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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시연 Oct 27. 2024

소화가 사과를 안 먹는 이유

소화는 집을 떠나온 뒤로 고향 집을 찾아간 적이 없다. 그래서 소화에게 과수원은 16년 전 모습 그대로 머물러 있다. 봄이 되면 사과꽃이 만개하고 늦가을엔 수확한 사과가 저장고로 옮겨질 것이다. 그러면 사과는 엄마의 관리하에 전국으로 팔려나갈 것이다. 어쩌면 테이블에 놓여있는 저 사과도 예산 집의 저장고에서 옮겨왔는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소화는 소파에 앉아서 테이블에 놓여있는 사과를 무심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크고 빨갛게 잘 익어서 탐스럽게 보이는 사과지만 소화에게는 그저 ‘그림의 떡’에 불과했다. 소화는 집을 떠나온 후로 지금까지 사과를 먹어본 적이 없다. 얼마 전에도 수호씨가 사과를 건넸지만 결국 그 사과를 먹을 수가 없었다. 마지막 손님이 가고 나서야 민아는 소파에 앉으면서 그중 사과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맞은편에 앉아있는 소화에게 건넸다. 소화는 민아가 건네주는 그 사과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이 사과에 독이라도 들었을까 봐 안 먹는 거야?”

“호호호. 사과를 안 먹겠다고 하면 왜 그렇게들 말하는지 모르겠네.”

“또 누가 나처럼 말했는데?”

“있어.”

“네 지인이라면 내가 모를 리가 없는데. 누구야?” 

“모르는 사람도 있지! 어떻게 내 지인을 다 아냐?”

“그러고 보니 요즘 너 이뻐졌다. 설마 좋아하는 사람 생긴 것 아니야?”

“그런 사람이 생겼으면 너한테 먼저 말했겠지.”

“그렇지. 암튼 뭔가 분위기가 달라지긴 했어. 그러고 보니 네가 사과 먹는 것을 본 적이 없어. 혹시 사과 알레르기라도 있는 거야?”

“그런 것은 아니야. 그냥 먹기 싫어.”

“아담과 이브의 후손인 만큼 사과를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본 적이 없어.”


민아는 웃으면서 손에 든 사과를 한 입 베어서 먹기 시작했다. 민아의 입이 부지런히 움직일 때마다 아삭한 소리와 함께 사과의 하얀 속살이 드러났다. 


“혼자 먹으니깐 미안하네. 이것만 먹고 얼른 나가자. 배고프지?”

“안 배고파. 점심을 늦은 시간에 먹었어.”

“아무튼 대단해. 압구정에 대형 미용실을 개업하다니 정말 성공했어.”

“이제부터가 중요하지. 원장님이 잘 닦아 놓은 미용실인데 잘해야지.”

“천하의 함소화인데 어련히 잘하겠어. 더구나 네 이름을 걸고 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 있다는 뜻 아니야?”

“당연히 그렇지.”


소화는 호탕하게 웃으며 빗자루로 바닥에 있는 머리카락을 쓸기 시작했다. 잘린 머리카락의 길이와 색깔 등이 제각각인 것을 보니 다양한 손님들이 다녀간 것을 알 수 있었다. 바닥을 쓸고 있는 소화의 모습을 빤히 보고 있던 민아는 다 먹은 사과의 잔재를 휴지통에 버리면서 일어났다. 


“어차피 내일 다시 청소하니깐 그만해도 돼. 그나저나 뭐 먹지?”

“준희씨와 예솔이의 저녁은?”

“너 만난다고 하니깐 저녁 먹고 천천히 들어오라고 하더라. 자기는 예솔이와 먹는다고.”

“넌 준희씨와 결혼 잘했어. 이쁜 예솔이까지 있고.”

“내가 예솔이 아빠를 구제해 준 거지. 그렇지 않으면 지금까지 노총각일 거야.”

“아마 준희씨는 너를 구제해 주었다고 생각할걸. 너의 성질머리를 누가 감당하겠니?”

“내 성격이 어때서? 흐지부지하지 않고 맺고 끊는 것이 확실해서 좋잖아.”

“그런 네가 감당이 안 되어서 웬만한 남자들은 다 도망갔잖아. 유일하게 버틴 게 준희씨이고.”

