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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뜨로핏 Rettrofit Oct 23. 2024

EP3. 한글기계화 톺아보기(1)

1914 이원익 언문타입우라이터

앞서 언급한 대로, EP3부터는 타자기 마니아라면 꼭 알아야 할 한글기계화 역사의 주요 흐름을  '톺아보기'를 통해 정리를 해 볼까 한다. 이미 타자기에 관심이 있다면 익히 검색 등을 통해 알고 있을 만한 정보 일 수 있다. 그런데 인터넷검색으로 찾을 수 있는 정보의 깊이는 한계가 있었다. 검색에서 조금 더 깊게 들어가려고 하니 결국 정보는 '책'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타자기'라는 것이 이미 사용하지 않은지 오래된 물건이다 보니, 정보도 많지 않을뿐더러, 여기저기서 이 사람, 저 사람들이 개인 블로그나 카페, 홈페이지, 신문기사를 통해 단편적인 정보들이 조각조각 흩어져 공유되고 있는 실정이다. 너무 오래전 정보들이라서 정보의 신뢰성이나 사실여부도 확인하기 어렵다. 가짜뉴스가 판을 치는 시대에 마음먹고 누가 왜곡된 정보를 올려도 제대로 된 사실을 알지 못하고 그대로 믿을 수도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흩어진 정보를 어느 정도 필터링해서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는 이미 작년에 출간된 김태호 교수의 '한글과 타자기'가 그 갈증을 사이다처럼 시원하게 해소해 주었다. 필자도 정말 오래 기다리던 책이었다. 오랫동안 연구하며 검증된 역사적 사실들을 기반으로 타자기에 대한 한글기계화 역사가 너무나 잘 정리되어 있다. 그럼에도 '톺아보기'를 통해서 글을 쓰는 이유는 한글과 타자기 책에서 본 정보와 그동안 필자가 수집한 자료와 정보를 한 번 더 교차 정리하면서 필자 스스로 머릿속으로 한번 더 한글기계화 역사에 대한 정리를 하고자 함이다. 두 번째는 관점의 차이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 기계사라는 하나의 학문으로 타자기를 연구하신 김태호교수의 관점과 타자기를 수집, 복원하고, 개조하여 직접 사용하며 즐기는 마니아 입장의 관점은 어딘가 차이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 관점의 차이가 어떤 부분일지 필자도 세세하게 언급할 수는 없지만 학자들이 연구에서 다루지 않는 타자기 기종별 특징이나 차이점. 타자기 기종별 디테일, 활용법, 구입기 등 실질적인 사연들은 덕후들만이 경험할 수 있는 내용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이러한 이유로 한글기계화 톺아보기를 정리해 보려고 한다. 우리 한글 기계화 역사가 그리 간단한 역사는 아닌지라,,, 요약해도 한 번에 정리가 되지 않아서 EP5까지 세 번에 나누어 정리할 예정이다.    




아래의 사진은 미국에서 최초로 상용화된 숄스의 타자기로 래밍턴사 Remington에서 생산하였다. 재미있는 사실은 1895년 언더우드 타자기가 설립되어 모델 NO1이 출시되기 전까지 타자기를 치는 타이피스트는 자신이 타이핑한 페이지가 앞으로 나올 때까지 자신이 타이핑한 내용을 볼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최초의 상용화 타자기 Sholes & Glidden TypeWriter 1875 E. Remington & SonsIlion, New York

출처: https://artblart.com/2017/11/30/exhibition-the-typewriter-an-innovation-in-writing-at-sfo-museum-sfom-san-francisco-international-airport/ 


