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미용실은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소화도 예약된 손님의 명단을 확인하면서 바쁘게 일과를 보내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함소화 미용실입니다.”
“.....”
“예약 때문에 전화하셨으면 말씀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전화 끊겠습니다.”
소화가 수화기를 내려놓으려고 할 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함소화니?”
“네. 제가 함소화인데요. 누구세요?”
“나다. 이젠 엄마 목소리도 잊어버렸니?”
소화는 그제야 엄마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웬일이세요?”
“엄마가 딸한테 전화도 못 하냐? 네가 전화 안 하니깐 내가 했다.”
“지금 바쁘니깐 나중에 통화해요.”
“서울 올라온 김에 얼굴이나 보고 갈까 해서 전화했다.”
“지금 서울이라고요?”
“미용실 앞 다방이야. 잠깐 얼굴 볼 수 있겠니?”
“손님 머리 마무리하고 갈 테니깐 기다리세요.”
소화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나서도 멍하니 서 있었다. 생각지 않게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기 때문이다. 서서히 정신을 차린 소화는 팀장에게 중요한 일이 있어서 자리를 비우게 되었음을 알리고 미용실 문을 나섰다. 다방은 병원 옆에 있어서 횡단보도만 건너가면 있었다. 신호를 기다리면서 맞은편을 보니 어렴풋이나마 엄마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신호가 바뀌어 건너가면서도 소화의 머릿속은 뒤죽박죽이 되었다. 소화는 한 번 더 심호흡하고 다방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다방 마담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어서 오세요! 바쁘신 원장님께서 웬일이세요?”
“약속이 있어서요.”
소화는 다방 안을 둘러보다가 창가에 앉아있는 엄마한테 시선이 멈추었다. 그리고 엄마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엄마는 소화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소화가 미용실 문을 열고 나와서 횡단보도를 건너올 때부터 보고 있었다. 소화는 엄마의 얼굴을 보고 나서 맞은편에 앉았다.
“여긴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미용실이 워낙 유명하니깐 금방 찾게 되더구나.”
소화와 엄마가 서먹한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하고 있을 때 마담이 주문받으려고 왔다.
“어머나! 원장님 어머님이시군요. 원장님이 어머님과 많이 닮았어요.”
“둘이 닮았나요?”
“물론이죠. 이산가족이 되어도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뭐 드실래요?”
소화는 이런 상황에서 길게 말하고 싶지 않아서 마담의 말을 중간에서 잘랐다.
“날씨가 쌀쌀하니깐 대추차가 좋을 것 같구나.”
“그럼 따뜻한 대추차 2잔 주세요.”
주문받은 마담이 가고 나자, 소화는 엄마의 얼굴을 천천히 바라봤다. 16년이라는 세월은 엄마의 얼굴에도 그대로 묻어있었다. 팽팽했던 얼굴은 잔주름과 깊은 주름으로 각인되어 있었고 위풍당당했던 엄마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엄마는 소화와 마주 앉아있는 것이 어색한지 자꾸 옷매무새를 만졌다. 유행이 훨씬 지난 옷을 입고 있는 엄마를 보면서 소화는 그동안 집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해졌다.
“집에 무슨 일 있어요?”
“맨날 그렇지.”
“아빠하고 오빠는 잘 있어요? 아줌마와 아저씨도 안녕하시고요?”
“식구들의 안부가 궁금하긴 한가 보네. 어쩜 너는 한 번을 안 찾아오냐?”
“그동안 저도 바쁘게 살았어요. 물론 지금도 바쁘지만요. 그동안 연락 한번 없더니 갑자기 왜 찾아오셨어요?”
“엄마가 딸내미를 찾아오려면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거니?”
“물론 안 그렇죠. 딸내미가 집을 나와서 16년이나 되도록 연락하거나 찾아온 적이 없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깐요. 오늘처럼 내가 있는 곳을 알려면 언제든지 알 수 있는데 말이죠. 그러니깐 솔직히 당황스럽긴 해요.”
