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망 Nov 12. 2022

아름다운 묘사와 간결한 문체

<칼의 노래> 김훈

<칼의 노래>는 작가 김훈이 2001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난중일기의 내용을 바탕으로 충무공 이순신이 백의종군하던 시점부터 전사할 때까지를 다룬다. 이순신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 중에 가장 인지도가 높은 작품으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이제는 거의 유실된 거나 다름없었던 한자 문학의 미를 현대문학적으로 되살렸다'라는 평을 받았다.


이순신은 왕명을 어겼다는 모함으로 관직을 박탈당하고 백의종군한다. 조선군이 전멸할 위기에 처하자 다시 삼도 수군통제사로 임명되어 일본군과 다양한 해전을 펼친다. 열악한 상황에서도 기지를 발휘하여 조선 바다를 지키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으로 왜군은 철수를 준비한다. 명나라가 왜군과 거래하여 왜군의 퇴로를 열어주자, 퇴로를 차단하고 철수하려는 적들과 전투를 벌인다. 그 과정에서 이순신은 적의 총에 맞아 전사한다. 인간 이순신이 느꼈던 허무함, 무력함 등을 아름답고 담백한 문체로 그리고 있다.


김훈이 애초 염두에 둔 제목은 '광화문 그 사내'였다고 한다. 광화문 네거리에 있는 충무공 동상을 고려한 제목이다. 그러나 너무 장난스럽다는 출판사의 의견에 작가는 '칼과 길'을 내놓았고, 이 역시 지나치게 심각하고 무겁다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그래서 결정된 것이 '칼의 노래'다. 작품에서 칼은 이순신의 내면에서 꿈틀대는 본능, 적과 임금의 적의, 무기력함 속에서도 이순신이 품고 있는 적을 향한 단호한 의지 등 다양한 것으로 표현된다. 그런 의미에서 <칼의 노래>는 책과 어울리는 탁월한 제목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이순신의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전개된다. 그래서 소설이라기보다는 이순신의 에세이, 회고록처럼 느껴진다. 조선에 충성을 다하는 신하의 모습보다는, 백성과 나라를 보호하려는 한 가정의 가장과 같은 면이 부각된다. 전투를 벌이는 바다의 풍경, 전쟁 중에도 목숨을 이어가는 백성과 마을의 모습, 이순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감정들을 담백한 문체로 그려낸다. 자연 풍경은 노을, 반짝이는 물비늘, 파도 소리, 썰물, 달빛, 강한 물살, 안개 등의 현상을 통해 아름답게 묘사한다. 마치 시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든다. 반면 전투 장면이나 전투와 전투 사이에 백성들이 처하는 고단한 상황은 건조하고 담백한 문장으로 표현한다. 특히 백성들의 상황을 묘사하는 부분은 의도적으로 자주 문단 나눔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미사여구 없는 단문과 짧은 문단의 구성으로 빠르게 읽힌다. 아름다운 풍경 묘사와 대비되는 건조한 상황과 사람들의 모습이 강한 대비를 이룬다. 이러한 대비 덕분에 이순신이 느끼는 허무함과 무력함이 보다 강하게 느껴진다.  


김훈의 문장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간결하면서도 아름답게 읽히지만, 그의 문체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불편함을 준다. 대부분의 문장이 불필요한 단어 없이 단문으로 이루어진다. 한 단어에 함축된 의미를 파악하느라 쉽게 페이지를 넘기지 못할 때가 많다. 나 또한 김훈의 문체에 익숙하지 않아 불편함을 느꼈었다. 그의 에세이 <자전거 여행>은 몇 번을 도전했다가 완독 하지 못한 책이다. 그런 이유로 <칼의 노래>를 읽기 시작했을 때 몇 페이지도 이해하지 못하고 책을 내려놓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로 시작하는 초반부는 풍경 묘사가 많다. 우려했던 대로 속도가 나지 않아 페이지를 넘기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호흡이 빨라지는 상황 묘사에서는 어렵지 않게 흐름을 따라갈 수 있었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문체에 익숙해져 갔다. 기존에 어렵게 느껴졌던 풍경 묘사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더라도 가볍게 넘어가고, 빠르게 전개되는 전투 장면과 심리묘사에서는 그에 맞는 속도로 따라갔다. 김훈은 인물의 성격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이순신이 느끼는 시각, 촉각, 청각 등의 감각 묘사를 통해 그의 심리를 드러낸다. 인물이 가진 특성을 행동과 말투, 오감의 묘사를 통해 그려내어 읽는 이가 적극적으로 상황을 그리게 만드는 김훈의 문체에 매력을 느끼게 된다.


아쉬운 점은 익숙하지 않은 한자가 많이 사용되어 자주 사전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초반에는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찾아보고 기록하며 읽었다. 그러다 보니 문장은 이해되었지만 이야기의 흐름이 끊겨 집중력이 떨어졌다. 중반 이후에는 모르는 단어가 나와도 문맥에 따라 대략 이해하고 넘어갔다. 독자 대부분이 궁금해할 만한 단어 뜻을 페이지 하단에 배치한다면 보다 수월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순신의 내면과 심리, 인간적인 면모를 이해하고 싶다면, 김훈의 문체가 가진 매력이 궁금하다면 <칼의 노래>를 추천한다.

작가의 이전글 가르치려 말고 잘 들어주는 게 중요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