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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정 Sep 01. 2023

우리의 보편 4

  은영이 들어가자 넓은 접객실이 나왔다. 특1호가 한꺼번에 이해되는 크기였다. 테이블은 많았고 사람은 없었다. 마흔 개 정도 돼 보이는 테이블에는 횟집에서 쓰는 얇은 불투명비닐이 깔려 있었다. 주방으로 보이는 곳에는 반찬이 담긴 쟁반이 기술적으로 쌓여 있었다. 아마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릴 경우를 대비해 미리 준비해 둔 모양이었다. 은영이 멀리서 봐도 안쪽 분향소는 꽃으로 휘감아 놓은 것처럼 화려했고 상주 자리는 촘촘한 가벽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보숭은 없었다. 대신 음료 냉장고 옆에 바짝 붙어 누군가 음식을 먹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옆에는 아이도 있었다. 하얀 면 스타킹을 신고 의자에 앉아 있는 아이의 발이 식혜의 밥풀처럼 동동 떠 있었다. 은영이 들어가자 인기척을 느낀 남자는 앉은 채로 등만 돌렸다. 보숭과 전혀 닮지 않았지만 보숭과 비슷한, 어딘가 축축한 분위기가 느껴져서 낯설지 않았다. 은영은 살아 있는 보숭의 가족이 있다는 당연한 사실이 반가웠고 그가 이렇게 와 줘서 고맙다고 할 것 같았지만, 아니었다.

  “여기가 어디라고 왔소!”

  은영은 놀랐다. 아무래도 장례식장을 잘못 찾은 것 같았다.

  “여기가 어디라고!” 

  더 구경할 게 남았소! 신나서 깨춤 추며 왔소! 말을 할 때마다 남자는 위협적으로 한쪽 가슴을 내밀었다. 얼마나 열심히 밥을 먹었는지 인중에는 땀이 고여 있었고 입술에는 빨간 국물이 번져 있었다. 남자는 은영을 다시 노려보더니 원망하듯 물었다.

  “혼자 왔소! 왜 혼자 왔소! 왜 이제 왔소!”

  순간 은영은 미안했다. 하지만 뭐가 미안한지 몰라서 은영은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자기는 그런 사람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하자 남자는 그제야 해움어린이집에서 온 선생 아이오? 라고 물었다. 은영은 아니라고 보숭이 친구라고 말했다. 그는 뭔가 아쉽다는 듯 시선을 멀리 입구 신발장을 지나 복도 쪽으로 옮겼다.

  “그 사람들이 온 줄 알았지비.”

  그는 등을 돌려 다시 밥을 먹었다. 차갑게 식은 수육과 김치, 마른 도토리묵과 꽈리고추, 멸치볶음 쪽으로 젓가락을 바쁘게 움직였다. 은영은 그가 누군지, 보숭이 삼촌인지, 사촌 형인지, 보숭이 누나 애인인지 궁금했지만 그는 이미 은영에 대한 모든 관심을 꺼버린 후였다. 그건 은영이 어린이집에서 온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진짜 어린이집 선생님은 보숭이 누나였다. 그만두기 전까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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