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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시연 Oct 27. 2024

원장님의 미용 철학

소화가 일하는 미장원 원장님은 48세 미혼이다. 


젊었을 때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 결혼하려고 했는데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지금까지 미혼이라는 소문이 있다. 원장님 가족은 모두 호주로 이민 가서 그곳에서 살고 있는데 원장님만 혼자 남아서 미장원을 운영하고 있다.


원장님은 자그마한 체구이지만 미용에 대한 열정은 남달랐다. 원장님은 독자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미장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교육을 이수하도록 하였다. 교육은 강의와 실기를 병행하여 이루어졌는데 시험에 통과해야만 상급 과정에 참여할 자격이 주어졌다. 자격증을 따더라도 이 시험에 통과해야 최종적으로 헤어디자이너로 활동할 수 있었다.      


봄비가 촉촉이 내리는 수요일 아침에 미장원 식구들이 다 함께 모여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원장님이 갑자기 소화를 보면서 웃었다.


“왜 소화를 뽑았는지 알아?”

“잘 모르겠어요. 여럿이 면접을 봤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제가 왜 뽑혔는지 저도 궁금해요.”

“그때 내가 어떤 질문을 했는지 기억하고 있어?”

“아니요. 기억이 안 나요.”

“난 면접 볼 때 꼭 물어보는 질문이 있어. 왜 미용 기술을 배우려고 하는지 그 이유를 물어보거든. 그때 소화가 어떻게 대답했는지 기억은 하고 있어?”

“아, 물론 기억하고 있어요. 지금도 제가 미용을 배우는 이유이거든요.”


“바로 그거야. 그래서 바로 채용했어. ‘문을 열고 들어올 때보다 나갈 때 행복한 마음으로 나가는 손님들을 보면 행복할 것 같다’라는 말에 바로 결정했어. ‘행복을 주는 미용사’라는 내 신조와 딱 맞았거든.”

“정말 감사합니다. 그때 원장님이 뽑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해요?”


“아니야. 소화는 어느 미장원에 갔더라도 잘할 수 있었을 거야. 그러니 그 마음 변치 말고 지금처럼 하면 되는 거야. 미용사의 길을 가다 보면 힘들고 지쳐서 그만두고 싶을 때가 분명히 있을 거야. 그때는 왜 이 길을 선택했는지 다시 생각해 보면 아무리 힘들어도 이 일을 놓고 싶지 않을 거야. 이 말은 소화뿐만 아니라 여기에 있는 여러분 모두에게 해당되는 거예요. 각자 자신이 원하는 미용사가 꼭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이제부터 스크랩북을 볼 테니깐 한 사람씩 보여주세요.”


스크랩북 과제는 디자이너 선생님들을 제외한 고참 시다인 진아, 미숙, 숙희 언니들과 신참 시다인 소화와 민아가 해당되었다. 원장님은 차례대로 스크랩북에 그려진 머리 스타일을 보면서 하나씩 지적하고 설명해 주었다. 만약에 이런 스타일의 머리를 했더라면 더 어울렸을 것이라는 조언과 아울러 잘 표현된 것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볼 때마다 소화의 그림 솜씨에 감탄하게 되네. 소화는 그림을 전문적으로 배운 거야?”

“아니요. 처음엔 심심해서 잡지에 나와 있는 연예인들 얼굴을 오려서 스케치북에 붙이고 의상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내 마음대로 연예인들 옷을 그리다 보니 의상디자이너가 된 것 같아서 재미있었어요. 그러다가 미용사가 되고 싶다는 꿈이 생긴 뒤로는 다양한 머리 스타일도 그리기 시작했어요. 내가 하고 싶은 일과 관련된 그림을 그리다 보니 재미있어서 계속했는데 지금 저한테 많은 도움을 주고 있어요.”

“자신도 모르게 꿈에 맞는 활동을 하고 있었네.”


원장님은 마지막으로 소화의 스크랩북을 꼼꼼하게 보면서 여러 가지 조언한 다음 스크랩북을 덮었다. 


“이제부터는 자기 머리카락을 만져보세요. 그리고 옆에 있는 사람들의 머리카락도 돌아가면서 만져보세요.”


소화와 민아 그리고 고참인 3명의 언니들은 서로의 머리카락을 만져보았다.


“머리카락을 만져보면 모발의 밀도, 볼륨, 방향 등 모두가 다른 것을 알 수 있을 거예요. 같은 커트나 파마해도 이러한 차이에 따라서 머리의 완성도가 달라질 수 있겠죠. 여기에 손님의 얼굴형이나 분위기까지 생각해서 머리해야 실패하지 않는 겁니다. 어제 미숙이가 파마했던 김미진 손님의 머리는 어떻게 되었죠?”

“머리카락이 다 녹았었어요. 마치 고무가 늘어난 것 같았어요.”

“왜 그런 결과가 나왔을까요? 다른 손님들한테는 문제없던 파마가 그 손님한테는 문제가 된 이유가 뭘까요?”

“파마하기에는 머리카락이 너무 상해 있었어요. 그 손님은 수시로 염색도 했었고 파마도 여러 번 해서 모발이 약해 있었어요.”


“그 손님에게 현재 모발 상태와 파마했을 경우 어떤 결과가 나올 수 있는지 설명은 했었나요?”

“아니요. 그냥 모발 상태가 안 좋다고만 말했어요.”

“그럴 경우는 파마했을 때 최악의 경우도 말해줘야 해요. 다행히 그 손님이 자기 모발 상태를 인지하고 있어서 더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우리 미용사는 손님들의 머리도 잘해야 하지만 손님들의 마음을 읽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제는 미숙이가 빠르게 잘 대처해서 그나마 다행이었어요. 우리 미장원에 온 손님들이 행복하게 나가는 모습을 보면 어때요? 저절로 즐거운 생각이 들죠! 중요한 것은 손님들뿐만 아니라 일하는 우리들도 행복하게 일하면 좋겠어요. 그래야 행복한 미장원이 될 수 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사랑합니다’를 외치고 오늘 하루를 시작합시다.”


“사랑합니다.”


원장님의 구령에 맞추어서 모두 ‘사랑합니다’를 힘차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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