당황스럽다는 소화의 말이 엄마에게는 내심 불편했는지 순간 미간을 찌푸렸다. 예전 같으면 소리를 버럭 지르며 화를 냈을 엄마인데 조용하게 앉아있는 엄마가 낯설어서 소화도 마음이 불편했다. 소화와 엄마 사이에 어색한 적막이 흐를 때 마침 마담이 대추차를 들고 왔다.
“주문하신 대추차 나왔어요. 맛있게 드세요.”
마담은 대추차를 앞에 놓고 총총히 사라졌다. 소화와 엄마는 말없이 대추차를 마셨다. 쌀쌀한 11월 날씨에 따뜻한 대추차를 마시니 몸도 마음도 여유가 생겼다.
“실은 과수원이 팔렸어. 그래서 아줌마와 아저씨는 다른 곳으로 이사 갔어. 가기 전에 여기 미용실을 알려줬으니 조만간 찾아올 거다. 그리고 우리도 곧 구미로 갈 예정이야. 아빠와 나도 나이가 있어서 과수원 하기에는 힘이 들어. 오빠는 대기업 다니다가 사업을 했는데 사업이 잘 안 되었어. 그래서 과수원 팔아서 일부는 오빠 사업자금 대 주려고 해.”
“과수원 팔고 구미로 간다고요?”
“응. 그렇게 되었구나.”
“다른 데로 갈 수도 있는데 왜 구미로 가는데요?”
“구미에는 엄마 사촌 언니가 살고 있어서 몇 번 가 본 적이 있는데 살만하더구나. 네가 중학교 다닐 때 집에 온 적도 있었는데 생각이 날는지 모르겠다.”
“구미에 가서 엄마와 아빠는 뭐 하면서 살 건데요?”
“평생 일했던지라 놀면 안 될 것 같아서 슬슬 공장이라도 다닐 생각이야.”
“공장을 다닌다고요? 과수원과 공장일은 엄연히 달라요. 엄마는 공장일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나 해요. 일을 했던 사람들도 쉬어야 할 나이가 되었는데 엄마와 아빠는 안 하던 일을 한다고요. 더군다나 그렇게 아끼던 과수원을 팔아서 오빠 사업자금을 대준다고요?”
“부모가 아들 사업자금을 대 줄 수도 있지?”
“물론 그렇죠. 그러나 과수원을 팔아서 오빠 사업자금 대 주는 것이 문제예요. 엄마와 아빠한테는 과수원이 전부잖아요. 그런 과수원을 팔고 젊었을 때도 안 하던 공장일을 다니려고 하잖아요. 그러다가 오빠 사업이 또 망하면 어떻게 할 건데요?”
“돈 좀 번다고 재수 없게 함부로 말하네. 아예 망하라고 고사를 지내지 그러냐.”
“오빠에 대한 엄마의 마음은 알겠는데 현실은 엄연히 달라요. 오빠는 명문대 졸업했으니깐 취업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지금이라도 직장에 들어가라고 하세요. 사업은 아무나 하는 줄 알아요.”
“오빠가 얼마나 똑똑한지 너도 잘 알잖아. 처음엔 잘 몰라서 망한 것이지만 이번엔 제대로 할 수 있다고 했어.”
“엄마! 공부 잘하는 것과 사업은 완전히 달라요. 오빠가 똑똑해서 명문대에 들어갔다고 해서 사업을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그리고 사업은 본인이 직접 뛰어다니면서 해도 성공하기 쉽지 않은데 과연 오빠가 그렇게 했을까요?”
“땅값 비싼 압구정에서 미용실을 운영한다고 오빠를 우습게 알고 있네.”
“지금까지 오빠를 우습게 생각한 적 없어요. 다만 한심하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요”
“별소리 다 한다. 오빠처럼 번듯한 사람도 없다. 그리고 어려울 땐 가족끼리 서로 도와주는 것이 인지상정이지. 오빠가 힘들면 동생인 네가 도와줄 수도 있잖아?”
