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영이 수업을 나가는 학교 서류에도 그런 여백이 많았다. 은영은 지난해 봄 방과 후 외부 강사 계약서에 사인을 하지 말고 공란으로 비워 두라는 말을 들었다. 일주일 후 수업 시간이 다시 재조정되어 추후 공지가 발송될 예정이라는 수업 연기 문자가 왔다. 두 달 뒤에는 코로나 확산으로 방과 후 수업 개설이 전면 취소됐다고 했다. 그 기간에 학교는 공사를 했고 계약서는 공란인 채로 영구 폐기됐다. 은영은 일 년 동안 수업이 없었다. 상황을 지켜보자는 학교의 말에 다른 일도 찾지 못하고 모아 둔 돈을 소비했다.
은영은 핸드폰 요금제를 데이터 무제한에서 기본 제공으로 바꿨다. 부식비를 줄여 볼 생각으로 다이소에서 직사각형 다용도 화분을 사서 상추와 치커리, 방울토마토를 심었다. 파란색 화분과 황토색 화분 중에 고민하다 파란색으로 사면서 왜 이런 색일까 궁금했다. 이런 데 채소를 키우는 사람들이라면 분명 땅이 없는 사람일 거라고, 땅이 없는 사람은 하늘도 없는 사람일 거라고 누군가는 생각했을 것 같았다.
“물만 잘 주면 돼요.”
키우기 어렵냐는 은영의 말에 재래시장 모종 가게 남자는 그런 말은 처음 듣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남자의 말과 달리 상추와 치커리, 방울토마토는 잘 자라지 않았다. 열심히 물을 줬지만 잎 가장자리가 누렇게 떴고 고개가 힘없이 처졌다. 은영은 그게 그 여름 자신의 상태 같았다. 마트에서 잘 포장된 싱싱한 상추를 사면서 알 수 없는 배신감이 들었다. 그래서 불판 위에 지글거리는 고기를 덜 먹었다. 고기 좀 먹자, 엄마는 자이글을 꺼내 놓고 여름내 애처럼 졸랐다. 은영이 딸이 아니라 그녀가 은영의 딸인 것처럼 굴었다.
은영에게는 지난해가 가장 어려운 한 해였다. 아니, 특별한 일 없이 아르바이트를 하던 보숭은 더 했을 것 같았다. 은영은 보숭이 종종 부모님의 분식집에서 일하는 것을 알았다. 배민과 요기요에 동네 배달 업체로 등록하고 나서 가게 매출이 조금 늘었다고 했다.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이 매장보다는 배달을 선호했고 주말같이 바쁠 때는 보숭이 직접 배달을 가기도 한다고 했다. 차도 오토바이도 없는 보숭은 음식이 식을까 봐 배달 봉투를 가슴에 안고 뛴다고 했다.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아파트 단지 사이를 뛰어다니는 모습을 은영은 생생하게 그릴 수도 있었다. 겹쳐 입은 무채색의 옷과 접어 신은 몇 년 된 캔버스화 같은 것들. 오래 웃거나 오래 찡그린 적 없이 건조하게 단련된 표정 같은 것들. 가끔 보숭은 자기가 지키려는 온기가 너무 보잘것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했다. 상한 옷감처럼 잘 빨고 말렸는데 어찌할 수 없는 낡은 표정으로 그런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식는 건 너무 금방이거든.”
“식어?”
“응, 뭐든 너무 쉽게 식잖아.”
은영은 그 말이 떠올라, 뭔가 아쉬워하면서 화면에 뜬 보숭이 누나와 보숭이 부모님의 이름을 들여다봤다. 소리 내 읽었다. 모두 처음 듣는 낯선 이름이었다. 호명을 받은 이름들은 모두 대답이 없었다.
은영은 보숭과 그래도 꽤 오랫동안 친구였고 집안 사정도 대충은 알고 있었다. 그러다 마찬가지로 보숭이 자신의 부모님 이름을 알 턱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알 수도 있지만 굳이 알 필요는 없는, 이름이라는 것이 꼭 그렇게 광범위하게 불리는 호명은 아닌 것 같았다. 그것보다는 보숭이 부모, 보숭이 누나 등의 역할로 규정되어 불릴 경우가 더 많았을 것 같기도 했다. 학교에서는 학생, 버스에서는 기사님, 식당에서는 여기요, 라고 부르는 것처럼 더 쉽고 편한 쪽으로 불렸을 것 같았다. 그건 너무 쉬운 선택이 아닌가. 은영은 줄지어 선 화환이 있는 곳으로 서둘러 발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