그 이전부터 간직해 온 사우다드가 이어진 것 같다면 억지일까.
포르투갈은 영토 절반 이상이 바다에 둘러싸여 있다. 포르투갈인에게 변화무쌍한 바다는 삶의 풍요를 가져오기도 했지만, 운명을 옭아매거나 아픔을 주기도 했다. 바닷가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더없이 온화하다가 때로는 무자비하게 변하는 잔인한 바다의 양면적인 모습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바닷가 사람들은 바다가 두렵다고 망망대해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다. 뱃사람들은 바다에서 운명(殞命)할지언정 이것이 자신들의 일이자 숙명이라고도 잘 알고 있다. 뭍에 남아있는 아내와 어머니, 자식 등 가족들도 떠나는 남편과 아들, 손자와 남아있는 자신들의 운명(運命을 잘 알고 있다. 그렇게 뱃사람들은 아침에 눈을 뜨면 묵묵히 몇 달 또는 몇 년이 걸릴지 모를 바다로 다시 나아간다.
남아있는 사람들은 매일 떠난 사람의 안부를 염려하고 무사히 돌아올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떠난 사람도 육지에서 자신을 기다릴 소중한 사람이 그립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떠난 사람이나 남아있는 사람이나 생사의 갈림길을 막고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들의 운명은 오직 바다만이 알고 있고, 바다에 달려 있다. 숱하게 많은 사람이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어느덧 죽음은 일상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 세상을 떠난 이를 조용히 애도하며 산 사람의 무사 귀환을 빌었다. 그렇게 언제부터인가 운명에 순응하게 되었고, 포르투갈인의 고유한 정서인 사우다드로 굳어졌다. 사우다드는 굳이 정의한다면 잃어버렸거나 이루지 못한 무언가를 향한 갈망과 향수, 그리움, 사모(思慕)하는 감정이다. 바다와 함께 굴곡진 역사를 숙명처럼 여기고 살아온 포르투갈인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이 깃든 어두운 감정이다.
노래가 된 사우다드, ‘파두’
파두 Fado는 형언하기 힘든 사우다드가 노랫말과 선율 속에 진하게 녹아 있다. 포르투갈어로 ‘운명’ 또는 ‘숙명’이라는 의미인 파두는 예술로 표현한 사우다드라고 할 수 있다. 파두를 지배하는 기본 정서는 그리움이기에 파두곡들은 대체로 다소 어둡고 청승맞은 분위기를 띤다. 많은 곡에서 가슴 아픈 그리움이나 사랑의 실패 때문에 찾아온 고통과 슬픔을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숙명론적 사고방식이다. 가슴은 뾰족한 날로 콕콕 찌르듯이 아프더라도 처연히 슬픔이나 고통을 ‘그럴 수도 있지’라고 받아들이기에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길목에 서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넓지 않은 파두하우스에서 검은 옷에 검은 숄을 걸치고 마이크 없이 생목에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파두를 연주하는 파디스타 Fadista에게는 처량함보다는 어떤 의연함이 느껴진다. 아마도 ‘결국 그리될 일이었다’라는 불가피한 인생의 쓴맛을 아는 자에게서 풍기는 낙천적인 기운 같다. 목소리에는 구슬픈 결연함이 묻어나고 눈망울에서는 애타게 무언가를 그리워하고 갈망하고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파두도 사우다드처럼 단순하고 명쾌하게 뜻을 정의할 수 없고, 대단히 복잡하며 명확하지 않다.
파두의 기원에는 무어인의 지배를 받는 동안 아랍적인 숙명관에 영향을 받았다거나 중세 프랑스 음유시인들의 노래가 들어와 파두로 이어졌다는 설이 있다. 여러 설 중에서도 남미나 아프리카 등지로 긴 항해 끝에 돌아온 사람들이 전한 해외 노래에 포르투갈인의 정서가 담겨 지금의 파두로 변모했다는 이야기가 가장 와닿는다. 파두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사우다드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기원이야 어떻든 간에 파두는 역사적 격변의 중심지였던 항구도시 리스본의 홍등가와 뒷골목에서 가난한 뱃사람과 노동자가 인생의 회한을 담아 부른 노래는 확실하다. 파두는 ‘리스본의 노래’라고 불리니 말이다.