“이럴 때만 가족인가요? 느닷없이 16년 만에 엄마가 찾아온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네요. 돈 잘 버는 나한테 오빠 사업자금을 대라고요. 그러나 이젠 엄마 말이라면 무조건 따랐던 어린 제가 아니에요. 집을 나와서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지금 여기까지 올라온 거예요. 집에서 대주는 돈으로 편하게 공부만 하고 직장 다녔던 오빠하고는 달라요.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만, 끝까지 버텼어요. 지금 성공한 것만 볼 게 아니라 성공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도 아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중요한 것은 미용실 개업할 때 대출받아서 돈이 없어요. 그러니깐 저도 대출받은 돈을 갚아야 해서 도와드릴 수가 없어요.”
“그렇다면 할 수 없구나. 과수원을 팔아서라도 도와줘야 하는 이유는 소철이가 곧 결혼하기 때문이야.”
“결혼과 사업이 무슨 상관인데요?”
“올케 될 친정 식구들이 죄다 명문대 나오고 집안이 쨍쨍하더구나. 오빠가 명문대 나와서 사업을 하고 있고 네가 압구정에서 미용실을 운영한다고 하니깐 사돈 될 사람들이 많이 좋아하더구나. 그 사람들도 이미 네 미용실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야. 그런데 오빠가 사업 망했다고 하면 그 결혼이 성사되겠니? 그러니 이번만 도와주면 안 되겠니?”
“제가 압구정에서 미용실 한다는 것 어떻게 아셨어요? 오빠가 말했죠?”
“물론이지. 오빠가 서울 물정을 잘 알고 있잖니. 실력이 좋아서 연예인들도 많이 온다고 하던데 정말 유명하더구나.”
“혹시 오늘 말고 또 온 적이 있었어요? 엄마는 서울 지리를 잘 알지도 못하잖아요?”
“실은 지난주에 오빠하고 와서 밖에서 잠깐 보고 갔다. 그날도 오늘처럼 손님이 많더구나.”
“미용실이 얼마나 잘 되는지 확인하고 간 거네요. 만약 오빠 사업이 잘되었어도 미용실에 찾아왔을까 궁금해지네요. 여전히 오빠는 엄마 뒤에 숨어 있고요. 이런 것 하나 제 입으로 말도 못 하면서 무슨 사업을 한다고 하는지 어이가 없네요. 당사자인 오빠도 염치없으니깐 직접 오지 못하고 엄마를 보낸 거잖아요. 엄마는 언제까지 오빠의 뒤치다꺼리를 하면서 살 건가요?”
“너한테 돈 이야기 꺼내는 것이 쉽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내가 이렇게 부탁하잖니! 오빠가 나이가 있어서 이만한 혼처 자리도 쉽지 않아. 친구들은 모두 결혼해서 아들딸 낳고 잘 사는데 소철이만 아직 장가를 못 갔어. 올해 넘기면 내년부터는 진짜 결혼하기 힘들 거야. 그러니 이번에 꼭 결혼할 수 있도록 네가 도와줬으면 좋겠다.”
“엄마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네요. 오빠하고 나는 쌍둥인 것 잊어버렸어요. 오빠가 결혼 못 하는 것만 안타깝고 나는 어찌 되었든 관심도 없네요. 여전히 엄마한테는 오빠만 있고 나는 없네요.”
“그거야...”
“오빠 결혼이 염려되면 저한테도 만나는 사람이 있는지 최소한 물어봐야 하는 것 아닌가요? 나도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고요.”
“너는 돈도 잘 벌고 잘살고 있잖니?”
“엄마 눈에는 돈 잘 버는 딸내미로만 보이는 거네요. 그래야 내가 물주가 될 수 있을 테니깐요. 고등학교 졸업하면 돈 벌다가 적당한 때에 결혼하라고 했던 말 기억나요? 생각보다 돈을 잘 벌고 있으니깐 나는 계속해서 돈만 벌면 되는 건가요?”
“너도 좋은 사람 있으면 결혼하면 되는 거지. 누가 하지 말라고 그랬냐?”