한글타자기의 역사는 타자기를 개발하고 상용화한 미국이나 독일, 이탈리아 등에 비하면 짧은 편이다.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최초의 한글타자기는 1914년에 재미교포 이원익선생이 7행식 영문타자기인 스미스 프리미어 10 Smith Premier No10에 한글 활자를 개조하는 방식으로 만든 (다섯 벌식)것이 시작이다. 이때부터 1995년 타자검정시험이 폐지된 시점까지 계산해 보아도 약 80년의 세월이다. 135년 이상인 해외에 비하면 짧을 수 있지만, 이 80년의 세월 동안 한글기계화를 위해 자신을 생을 걸고 한국인이 쓰기 최적화된 한글 자판을 만들고, 우리의 글쓰기 문화의 안착을 위해 노력하신 분들이 많았고, 또 많은 결과물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잘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한글기계화의 시작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정부가 아닌) 민간에서 먼저 시작되었으며,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한글말살정책 때문에 해외에서 먼저 시작된 것이 어쩌면 당시의 시대 상황이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한글타자기의 시작은 모두 재미교포 한국인 이원익, 송기주, 김준성에 의해 먼저 시작되었다.(자료를 찾아보았을 때 이원익, 김준성 두 분은 모두 '목사'라는 호칭을 공통적으로 쓰고 있다) 시대순으로 보면 이원익목사의 언문타자기 개발이 1914년, 그 뒤 송기주선생의 한글타자기가 1934년, 김준성목사가 개발한 한글타자기가 1945년 순으로 개발되었다.


이원익의 언문 타입우라이터_ 1914

출처. https://blog.naver.com/ssabj/221570280057

타자기수집가들에게는 익히 '시흥 안 선생님'으로 통하는 Hello kor typewriter에서 현재 이원익 타자기를 2020년부터 복원 중에 있으며, 블로그에 그 자료들이 일부 올라와 있다. 위 사진은 복원을 위해 구한 스미스 프리미어 10 이원익타자기의 사진인데, 상단에 있는 데칼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저게 도대체 무슨 글씨인가? 싶을 것이다. 읽는 방법의 팁을 주자면 당시 글쓰기 문화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고 썼다.  그러므로 오른쪽 끝부터 읽으면 "스미스 프레미어 -  글시쓰는 긔계" 라고 읽을 수 있다.  1914년에 '타자기'라는 용어 자체가 없었기 때문인지? 순우리말로 표기하기 위해서 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타자기'를 '글씨 쓰는 기계'로 표기하고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  


출처. https://blog.naver.com/ssabj/221570280057


원익은 1908년에 출시된 7행식 스미스 프리미어 10에 명조체의 한글 자음과 모음을 덧붙여 한글 타자기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이 타자기 특징으로는 가로로 써서 세로로 읽는 방식이다. 타이핑 시 글자를 왼쪽으로 드러누운 꼴로 찍어서, 나중에 인쇄한 종이를 오른쪽으로 돌려 보면 세로 쓰기 문서를 볼 수 있도록 하였다. 두 번째 특징으로 자판은 총 84개로, 여기에 한글 자모가 다섯 벌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초성 글쇠 두벌, 중성 글쇠 두벌, 종성 한 벌 글쇠로 되어 있다. 이원익 타자기는 일본의 강점기였던 시대에 조선의 한글이 일본어보다 먼저 기계화되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평가받는다. 이후 한글타자기 개발에 뛰어든 공병우박사에게도 영감을 주었다. 그의 자서전 <나는 내 식대로 살았다>에서도 이원익, 송기주 타자기를 구해서 타자기 연구에 참고를 하였다는 내용이 있다. 이 부분은 그대로 인용하는 것이 좋을 듯하여 일부 발췌요약하여 인용한다.