“네가 몰라서 그렇지 예솔 아빠도 한 똥고집 해.”

“그러니깐 너를 감당하면서 살고 있는 거야.”

“그런가. 다행히 예전처럼 싸우지는 않아. 신혼 초처럼 싸우면 살 수가 없다는 것을 둘 다 알게 되었거든. 내가 이렇게 전투적으로 사는 동안 너는 연애도 한 번 안 하고 재미없게 일만 하면서 살고 있냐. 짚신도 짝이 있다고 하던데 네 짝은 어디에서 뭘 하고 있길래 나타나지도 않는다니.” 


“때가 되면 나타나겠지. 너는 예솔이 아빠와 왜 결혼했어?”

“빨리도 물어본다. 결혼한다고 할 때도 물어보지 않던 것을 왜 갑자기 물어보는 거야?”

“그냥 궁금해졌어.”

“처음엔 별로 관심도 없었어. 예솔 아빠가 잘생긴 것도 아니잖아. 그런데 만나볼수록 괜찮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진지하게 사귀다 보니 서로에게 스며들었던 것 같아. 살아온 환경도 그렇고 비슷한 점이 많았어. 그래서 자연스럽게 결혼하게 되었어.”

“차이가 나는 결혼을 하면 힘들겠지?”

“알아들을 수 있게 말을 해 봐. 어떤 차이를 말하는 거야?”

“가정 형편이랑 살아온 모든 것들에 대한 차이 말이야.”

“솔직히 말해 봐. 너 좋아하는 사람 생겼지?”

“음. 만나는 사람이 있긴 한데 아직 몇 번밖에 안 만났어.”

“어쩐지 많이 예뻐졌다는 생각이 들더니만 연애하고 있었네. 도대체 어떤 사람이야? 일밖에 모르는 네가 어떻게 만나게 되었어?”

“미안한데 지금은 말하기가 쫌 그래. 아직은 잘 모르겠어.”


“알았어. 지금까지 기다렸는데 그걸 못 기다리겠어. 어쨌든 좋은 소식을 들으니깐 너무 기쁘다. 그러니깐 우리 맛있는 것 먹자.”

“넌 뭐가 먹고 싶은데?”

“난 다 잘 먹잖아. 그러니 네가 먹고 싶은 것을 말해 봐.”

“감자탕 먹을까? 미용실 개업일로 신경을 썼더니 스트레스가 쌓였나 봐.”

“좋아! 스트레스엔 얼큰한 음식이 최고지. 내가 잘하는 감자탕집을 알고 있어.”     


소화와 민아는 미용실 셔터를 내리고 나란히 감자탕집을 향해서 걸어갔다. 미용실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감자탕집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서빙하던 아줌마가 한적한 방으로 안내해 주어서 그나마 조용하게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축하해! 드디어 다음 주 월요일이네. 개업 준비는 잘되고 있는 거지?”

“응. 마무리도 다 했어.”

“무엇보다 스텝과 디자이너들이 많아서 사람 관리를 잘해야 할 거야.”

“원장님이 운영하던 체제를 유지하면서 하기에 크게 달라질 것은 없어. 총팀장은 미용실에서 함께 근무했던 정준희 언니로 하고 디자이너 2명과 인턴 3명, 보조 2명을 새로 채용했어. 디자이너의 실력에 따라서 미용실 매출이 좌우되므로 좋은 조건으로 공고하니깐 많이 지원했더라. 그래서 테스트해서 뽑았어. 보조 2명은 들어와서 배우면 되니깐 성실하게 생활할 수 있는 사람들로 뽑았고.”

“요전에 가서 보니 인테리어도 이쁘게 잘했더라. 거울 앞에 앉았더니 마치 내가 르네상스 시대의 귀족이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어.”

“정확하게 맞혔네. 우리 미용실 콘셉트가 바로 ‘귀족’이거든. 미용실 문을 열고 들어와서 나갈 때까지 우아하게 대접받는 미용실로 운영하려고 해.”

“멋지다. 그런 미용실이라면 또 가고 싶어질 거야. 그나저나 개업할 때 고사를 지내거나 팥시루떡을 준비해서 돌리는데 그런 것은 안 해?”

“응. 안 해. 대신 손님들에겐 조그마한 사은품을 줄 예정이야.”