“그렇군요. 좋은 사람 있으면 내가 알아서 결혼하면 되는 거네요. 엄마는 여전히 나한테 관심도 없는데 내 돈만 필요한 거네요. 엄만 내가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고 궁금하지도 않잖아요. 집을 떠가기 전날 엄마한테 했던 말 기억해요? 내가 어떤 일을 하든지 엄마와 아빠 그리고 오빠하고는 상관이 없고 간섭하지 않는 게 나를 위해서 해 줄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일 거라고 했던 말이요.”
“정말 매몰차구나.”
“내가 매몰차다고요? 언제나 오빠한테는 좋은 것만 골라서 주고 나한테는 남은 것을 주었던 엄마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라도 있나요? 하다못해 집이 과수원을 하는데도 오빠한테는 좋은 사과를 주고 나한테는 파과만 주었던 엄마가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요? 멀쩡한 사과를 두고 파과만 먹다 보니 저는 제가 파과인 줄 알았어요. 졸업하고도 집에서 ‘쭉’ 살고 있었다면 지금도 제가 파과처럼 못난인 줄 알면서 살고 있었겠지요. 제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것이 집을 떠나온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엄마처럼 외할머니를 원망하면서 살고 있겠지요. 그리고 오빠의 그림자가 저인 줄 착각하면서 캄캄한 어둠에 갇혀서 살고 있었겠지요. 엄마와 오빠의 그늘에서 벗어나 햇빛을 받아보니 제 속에 있는 ‘씨앗’이 꿈틀거렸어요. ‘씨앗’이 좋은 땅을 만나고 따뜻한 햇살을 맞으니 싹이 나고 묘목이 되어서 어엿한 사과나무로 자랄 수 있었어요. 지금처럼요. 그래서 사과도 풍성하게 열리는 사과나무가 되었어요.”
엄마는 소화의 말을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엄마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면서 소화가 물었다.
“궁금한 게 있어요. 예전에 엄마의 행복은 오빠와 과수원이라고 했는데 지금 엄마의 행복은 뭐예요? 과수원은 팔릴 것이고 오빠의 사업은 망했잖아요?”
“과수원이야 오빠 사업이 잘되면 얼마든지 다시 살 수 있는 거잖니. 그래서 오빠 사업을 도와달라고 하는 거야.”
“이번에 사업자금을 대주어도 얼마 안 가서 또 망할 거예요. 오빠는 사업할 사람이 아니에요.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겠지만 예전의 오빠는 게으르고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어요. 다른 사람들 일에는 전혀 관심도 없었고 오로지 자신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이었어요. 언제나 엄마한테 용돈도 분에 넘치게 받아서 돈을 쓸 줄은 알아도 벌 줄은 모를 거예요. 이런 오빠한테 과수원을 팔아서 사업자금을 대준다면 과수원만 날릴 수 있어요. 그러면 엄마와 아빠의 노후는 어떻게 하려고요. 이젠 오빠가 아니라 엄마와 아빠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셔야 해요. 그러니 지금이라도 오빠한테 회사에 들어가라고 하세요. 예전에 오빠가 명문대에 들어가면 취업해서 돈도 잘 벌 것이라고 좋아했었잖아요. 오빠 스펙이면 얼마든지 대기업에 들어갈 수 있을 거예요.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해요.”
소화와 엄마는 미동도 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 전의 20년과 또 그 후 16년의 세월이 함께 농축된 그런 눈맞춤이었다. 소화는 엄마의 눈동자에서 완고함과 괘씸함이 여전히 자신을 향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런데도 소화는 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엄마를 바라보았다. 한동안 소화와 엄마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말은 안 해도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이젠 정말 가야 하겠다. 너라도 잘 살아라.”
먼저 일어난 엄마가 소화에게 건넨 말이었다. 그러고 나서 엄마는 매몰차게 문을 열고 나갔다. 소화는 그런 엄마의 뒷모습을 보면서 쓸쓸하게 일어났다. 소화가 대추차값을 계산하고 밖으로 나오니 엄마가 어딘가를 향해 열심히 걸어가고 있었다. 눈으로 엄마 뒤를 쫓으니 그곳에는 초췌한 모습의 오빠가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는 혼자가 아닌 오빠와 함께 서울에 올라온 것이었다.
소화는 더 이상 미련 없이 뒤를 돌아서 미용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