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적인 맛, 예쁜 데코, 저렴한 디저트 때문이라도 매력적인 포르투갈
대구 패스추리와 샐러드로 식사를 마친 뒤 포만감이 들자 몸이 나른했다. 디저트를 먹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일단 디저트 메뉴를 살펴보기로 했다. 밀크 크림, 우유와 크림을 섞어 만든 셰이크인가? 난 유당불내증(乳糖不耐症)이라 우유를 먹지 않으니 통과. 잊을 수 없는 초콜릿 케이크, 잊을 수 없는 맛이라고? 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Our unforgettable chocolate cake라고 부르는 거지? 혹하고 구미가 당겼다. 민트와 보드카를 넣은 라임 아이스크림, 무난한 디저트로 손색이 없는 상큼한 맛이겠구먼. 전통 아몬드 파이, 망고 무스가 더 적혀 있었고, 결국 나는 진짜로 평생 ‘잊을 수 없는’ 초콜릿 케이크를 주문했다.
브라운 케이크 위에 하얀 눈송이처럼 가루가 흩뿌려졌고, 녹색 잎 위에 먹음직스러운 새빨간 빨기가 놓여있다. 단단한 케이크 겉면을 포크로 푹 찍으니 안에서 진득한 초콜릿 시럽이 흘러나온다. 빵에 시럽을 묻혀 같이 나온 딸기를 얹어서 입으로 가져간다. 새콤달콤한 천상의 맛이 입안 가득 퍼지자 포만감에 디저트 먹기를 주저한 조금 전 기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아워 언포게터블 초콜릿 케이크는 지금까지 먹어 본 모든 케이크 중 단연 으뜸이었다. 생각지도 않은 큰 충격을 받았을 때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쿵 맞은 것 같다고 표현하는데, 맛있는 음식을 먹어서 미각 세포가 섬세해질 대로 섬세해질 때도 그와 같은 충격을 받을 수 있다고 알게 되었다. 난생처음 경험한 짜릿한 맛에 온몸의 감각이 살아나는 기분이었다. 가격은 4.70유로, 한화 약 6,500원으로 한국 물가와 비교해도 흡족했다. ‘잊을 수 없는 초콜릿 케이크’는 정말 ‘잊을 수 없는’ 초콜릿 케이크였다.
포르토의 한 카페에서는 잊을 수 없는 오렌지주스를 맛보았다. 스페셜 오렌지주스가 정식 메뉴명인 이 음료는 대형 와인잔에 따라져 나왔다. 적당히 그늘진 야외 테라스에서 이 범상치 않은 와인잔을 입에 가져오니, 아직 오렌지주스가 입술을 적시지도 않았는데, 이상하게 단맛이 느껴졌다. 이건 무슨 마법이지? 너무 목이 말라 우선은 잔을 더 기울여 목을 축이니 새콤달콤한 맛의 조화가 예술이었다. 마법의 비밀을 찾고자 와인잔을 요모조모 유심히 살펴보니, 잔 주둥이를 따라 띠 모양으로 얇게 바른 하얀 설탕 결정이 눈에 띄었다. 새콤한 오렌지주스보다 아주 짧게 먼저 단 설탕이 먼저 혀에 닿는 사소한 차이 덕분에 적당히 시고 단 주스에 강한 단맛의 풍미가 더해져 특별한 오렌지주스가 탄생했다. 포르투갈에서 오렌지주스 한 잔에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한국 카페에서 간혹 생과일 오렌지주스를 주문하지만, 아직 그 맛을 능가하는 주스를 만나진 못했다.
유럽의 디저트라고 하면 가장 먼저 프랑스가 떠오른다. 왠지 유명한 제과제빵사는 모두 파리의 르 꼬르동 블루를 졸업했을 것 같다. 이탈리아에서는 젤라또를 종류별로 맛보고, 영국에서는 차 한 잔을 마셔야 할 것 같다. 포르투갈은 의외로 훌륭한 디저트를 즐길 수 있는 환상적인 디저트의 나라이다. 포르투갈의 디저트에 눈을 뜬 뒤, 잔뜩 기대에 부풀어 디저트를 맛보기 위해 식당에서 메인 요리를 먹는 점점 주객이 전도된 기분이 들었다. 우리나라 ‘빵’의 어원도 포르투갈어 pão(빵)이며, 포르투갈에서 일본을 거쳐 pão를 우리나라식으로 빵이라고 불러서 굳어졌다.
실연의 상처에 빠졌거나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들이 포르투갈에 가서 이곳의 디저트를 몇 번 접한다면 분명히 금세 기운을 차릴 것이다. 누군가에게 어려운 부탁을 해야 할 때 ‘우리 포르투갈 리스본 ○○ 카페에서 만나요’라고 약속 장소를 정한 뒤, 순간이동을 해서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천하무적 포르투갈 디저트와 함께라면 실타래처럼 엉킨 인간관계도 술술 잘 풀어낼 자신이 있다.
과거에 포르투갈은 설탕과 달걀노른자가 풍부해서 디저트가 발달했다. 달걀노른자는 앞서 설명한 대로 수도원에서 달걀흰자를 사용한 뒤 남아서 많았고, 설탕은 당시 포르투갈 식민지에서 다량을 들어와 늘 풍족했다. 한국에서 조각 케이크를 사 먹을 때마다 ‘이 가격이면 지구 반대편에서 환상적인 케이크를 맛볼 수 있는데’라며 포르투갈의 아워 언포케터블 초콜릿 케이크를 떠올린다. 한입 베어 물면 엔도르핀이 솟아나 행복감에 젖어 드는 디저트 때문이라도 포르투갈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매력적인 나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