“예산에 계신 부모님에게도 미용실 개업한다고 알렸겠지?”

“아니. 아직 연락 안 했어.”

“당연히 알린 줄 알았는데 왜 안 했어? 압구정에 이렇게 큰 미용실을 차린 것을 부모님이 아시면 얼마나 기뻐하시겠냐? 작은 미용실일지라도 개업했을 때 우리 엄마와 아빠가 엄청나게 좋아했거든.”

“오픈하고 나면 한동안 정신없이 바쁘잖아. 그래서 나중에 연락하려고.”

“미용실이 어느 정도 자리 잡은 다음에 연락드리려고 하는구나!”

“응. 그런 이유도 있고. 암튼 그래.”


소화는 보글보글 끓고 있는 감자탕을 한 국자로 떠서 민아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자신도 떠서 감자탕을 먹기 시작했다. 매콤하면서 뜨거운 감자탕을 먹는 소화와 민아의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야무지게 밥도 볶아서 먹고 둘은 감자탕집을 나섰다.     


감자탕을 먹고 난 소화와 민아는 커피를 마시러 인근 카페로 갔다.


“커피는 내가 살게. 뭐 마실래?”

“아아.”

“여전하구나!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과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커피를 주문하고 나서 소화와 민아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곧이어 벨이 울리자 민아가 주문한 커피를 가지고 왔다. 민아는 커피와 얼음을 빨대로 ‘휘이익’ 저으면서도 연신 소화에게 눈을 떼지 않았다. 커피를 마시던 소화가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민아를 보며 웃었다.


“할 이야기 있으면 해 봐! 뭔데 너답지 않게 아까부터 뜸을 들이고 있냐?”

“두 개가 궁금한데 하나는 물어봐도 지금은 말 안 해 줄 거니깐 나머지 하나만 물어볼게. 사과는 안 먹는 거야? 아니면 못 먹는 거야?”


민아의 질문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소화는 웃으며 말했다.


“아까 미용실에서부터 궁금했었지?”

“응. 우리가 알고 지낸 것이 16년이나 되잖아. 너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 네가 사과를 안 먹는다는 사실을 조금 전에 알았거든. 이런 사소한 것도 몰랐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어.”

“나도 너에 대하여 모르는 게 많아. 더구나 사소한 것까지는 잘 몰라. 그러니 너도 나에 대하여 다 알 수는 없는 거야.”

“36살의 능력 있는 미용실 원장으로 미혼이고 이름은 함소화잖아.”

“보이는 것은 그런데 그 속에는 어떤 것으로 채워져 있는지 모르잖아.”

“그래서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나 봐. 그건 그렇고 사과에 대한 너의 대답은 뭐야?”


“동화 속 백설공주에서 보면 질투 때문에 왕비인 계모가 백설공주에게 사과를 주잖아. 비록 그 사과에 독이 들어있을지언정 틀림없이 먹음직스러운 사과였을 거야. 그래서 백설공주가 그 사과를 받아서 먹었겠지.”

“아마도 그랬겠지. 그런데 왜 갑자기 백설공주 이야기가 나오는 거야. 설마 엄마가 계모이셔? 예전에 엄마하고 안 친하다고 했잖아. 아니면 독이 들어있는 사과라도 먹어본 적이라도 있는 거야?”


“그런 것은 아니야. 어릴 적 엄마는 오빠한테는 크고 잘생긴 사과만 주고 나한테는 멍이 들거나 새가 쪼아 먹어서 흠이 난 못생긴 사과만 주었어. 나도 이쁜 사과 먹고 싶다고 해도 엄마는 변하지 않았어. 사과를 팔아야 생활할 수 있다고 말이야. 그래서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난 직접 사과를 따 먹기 시작했어. 사과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이거든.”

“사과를 직접 따 먹었다고?”

“응! 우리 집이 과수원을 하거든.”

“과수원을 한다고?”

“그래.”

“과수원 한다고 말을 왜 안 했어?”

“과수원 하는 것이 뭐가 대수라고 말해. 너도 우리 부모님이 어떤 일을 하는지 물어보지도 않았잖아.”

“난 당연히 농사짓는 줄 알았지. 그런데 과수원을 한다고 하니 정말 놀랄 일이다.”