문방구를 겸한 사무기 상회에 나가 보았다. 여기서 뜻하지 않게 허름한 한글 타자기 두 개를 발견하였다. 재미교포 이원익 씨와 송기주 씨가 개발했다는 한글타자기였다. 이원익 씨가 만든 것은 1910년까지 쓰였던 12 글쇠 7열의 84 글쇠 식 타자기였고, 송기주 씨가 만든 것은 1930년대에 모양이 개량된 42글쇠 2단 시프트식, 곧 현재의 수동 영문 타자기와 비슷한 언더우드 휴대용 타자기였다. 타자기 글쇠 수의 문제로 이원익 씨 타자기는 타자의 근본 원칙인 촉지법이 불가능한 것과 달리, 송기주 씨의 것은 촉지법이 가능하였다. 두 분 것이 다 한글을 가로로 찍어 세로로 읽게 되는 형식이었다. 물론 그것은 당시 모든 인쇄물이 세로로 내려썼기 때문이다.  이원익 씨가 만든 것은 다섯 벌식인데, 자음과 모음은 부동키로, 받침이 붙지 않는 모음과 받침은 찍고 가도록 만들었다. 그러므로 윗글자쇠를 누르거나 군손질 없이 한글을 찍을 수 있었다. 문장을 자형에 따라 구분 타자하면 정체 없이 전진하며 글자를 찍도록 한 것이다.

 출처: 공병우 자서전 <나는 내 식대로 살았다> 중에서




그리고 자서전에서 공병우 박사는 자신이 한글 타자기를 처음으로 발명한 사람이라고, 잘 못 알려져 있음을 민망하게 생각한다는 언급과 원조는 이원익 선생을 최초의 한글 타자기 개발자로 모셔야 한다는 회고를 하였다. 그만큼 한글타자기 개발에 많은 에너지를 쏟기도 했고, 사회적 영향력 또한 컸기 때문에 사람들은 최초의 한글 타자기 발명가로 공병우 박사를 인식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때문에 그 부분이 못내 불편했던 공박사는 자서전에서 이를 언급하며 바로잡고자 했던 것 같다.  


아래의 내용은 이원익 타자기에 대한 송기주 선생의 평을 정리한 내용이다.





우리 한글 타입우라이터가 세상에 처음 나오기는 지금(1934년)으로부터 이십 년 전에 이원익, 이진일 두 분의 힘으로 된 것인데, 기계는 옛날 뢔밍톤 회사의 오래된 모형으로 글자를 박이는 키의 수효가 여든여덟이었다. 그러나 글자의 모양이 아름답지 못하고, 자형이 불규칙하고 키의 수효가 많아서 시간의 경제도 되지 못하여 실제 사용에는 적합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 넓이 사용되지 못하였으나, 그들의 애쓴 공로는 크다고 할 것이다.   


※ 이원익 한글타자기에 사용된 타자기는 1908년에 출시한 스미스 프리미어 10 타자기로 스미스프리미어는 1900년대 초반에 레밍턴(Remington)에 합병되었으나, 1930년대까지 스미스 프리미어라는 상표를 유지하고 제품을 생산했다고 한다.  출처: 한글과 타자기(김태호저)






아래의 내용은 장봉선 선생의 책(한글 풀어쓰기 교본)에서 발췌한 이원익 선생과 관련한 짧은 회고이다.






1958년 12월에 뉴욕 영사관에서 기념으로 둔 것을 보고 그때 뉴욕에 거주하는 이옹을 만나려고 하였으나 그의 건강상태가 좋지 못하여 만나지 못 만났다.

출처: 한글 풀어쓰기 교본(장봉선 저)






역시 1950년대라서 그런지  '옹'이란 호칭이 등장한다. 아마 요즘 세대들에게는 매우 매우 생소한 용어 일 듯하여 설명을 덧붙인다. 짧은 글이지만 이원익 선생이 1958년에 뉴욕에 거주하고 계셨고,

당시 건강이 좋지 않았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는 자료다. 뉴욕영사관에서 이원익 타자기를 전시를 하고 있을 정도의 위상이었다는 점이 놀라운 부분이다. 장봉선 선생과의 교류가 얼마나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뉴욕영사관에서 이원익 타자기 보고 연락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관계나 위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이원익타자기의 활자가 어땠는지 타이핑 견본들을 모아서 보려고 한다. 아래의 샘플은 장봉선 한글 풀어쓰기 교본에 있는 자료이다. 이원익 타자기를 출시하여 타자기로 직접 타이핑한 타자기 홍보전단으로 보인다.



