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보숭과 얘기 끝에 은영은 누나가 아이들과 함께해서 좋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젤리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는 기분일 것 같아. 그때 보숭은 은영에게 정색을 하고 어린이집에는 어린이만 있는 게 아니라고 했다. 어린이도 다 같은 어린이가 아니라고 말하고는 쉬운 일이 아니야, 잘라 말했다. 그때 무심한 보숭이 누나에 대해서만은 무심하지 않게 길게 얘기해서 은영은 오래 기억에 남았다.
은영이 보숭이 누나에 대해 아는 것은 대부분 그런 식으로 알게 된 정보였다. 보숭이 누나는 전문대 유아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바로 어린이집에 취직했다. 평균 학점이 4점대였을 정도로 성실했고 교우 관계도 두루 좋았다. 동기들 중 가장 먼저 국공립어린이집에 취직이 되어 많이 들떠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채 한 달이 안 돼 보숭이 누나는 그만두고 싶어 했다. 아침 차량을 돌고 아이들과 일과가 시작되면 벌써 피곤해. 누나는 중간중간 학부모와 원장의 사소한 요구들을 체크하고 처리해야 했다. 배변 훈련 중인 아이들이 급하게 화장실에 가다 바지에 똥이나 오줌을 싸는 경우가 많았다. 밥을 먹을 때 그러면 좀 그래, 보숭의 식구들은 일은 일이니까, 그게 일이니까, 라고 생각했다. 다음 날이면 누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출근했고 아이들과 같이 노래를 부르고 동화책을 읽어 주고 한글을 가르쳤다. 겨우 점심을 먹고 아이들을 재우면 꼭 한 아이가 안 자. 좀비처럼 돌아다니면서 다른 아이들을 깨워. 그럴 때는 같이 누워서 다독이다가 깜박 잠이 든다고 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아이들이 잠든 시간에 일과 수첩을 정리하고 하원 준비를 해야 해서 더 바빴다. 하원 차량이 스무 군데 정도를 거쳐 돌고 나서도 누나는 집에 올 수 없었다. 원에는 서류 정리가 많았다. 평가인증이나 여름학교, 재롱잔치 등 원 행사가 있을 때는 매일 새벽이 되어서야 돌아왔다는 보숭이 누나는 영정 사진 속에서 웃고 있었다.
분향소에도 보숭은 없었다. 시간이 지나도 보숭은 보이지 않고 기다리다 지칠 때쯤 은영은 단을 쌓은 재단 옆으로 난 방문을 발견했다. 방문을 열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죽음이 그 안에 있을 것 같았지만 아니었다. 문을 열자 생각지도 못한 빛이 쏟아졌다. 너무나 이승 같은 방에 형광등 불빛이 하얗게 떠다녔다. 그곳에 보숭이와 보숭이 부모님이 커다란 침대에 나란히 누워 있었다. 검은 양복에 검은 상복을 입고 있어 동그란 얼굴만 유난히 선명했다. 은영은 그런 것을 본 적이 있었다. 물속에 누워 얼굴만 내민 검은 조약돌들.
“어, 왔어.”
보숭은 그렇게 말하며 일어났다. 우리가 너무 쉬었나? 보숭이 부모님도 천천히 느릿느릿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은영은 그때 보숭이 부모님을 닮았다는 것을 알았다. 평소 급한 것도 문제 될 것도 없는 느긋하고 태평한 성격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알 것 같았다. 은영에게 누나의 부고를 알리면서도 보숭은 그랬다. 그래도 되나 싶게, 혹시 친누나가 아닌가 싶게, 흔한 사고라고 했다. 어린이집에서 늦은 밤까지 일하다 집에 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재수 없게 누나가 거기 있었던 거지.”
은영은 보숭의 말에 놀랐다. 아니, 보숭이가 너무 안 놀라고 안 당황해서 은영이 대신 어떡해, 어떡해, 라며 울었다. 그러자 보숭은 한참을 듣고만 있더니 누가 들으면 너네 가족이 죽은 줄 알겠다고 어이없어했다. 은영은 또 그런 보숭이가 어이없어서 너는 괜찮아? 묻자 보숭이가 아주 천천히 나도 많이… 하고는 말을 고르는 건지 감정을 고르는 건지 모를 머뭇거림을 흘려보내고는 됐다고 했다. 그러고는 또 한참을 있다 올래? 라고 했다.
“어디를?”
“그게 그냥 보내기가 섭섭해서.”
은영이 듣기에 보숭은 그 말을 집에 오는 사람한테 뭐라도 들려 보내는 노인네처럼 했다. 섭섭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