“엄밀히 따지면 과수원도 농사일이라고 할 수 있어. 벼 대신 사과나무를 키우는 거잖아.”

“집이 과수원을 해서 직접 사과를 따 먹을 정도로 사과를 좋아했다면서 지금은 왜 사과를 안 먹는 거야?” 

“그러게. 나도 그게 이상해. 집을 떠나온 뒤로 아무리 탐스러운 사과를 봐도 먹지 못하겠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고 입 안에서 겉돌아서 삼킬 수가 없어.”

“사과를 그렇게 좋아했는데 먹지를 못했으니 그간 정말 속상했겠다.”

“처음엔 나도 당황했었는데 이젠 익숙해졌어. 그리고 네가 놀랄만한 것이 또 있는데?”

“또 있다고? 뭔데?”


“오빠가 한 명 있다고 했는데 사실은 이란성쌍둥이야. 나보다 8분 먼저 태어났어.”

“네가 쌍둥이라고?”

“응. 치열한 확률로 태어났으니 나도 대단하지.”

“대박이다. 과수원 한다는 것보다 네가 쌍둥이라는 사실이 더 놀랍다. 쌍둥이들은 사이가 각별하다고 하던데 오빠하고는 친했냐?”

“그럴 수가 없었지. 쌍둥이 오빠가 반짝반짝 빛나는 존재였다면 나는 오빠의 그림자에 불과했어. 그림자가 아무리 뛰어나도 존재인 대상을 뛰어넘을 수 없잖아. 그림자는 빛이 없는 그림자일 뿐이니깐 말이야. 모든 면에서 오빠보다 잘하면 안 되었는데 그중에서 특히 시험성적이 좋으면 칭찬보다는 엄청나게 혼났어. 오빠 기를 꺾어서 좋겠다고 말이야. 공부 잘해서 혼났다고 말하면 누가 믿겠니! 중2까지는 내가 오빠보다 성적이 좋았거든.”

“어머나! 정말이야?”

“믿기지 않지?”

“응. 내가 공부를 잘했다면 우리 엄마는 엄청나게 좋아하셨을 거야.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녔을 텐데 너희 엄마는 왜 그러셨을까? 그래서 공부를 안 한 거야?”


“그런 셈이지. 여자가 공부 잘하면 쓸데가 없다는 소리를 계속 들으니깐 자의든 타의든 공부를 안 하게 되더라. 공부를 안 하고 오빠의 그림자로 조용히 있으니깐 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아서 오히려 편했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가 있었거든. 어차피 엄마와 아빠는 나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었으니깐 차라리 잘 된 셈이었지. 그러다 보니 시간이 너무 많은데 할 게 없는 거야. 하도 심심해서 잡지에 나와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 맞는 옷을 그리기 시작했어. 그러다가 옷에 맞는 머리 스타일도 그리고 싶은 대로 그려봤더니 더 재미있더라. 미용사가 되려고 결정하고 난 뒤로는 더 열심히 그렸었어. 예전에 말했듯이 스크랩북으로 원장님한테 칭찬받을 수 있었던 계기가 된 거야.”

“그래서 네가 스케치를 잘하게 되었구나. 그러니 이런 너를 내가 어떻게 따라가겠어?”

“호호호. 스케치를 잘하게 된 만큼 인고의 시간을 보낸 셈이지.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는 발판이 되었으니깐 말이야.”

“그러네. 넌 충분히 잘할 수 있을 거야. 내가 장담하지.”


“고마워! 내가 꿈을 위해서 가장 먼저 한 게 뭔 줄 알아? 바로 집을 떠난 거였어. 나한테는 집을 떠난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도전이었거든. 너처럼 부모님의 전적인 지지하에 집을 떠나온 것도 아니고 난 몰래 집을 떠나온 거잖아. 그날 집을 떠나오면서 그림자놀이를 그만두기로 결심했어. 오빠의 그림자가 아닌 빛나는 ‘나’로 ‘나답게’ 살고 싶어서 지금까지 치열하게 살수 밖에 없었어. 치열하게 사는 것이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이었거든.”


“소화야! 넌 누구보다도 ‘반짝반짝’ 빛나는 존재야. 그러니 네가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면서 살아. 너는 그만한 자격이 충분히 있어. 네가 내 친구라는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민아는 소화가 왜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지 비로소 이해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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