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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정 Sep 01. 2023

우리의 보편 6

  은영이 향을 피우고 절을 하는 동안 보숭이 어머니는 옷고름을 다시 매고 머리를 만졌다. 보숭은 그런 어머니의 삐뚤어진 머리핀을 다시 고정해 줬다. 그리고 일 대 삼으로 마주 보고 서서 서로 절을 했다. 

  “와 줘서 고맙습니다.” 

  보숭이 아버지가 말했다. 은영은 뭔가 큰일을 한 것 같았다. 의례적인 인사가 아니라 정말 자기가 와서 보숭이도 보숭이 부모님도 기뻐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은영은 아주 잠깐 이상한 생각을 했다. 보숭이 누나의 자리를 지금 내가 채우고 있는 건 아닐까? 앞으로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그럼 우리 사이를 더 단단하게 묶어 주는 것은 뭘까?

  아닌 것 같았다. 은영은 보숭이 누나처럼 잘 웃는 사람이 아니었다. 말하자면 보숭이에 가까운, 덜 느끼는 쪽에 가까워서 한 달에 서너 번을 만나도 몇 년째 그들은 친구였다. 지금과 달리 킹스턴으로 조기 유학을 가는 경우가 드물었고 서로를 모르는 게 더 이상했다. 그러니까 친구가 안 되는 게 더 이상한 상황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지 의지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은영은 일 년을 그곳에서 보냈다. 보숭은 조금 더 길게 있었다. 캐나다는 9월에 1학기가 시작하고 2학기는 1월에 시작됐는데 은영이 생각나는 건 눈뿐이었다. 아는 것이 눈뿐이라 그랬는지도 몰랐다. 오후에 데이케어센터를 갈 때나 주말에 한인 교회를 갈 때면 쌓인 눈이 쩍쩍거리는 소리를 내며 가지를 꺾어서 걸을 때도 늘 조심해야 했다. 은영은 잘 넘어졌다. 그냥 넘어진 것이 아니라 발라당, 엉덩이가 얼굴을 가릴 때도 있었다. 몇 번 그런 은영을 보고도 보숭은 못 본 척했다. 은영이 부끄러울까 봐 그런 것 같았지만 그래서 은영은 더 부끄러웠다. 겨울 바지를 사기 위해 루츠 매장에 갔다 오는 길에는 눈 위에서 피 묻은 동물 발자국을 발견한 적도 있었다.

  은영이 돌아올 때쯤엔 킹스턴 외곽의 오래된 건물이 햇빛을 받으면서 쌓인 눈들이 서서히 흘러내렸다. 시내면세점 사업에 투자했다 실패한 후 은영의 부모님들은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이혼했다. 그 모든 절차가 끝난 후 은영은 완전히 다른 아이가 되어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여전히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마트나 서점을 가도 늘 여행 중이라는 기분에 시달리는 일이었다. 떠날 때 집은 강남이었지만 돌아와서는 강북으로 가야 했다. 한동안 택배와 고지서의 주소가 너무 낯설어서 은영은 진짜 자신이 돌아온 것이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은영은 보숭을 생각했다. 

  얼마 후 보숭 또한 넉넉지 못한 형편 때문에 중간에 돌아왔고 돌아온 즉시 한국에서 다니던 학교를 자퇴했다. 은영과 보숭은 이후 일주일을 사귀었고 왜 헤어졌는지 이유도 모른 채 헤어졌다. 

  보숭의 어머니가 은영에게 외동이냐고 물었고 은영은 외동이라고 답했다. 외롭겠다고 했다. 그건 이제 우리 보숭이도 마찬가지네, 라고 하다가 그 사실에 새삼 놀라고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보숭의 부모님이 뭔가 더 물을 것 같았지만 보숭이 은영의 팔을 잡아끌었다. 

  “배고프지?”

  “별로.”

  그런데 뭐야? 저 방? 은영이 턱으로 분향소를 가리키자 보숭은 그제야 상주들이 쉬는 방이래, 호텔 같지? 장례식장에서 제일 비싼 곳이라고 했다. 안쪽에 대리석으로 꾸민 샤워실도 있다고 말했다. 보숭이 부모님은 그렇게 한 번씩 크게 돈을 썼다. 줄곧 가난하다가 없는 돈을 모아서 돈으로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을 하는 것 같았다. 보숭의 조기 유학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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