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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뜨로핏 Rettrofit Oct 02. 2024

프롤로그

Prologue

 이 모든 일들은 어느 날 우연히 동네 당근마켓에서 이름 모를 타자기를 무심코 사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장난감처럼 잠시 호기심 충족을 위해 구매했던 타자기를 계기로 내가 '타자기'에 관한 책을 쓰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자기 개발서 같은 책을 보면 우리의 삶은 항상 가능성으로 열려 있다고들 하지 않는가? 그 말처럼 우연히 접한 기계 하나가 내 삶을 상상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사건의 연속으로 인도했다. 가수 에피톤프로젝트의 뮤직비디오 촬영, 백남준아트센터의 전시 연계 타자기 워크숍 강연, KBS TV쇼 진품명품에 타자기 감정의뢰 출품까지 이런 일련의 모든 사건들은 타자기를 통해 생겨난 일련의 사건들이었다. 이제 이 책이 완성되어 세상으로 나가게 된다면 또 어떤 사건들 펼쳐지고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 벌써부터 가슴 떨린다.


입문자를 위한 책이 없다.

  4년 전 타자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초보이던 시절을 다시 떠올려 본다. 뭐가 뭔지도 잘 모르면서 타자기에 대한 관심과 의욕만 불타던 때다. 타자기를 다루는 방법이나 기능, 종류 등 궁금한 것도 많고, 점점 다양한 메이커의 기종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나니 다루어 보고 싶은 타자기도 점점 많아진다. 하지만 취미생활이다 보니 자금은 늘 한정되어 있다. 이것, 저것 막 구매하기도 힘들다. 타자기가 대부분 중고품이다 보니 작동을 제대로 하는 물건인지 확인할 방법도 모른다.(심지어는 판매자도 타자기에 대해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타자기 값의 가치판단 기준이 될 정보가 부족하다 보니 내가 제값을 치르고 사는 것인지, 바가지를 쓰는 것인지 조차도 알 수가 없다. 때문에 타자기 카페에서 조언을 구해보지만, 질문자의 가려운 곳을 박박 긁어 줄 해답을 얻기도 힘들다. 초보자들의 경우는 호기심 해소가 우선인 충동구매도 많은 편이어서 일단 맘에 드는 타자기의 구매가 우선이다 보니 구매 후 타자기로 취미생활을 어떻게 이어갈지에 대한 명확한 목적이 불분명한 경우도 적지 않다. 때문에 카페에 올린 질문을 보면 구매목적과 용도가 명확하지 않아 구체적인 조언과 정보를 주는 것도 한계가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구매결정과 책임은 사는 사람의 몫이다. 구매 후 타자기에 문제가 있더라도 조언자들이 책임져 줄 수는 없다. 그러니 카페에서 조언을 하는 경험자들도 타자기를 사라, 마라, 적극적 조언을 해 주기보다 조심스러운 조언을 해 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이런 시행착오들의 결과로 충동구매 된 타자기들은 기존의 구매가격보다 손해를 보고 다시 중고마켓으로 나오게 된다. 만약에 초보시절에 타자기에 대해 참고할 만한 입문서가 있다면 이런 손해와 시행착오는 적어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책이 없었다. 이 책을 준비하는 동안에 김태호교수가 <한글과 타자기>라는 책을 출간했다. 너무 반가운 책이었다. 출간되자마자 서점에서 바로 구매해서 금세 읽어내려갔다. 필자가 궁금했던 새로운 역사적 사실도 많이 알 수 있었다. 다만 김태호 교수는 기계사를 연구하는 학자적 관점에서 정리한 책이었기에, 취미로 타자기에 입문하는 이들이 참고할 만한 입문서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수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타자기에 푹 빠진 덕후의 관점에서 정리한 책도 필요하리라, 그래서 써 보기로 했다.


