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가을이었을 것이다. E랑 커피를 마시는데 기절할 것 같은 공포가 엄습했다. 나는 눈을 꼭 감고 E의 손을 잡았다. 무슨 일이 발생해도 E가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나는 나를 침착하게 다독거렸다. 많이 피곤해서 그럴 거야.
늦은 밤, 집에 돌아와 자려고 누웠다. 그런데 갑자기 심장 박동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당장 멈춰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요동쳤다. 내일 아침 눈을 무사히 뜰 수 있을까?
나는 내과에 갔다. 의사가 엑스레이를 찍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정신과에 가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나는 세상이 멸망하고 혼자 살아남은 사람마냥 서럽게 울었다.
회사만으로도 버거웠는데 나는 매일 엄마를 위로해야 됐다. 오빠가 집을 거하게 말아 처먹고 뛰쳐 나갔기 때문이다. 얼마 안 되는 월급으로 오빠가 싸지른 똥을 치워야 했다. 에이 드런 새끼. 나는 내가 멀쩡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 약을 처방받았고 약을 복용했다. 하루 종일 무기력했고 잠이 쏟아졌다. 가장 힘이 들었던 것은 불현듯 찾아 온 폐소공포였다. 버스를 타면 불안했고, 미칠 것 같았다. 그래서 눈을 감으면 어둠에 대한 두려움때문에 질식할 것 같았다. 답답한 나야, 도대체 어쩌란 말이냐.
눈물이 그냥 흘러 나왔다. E한테 괴로움을 털어 놓았다. E는 당장 만나자고, 자기가 나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거리를 눈물범벅으로 쏘다니는 나를 보고서는 한마디했다. "야, 병원 가!" 나는 E에게 상처를 받고 아무에게도 내 우울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이 썩을 뇬 E 같으니라고.
나는 밤마다 싸이월드를 뒤적거리며 울었고 마포대교를 갈까말까 수십 번 고민했다. 내가 죽으면 슬퍼할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내가 나를 붙잡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 수록 내가 힘든데 가족이 무슨 상관이지, 내가 나를 이기려 들었다. 나는 세상에서 내가 가장 미웠다.
억지로 참아서 나름 괜찮아진 줄 알았다. 그런데 다시 왼쪽 가슴 통증이 시작됐다. 누가 내 심장을 꽉 쥐었다 놓기를 반복하는 듯한 느낌. 나는 자리에 꼼짝없이 멈춰서서 상체를 숙이고 가슴 통증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지난 번과 증상이 달라서 내과를 다시 찾았다. 의사는 내 이야기를 듣자마자 다시 정신과 진료를 권유했다. "진료비는 안 내셔도 돼요."
나는 그 길로 정신과에 갔다. 의사가 대뜸 나를 혼냈다. "꾸준히 다니지 않으면 차도가 없어요. 그리고 사실 첫 진료 때 차트에 공황장애랑 우울증 같이 썼어요." 그래, 내가 힘들긴 힘들었구나. 내가 나를 몰랐네. 하지만 정신과를 꾸준히 다니지는 않았다. 의사한테 내 상황을 솔직하게 털어 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거짓말까지 하고 있었다. 약을 먹을 수도 없었다. 틈만 나면 책상에 엎드려야 할 정도로 붕뜨고 멍하고 졸린 상태였기 때문이다. 의사가 강압적인 것도 싫고.
나는 꽤 오랜 기간 나를 싸우면서 버텼다. 점점 나아졌고 정상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내 안의 우울을 다 걷어낸 줄만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