형광펜 표시가 되어 있는 부분만 옮겨보았다.

"언문으로 글씨 쓰는 기계를 만드는 일이 성취된 것과"

"지금 최 신식의 스미트 프레미어-제 십(十)호 글시쓰는 기계를 사게 되는 것을 알면 반가와할이로다"


아래는 '한글과 타자기'에  책에 있는 이원익타자기 타이핑 견본 자료이다. 위에서 자료와 동일한 자료이다.


그리고 검색 중에 한 블로그에서 발견한 자료인데, 글쓴이는 글문화, 타이포그래피를 연구하시는 분 같다. 이원익 타자기 결과물이 올려진 게시물이 있다. 위에 올린 이원익 타자기 홍보물 자료인 동일한 이미지이지만, 꽤 선명하게 잘 나온 자료가 올려져 있다.

참고링크: https://blog.naver.com/pamina7776/50104745689 






존하는 이원익타자기의 실물이 존재한다는 기사가 났다. 불과 2년 전인데, 이원익 타자기가 미국 시라큐스대학이 위치한 오논다가(Onondaga) 카운티 역사박물관이 보유하고 있으니 한국으로 들여오자는 것이다.


출처: https://www.dt.co.kr/contents.html?article_no=2022101702102269061002&ref=naver


오논다가는 타자기 유명브랜드 '스미스 프리미어 Smith Premier ' '스미스 코로나 Smith Corona'의 공장이 위치했던 곳이다. 이원익 타자기가 스미스프리미어 10 기종으로 제작되었기에,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다만 기사에는 이런 흥미로움을 해소해 줄 자료가 없어서 다소 아쉽다. 박물관에서 타자기가 전시가 되어 있는 사진이라도 있었다면 훨씬 더 좋았을 것을. 이원익 타자기가 1914년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었으나, 그 실물이 없었기 때문에, 그동안은 국립한글박물관에 있는 송기주 타자기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글타자기였다. 그런데, 그 실물이 미국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정부에서 나서야 할 일이다.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소장할 수 있도록 예산을 편성하고 정부가 미국과 외교적으로 접촉하여 오논다가 역사박물관에서 이원익타자기를 한국으로 들여올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민간 비영리 단체로 보이는데, 만약 어렵다면 한국에서 기획 전시라도 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힘써봐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혹시나 해서 오논다가 역사박물관 사이트를 가 보았으나, 한글타자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정보는 찾을 수 없다. 현지에 직접 가서 입장료를 내고 상설전시를 관람해야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다고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갈 수는 없는 문제다.


https://www.cnyhistory.org/visit/downtown/ 


실물은 아니지만,  한국에서는 이미 2020년부터 타자기 수리 전문가인 Hello kor typewriter의 안병조 선생님이 이원익 타자기 복원을 하고 있다. 필자도 타자기 수리를 위해 방문했다가 복원 중인 타자기를 실물로 살짝 구경하고 왔다. 타자기 수리나 기타 다른 기계들의 복원 문의로 바빠서 타자기 복원작업이 지지부진한 듯하다. 의뢰인이 있는지?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는 물어보지 않았다. 언젠가 완성이 된다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터. 다만 이런 프로젝트를 개인이 사비를 들여서 하는 것도 의미 있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사유물이다.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이런 타자기의 복원이라면 국립한글박물관에서 복원을 의뢰하여 봄직한 일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이원익 타자기까지만 언급했는데 내용이 꽤 길게 내려와 버렸다. 한글기계화 톺아보기(1)은 여기까지 정리하고 다음 차에 송기주 타자기부터 정리해 가야겠다.  끝.






#타자기 #한글기계화 #이원익타자기 #한글과타자기 #이원익 #장봉선 #공병우 #스미스프리미어넘버10 

#언문타자기 #타자기덕후 #김태호교수 #톺아보기




참고자료.

이원익 언문타자기 복원 관련 자료

https://blog.naver.com/ktypewriter/222796266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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