사실 타자기를 쓰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의 서점가에는 타자기에 대해 참고할 만한 책이 없을까? 나는 이 점에 항상 (불만과)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답은 간단하고 명료했다. ‘타자기’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수요가 그만큼 없다는 것이다. 내가 2020년경 타자기 동호회를 찾아보고 네이버카페에서 회원수가 가장 많은 카페를 찾아 가입했는데, 그 당시 회원수가 약 1,300여 명이었다. 그리고 2024년 현재 2,124명이다. 약 4년간 불과 824명 증가했다. 기간 대비 아주 적은 수라고 생각한다. 우표수집이나 만년필 등 여타 다른 동호회의 회원 수와 비교해도 타자기 카페 회원 수는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몇 만 명에서 몇십 만 명을 웃도는 지역 맘카페 회원 수에 비하면 초라한 수치일 수 있지만, 이것이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타자기에 대한 책을 낸다고 해도 많이 팔릴 책은 아닌 것이다. 우리는 자본주의를 살고 있지 않는가? 쉽게 말하면 돈이 되지 않는 것이다. 타자기는 이미 1990년대 중, 후반을 끝으로 PC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퇴물이 되어 세상에서 쓰임 자체가 사라졌다. PC는 그나마 아직도 사용되고 있지만, 이제는 얇고 성능 좋은 아이패드 같은 태블릿이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심지어 타자기보다 훨씬 편리하다. 처리할 수 있는 일도 많다. 쓰임이 더욱 많으니 당연한 일이다. 타자기가 한창 사용되던 1900년대 초부터 ~ 1990년대까지 타자기는 사무실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사무기기였다. 2024년이 된 지금. 아쉽게도 타자기는 이제 더 이상 ‘사무기기’로 분류되지 않는다. 극히 일부 소수자들이 영위하는 골동품이나 인테리어소품, 또는 취미생활 용품으로 글쓰기, 필사나 수집품의 용도로 분류되고 있다. 사용자의 수요가 절대적으로 적은 영역이 맞다. 그러함에도 내가 이 책을 쓰는 이유는 첫째. 이 또한 ‘덕질’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독립출판이 활성화되어 개인의 출판 비용 부담이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덕질의 일환이고, 이 책의 출판에 나의 생계가 걸린 것은 아니다. 다만 책을 통해 파생 가능한 수익이 생긴다면 타자기만 두고 연구할 수 있는 전용공간을 빌려서 유지하는 용도도 쓰고 싶다는 희망은 있다. 하지만 그 희망을 너무 부풀게 꿀 생각은 없다. 이 책 하나로 세상을 관심을 끌기에 나의 영향력은 아직 미약하다. 다만 이 책을 읽고 타자기에 관심이 생겼다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생긴다면 그걸로 충분할 것 같다.

    

타자기에는 우리가 알아야 할 한글문화와 역사가 있다.

  타자기와 관련한 한글기계화라는 훌륭한 한글문화유산을 가졌음에도 우리 서점가에서 타자기 관련 서적을 하나 찾을 수 없다는 지금의 현실은 너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세종대왕이 만들어 주신 ‘한글’이라는 위대한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한글’을 외국의 문물인 ‘타자기’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연구, 개발에 자신의 생(生)을 바친 선각자들도 계셨다. 감사하게도 그분들의 노력 덕분에 다양한 한글 입력방식을 타자기에 적용한 한글기계화가 이루어졌다. 표준자판 제정 과정에서는 안타까운 역사적 과정도 있었지만, 이런 역사의 과정을 거친 결과로 우리는 오늘날 PC나 스마트폰, 태블릿 등에서 편리하게 한글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타자기를 제대로 다룬 책이 많지 않으니 이런 감사한 역사적 배경을 아는 사람이 세상에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아 더욱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가 타자기에 더욱 심취하게 되면서 오히려 우리의 한글문화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것이 이 책을 쓰게 된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타자기 입문자를 위한 가이드가 되길

  한국을 벗어나 세계로 눈을 돌리면 정말 무수하게 많고 다양한 타자기들이 존재한다. 감사하게도 요즘은 수집가의 자금과 의지만 있다면 전 세계에 있는 다양한 타자기를 직구매할 수 있는 플랫폼과 배송서비스가 편리하게 갖추어져 있다. 스스로 “타자기덕후”라고 칭하지만 타자기에 대한 취향과 관심의 스펙트럼이 아직은 수동타자기에만 한정되어 있다. 때문에 나만의 타자기 수집의 원칙 중 하나는 바로 수동타자기만 수집한다는 것이다. 정말 귀한  아이템이 아주아주 저렴한 가격에 구매가 가능한 경우는 부득이 원칙을 깨고 전자타자기나 전동볼타자기 같은 기종도 구매하여 호기심을 해소하는 경우는 몇 번 있었다. 이 책을 집필하는 것이 내가 타자기에 대한 충분한 전문성을 갖추었다거나, 어떠한 사명감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이제 초보 딱지를 뗀 입장에서 누구보다 초보 입문자들의 마음을 잘 알기에 그만큼 타자기에 대해 궁금해하는 부분을 제일 잘 전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타자기 카페에는 4년 전 나와 같은 입문자들이 계속 비슷한 질문들을 올리고 있고 또 같은 답변들이 달리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타자기 입문자들에게 취미생활로의 안정적인 진입과 안착을 안내하는 가이드이자 입문 초반에 긍금증의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단비 같은 책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하여 대한민국에 타자기를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 이전보다 더 쉽게 접근하여 타자기 애호가들이 더 많이 늘어나기를 기대한다.

     

2024년 10일 2일

타자기 덕후 레뜨로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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