파두의 여왕, ‘아말리아 호드리게스’
파두를 이야기할 때 아말리아 호드리게스 Amalia Rodrigues는 파두의 역사나 내용보다도 먼저 떠올리는 이름이다. 파두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아말리아 호드리게스는 파두를 포르투갈인을 대변하는 예술이라고 전 세계적으로 알렸고 평생 파두를 위해 살았다. 그녀는 1999년 10월 6일 79세로 세상을 떠났는데 포르투갈 정부는 3일간 국가 애도 기간으로 공표했고 장례는 국장(國葬)으로 치러졌으며, 그녀는 현재 국립 판테온에 잠들어 있다. 리스본에는 아말리아 호드리게스 박물관과 정원이 존재하고, 구시가지 곳곳에서 그녀를 그림과 사진, 조형물로 만날 수 있다. 아말리아 호드리게스가 현재까지도 포르투갈 국민에게 얼마나 큰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아말리아 호드리게스는 가난한 서민 문화로 여겨지던 파두를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예술문화로 지위를 격상시켰다. 다섯 개 대륙의 수많은 무대에서 감동을 전하며 포르투갈 문화를 국제적으로 알렸다. 전통 명곡들을 새롭게 해석해 표현하면서 좀 더 모던하게 리스본 파두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었다. 아말리아 호드리게스는 이러한 음악적 성과와 활약 덕분에 20세기 대중예술의 세계적인 거장으로 평가받으며, 포르투갈 문화사의 국보급 인물로 회자하고 있다.
파두가 우리에겐 낯선 예술이지만 포르투갈인에게는 어렸을 때부터 듣고 자라온 여전히 그들의 평범한 삶 속에 녹아 있는 문화이다. 파두는 포르투갈인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와 정서가 짙게 담겨 있다. 물론 21
세기를 사는 포르투갈인 모두가 파두를 즐기며 애정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젊은 세대들 대부분은 지구촌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영미의 팝에 영향을 받은 대중음악에 열광한다. 하지만 젊은 세대가 파두에 전혀 관심이 없거나 역사적, 음악적 내용을 아예 모르지는 않는다. 1980년대와 1990년대를 지나면서 젊은 파두 팬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기도 했다.
세대와 시대를 관통해 지금도 전 국민을 아우를 수 있는 음악예술이라니…… 내가 포르투갈인이라도 파두에 높은 자부심을 가졌을 것 같다. 아말리아 호드리게스가 왜 그리 높은 평가와 대우를 받는지, 파두가 보존해야 할 전통문화가 아니라 지금도 살아 숨 쉬면서 발전과 변화를 거듭하는 현재 진행형인 예술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현역 최고의 파디스타로 찬사를 받는 마리자 Mariza를 비롯한 1970년대~1980년대에 태어난 파두 가수들이 젊은 감각으로 발전시킨 열정적인 파두 공연 영상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전율이 느껴진다. 다음에 리스본에 갈 때는 꼭 알파마나 바이후 알투의 파두하우스에서 늦은 시간까지 멋진 파두의 밤을 보내며, 조금이라도 더 포르투갈인의 정서를 가깝게 경험해보고 싶다.
아침이 되면
내가 추하다고 생각하실까 두려웠습니다.
나는 모래 위에서 떨며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눈은 아니라고 말했죠.
그리고 내 마음속엔
태양이 비춰 왔습니다.
바위 위의 십자가 하나를 보았습니다.
당신이 탄 검은 돛배는
불빛 속에서 춤을 추었고,
이미 풀려진 돛 사이에서
흔들리는 당신의 팔이 보였습니다.
해변의 늙은 여인들은
당신이 돌아오지 못할 거라고 말합니다.
미친 여자들
미친 여자들
나의 사랑, 난 알아요.
당신이 떠나지 않았다는 것을.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은
당신이 언제나
나와 함께 있다고 말합니다.
유리창에 모래를 흩뿌리는 바람 속에
노래하는 파도 속에
꺼져가는 불 속에
침대의 온기 속에
텅 빈 벤치에
당신은 내 가슴속에서
언제나 나와 함께 있습니다.
<검은 돛배>는 아말리아 호드리게스 최고의 명곡이자 가장 널리 알려진 파두 명곡이다. 바다에 나간 남편을 기다리던 여인의 안타까운 마음을 담았다.
참고자료
황윤기, <포르투갈의 노래 파두>, 북커스, 2019.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