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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시연 Oct 27. 2024

진상 손님과 첫 단골손님

점심시간이 지나고 오후 시간이 되자, 미장원은 더 바빠졌다. 


밀려오는 손님들로 인해서 소화와 민아도 바쁘게 움직였다. 소화는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부지런히 쓸고 있었고, 민아는 난롯불의 연탄을 갈고 있었다. 소화와 민아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여자가 바닥을 다 쓸자마자 소화를 불렀다. 파마하고 있는 일행을 기다리고 있던 여자는 소화와 민아를 수시로 불러서 이것저것 잔심부름을 시켰다.


“아가씨! 심부름 좀 해 줄 수 있지?”

“네. 말씀하세요.”

“미안한데 담배를 사다 줬으면 좋겠어. 난 밥을 안 먹어도 담배는 피워야 하는데 담배가 떨어졌네.”


예상치 못한 말을 들은 소화는 순간 당황했다.


“그건...”

“왜 아까는 심부름해 준다고 했잖아! 그리고 시다면 손님들의 심부름도 당연히 해야 하는 것 아니야. 그러니 담배를 사다 줬으면 좋겠어. 거스름돈은 아가씨 팁으로 줄 테니 가져. 참고로 난 ‘솔담배’만 피워.”


다리를 꼬고 앉아서 담배를 피우는 시늉을 하던 여자는 소화에게 돈을 내밀면서 당당하게 요구했다. 당황한 소화가 돈을 받지 않고 있자 그 여자는 언성을 더 높여서 말했다.


“아가씨! 못 알아들었어? 이 돈으로 담배 사다 달라고 부탁하잖아?”

“지금까지 담배 심부름은 해본 적이 없어요.”

“시다인 주제에 손님의 부탁도 가려서 하나 봐.”

“죄송한데요. 그건 부탁이 아니라 무례한 요구입니다. 시다라고 해서 담배 심부름까지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소화가 당돌하게 거절하고 있을 때 일행의 머리를 하고 있던 원장님이 조용히 여자에게 다가왔다.


“손님! 여긴 미장원이에요. 담배 피우는 곳이 아니에요. 그러니 담배 심부름도 할 수가 없어요.”

“다른 미장원에서는 담배를 피워도 뭐라고 안 해요. 담배 심부름도 해 주고요.”

“우리 미장원에서는 금연이에요. 담배 냄새가 나면 손님들이 싫어하세요.”

“원장님! 듣던 대로 깐깐하시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여기 안 오는 건데 괜히 왔네.”

“손님은 친구분을 따라서 온 거지 머리를 하러 온 것은 아니잖아요.”

“머리를 안 한다고 저를 이렇게 막 대하는 거예요.”

“친구분이 머릴 하는 동안 커피 타달라고 해서 마시고 매니큐어 바르고 잡지책 읽으면서 쉬었는데 이것이 막 대한 건가요?.”

“그 정도는 다른 미장원에서도 다 해 주는데 생색을 잘도 내시네요.”

“다른 미장원은 어떤지 모르겠네요. 구태여 알아야 할 필요도 없고요. 그러나 확실한 건 미장원에서는 일하는 사람들도 존중해 주어야 존중을 받을 수 있어요. 그러니 부탁드립니다.”


단호하게 말한 원장님은 다시 손님의 머리를 만지기 시작했다. 여자는 머쓱했는지 일행에게 먼저 가겠다고 말하더니 미장원을 나갔다. 화가 났다는 것을 미장원의 문을 닫는 소리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나서 소화와 민아도 손님들의 머리를 감기게 되었다. 손님의 목에 수건을 둘러 주면 손님이 앞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 미리 준비한 난로 위에 있는 뜨거운 물과 찬물을 섞어서 적절한 온도로 맞추면서 머리를 감겼다. 옷이 젖지 않도록 주의를 하는데 때로는 불상사가 생길 때가 있었다. 오늘이 그랬다. 


“할머니! 물 온도는 괜찮아요?”

“응. 좋네.”

“지금부터 머리를 감겨 드리겠습니다. 비눗물이 들어갈 수 있으니 눈을 꼭 감으세요.”


소화는 천천히 물을 머리에 끼얹고 머리를 감기기 시작했다. 꼬불꼬불한 파마머리라서 신경을 쓰면서 머리를 감기고 있을 때 시간이 갈수록 할머니는 가만히 있지 않고 자꾸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휴! 머리 감기는 게 뭐가 어렵다고 이리 굼뜰까!”

“거의 다 끝났어요. 헹구기만 하면 되니깐 조금만 참으세요.”

“아이고! 허리 아파 죽겠다. 너무 힘들다.”


할머니는 소리를 지르더니 냅다 고개를 쳐들었다. 그 바람에 머리를 헹구려고 하는 바가지 물이 그대로 할머니에게 쏟아졌다.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나한테 물을 쏟아붓다니 이런 경우가 어디 있어!”


할머니는 노발대발 소리를 질렀다. 갑작스러운 일에 놀란 소화는 얼른 옆에 있는 수건으로 할머니 옷에 갖다 대었다.


“이것 안 치워! 어디다 수건을 가져다 대는 거야. 너 말고 미용실 원장 오라고 해. 손님한테 이래도 되는지 물어봐야겠어.”


할머니의 역정 내는 소리에 원장님이 급히 왔다.


“괜찮으세요?”

“원장 눈에는 내가 지금 괜찮아 보이는 감?”

“정말 죄송해요. 물벼락을 맞으셨으니 얼른 난롯가로 모실게요. 잘못하면 감기 드시겠어요.”


원장님은 할머니를 부축해서 난롯가에 있는 자리로 모시고 갔다.


“소화씨! 우선 할머니한테 죄송하다고 말씀드리세요.”


소화는 할머니에게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곧이어 원장님은 왜 이런 사고가 생겼는지 물어보았다. 소화는 할머니의 꼬불꼬불한 머리카락에 신경을 써서 머리를 감기다 보니 다른 사람들보다 시간이 더 걸리게 된 내막을 말씀드렸다. 원장님은 고개를 끄떡이더니 따뜻하게 쌍화차를 타 오라고 했다. 그 사이 원장님은 수건으로 할머니의 젖은 옷을 말려드리고 소화가 꼼꼼하게 감으려고 노력했던 이유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소화는 할머니께 쌍화차를 드리며 다시 한번 더 미숙함에 대해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할머니, 정말 죄송해요. 제가 아직 미숙해서 할머니께 불편함을 드렸습니다.”     


소화는 할머니의 눈을 바라보며 진심을 담아 말했다. 그녀의 열정과 진정성을 느낀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소화가 타 온 쌍화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렇게 할머니는 소화의 진심을 깨닫고, 이후부터는 소화에게만 머리를 맡기셨다. 소화에게 첫 단골손님이 생긴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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