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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치명 Apr 06. 2021

성스럽지 못한

다이어트

 나는 몇 년 전 내 인생의 마지막 다이어트를 했다. 사랑에 빠진 줄 알았던 남자에게 예뻐 보이고 싶었다. 약 6개월에 걸쳐 17킬로그램을 감량했다.


 점심에 삼각 김밥 하나와 카페 라테, 저녁에 방울토마토를 먹었다. 식사 약속이 있어도 밥 반 공기를 절대 넘기지 않았다. 물론 틈이 나는 대로 계속 걸었다. 극한의 다이어트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몸무게가 줄지 않아서였다. 신경이 엄청 예민한 상태라 겨우 밤을 보내고 몸무게를 쟀는데 며칠 내내 똑같은 숫자였다. 나는 체중계를 박살내고 싶었다.  


 어쨌든 다이어트를 성공하고 아무 옷이나 골라 입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의자에 앉으면 엉덩이가 너무 아팠다. 추위를 타기 시작해서 한여름에도 가방에 담요를 넣어 다녔다. 물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일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러다 그 남자때문에 식욕을 잃었다. 음식 섭취가 안 되자 살이 쭉쭉 빠졌다. 우울했던 시기가 지나고 분노의 시기가 닥치자 폭식이 시작됐다. 종일 음식 생각을 했고 참 다양하게도 음식을 조합해서 입으로 꾸역꾸역 처넣었다. 당연히 배가 고플 리가 없었다. 그래도  밥솥을 꺼내 밥을 퍼 먹었다. 다행히 섭식 장애는 아니었지만 인생 최고 몸무게가 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폭식을 하면서 나는 나에게 악담을 퍼부었다. 그래, 더 먹어라, 더 먹어. 이 돼지야. 살이 어디까지 찌나 보자. 언니가 칸트를 이야기하면서 그만 먹으라고 충고한 적이 있었다. 나는 지뢀, 먹는데 칸트 씩이나?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칸트의 말처럼 나는 식욕의 노예였다.


 나는 통통과 뚱뚱의 사이를 오갔다. 억울한 점도 있는 것이 골격이 있는 편이라 사람들은 내 몸무게보다 10킬로그램을 더해서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다 L의 다이어트 성공 소식을 들었다. 한약 다이어트를 했다는데 L이 부쩍 날씬해진 것이다. 나를 비롯한 L의 친구들은 너도나도 다이어트 한약을 주문했다. 진맥따위는 필요 없고, 짧은 통화 후 입금, 배송이 이루어지는 시스템이었다. 3일 동안 방울토마토와 오이만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식사 때마다 밥 세 숟가락 씩 허용되었다. 나는 점심에는 아기 숟가락으로 밥 세 번, 저녁에는 건포도와 검은 콩을 먹었다. 한약 다이어트를 하면서도 줄곧 생각했다. 한약 도움 없어도 이렇게 먹으면 살이 그냥 빠지겠는데? 그런데 친한 약사 언니가 나를 말렸다. "야, 조심해. 마황 잔뜩 들어있을 거야." 나쁜 건가. 어차피 다이어트 한약을 계속 살 수도 없었다. 가격이 부담되어서.  그런데 한의원은 상호를 바꿔 가면서 꾸준히 기존 회원 할인 행사 메시지를 보냈다.


 L은 우리들 중에서 가장 오래 다이어트 한약을 복용했다. 결국 오백 원짜리 동전 크기만한 탈모가 생겼다. 그리고 다이어트 한약을 더이상 먹지 않았다.


 나는 대학생이 되었는데 살을 빼지 못한다는 엄마의 비난을 자주 들었다. 딸이 예뻐 보였으면 해서 그랬겠지만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했다. 나는 홧김에 소리쳤다. "기아처럼 뼈만 앙상했으면 좋겠냐고!" 엄마의 대답은 단호했다. "어!"


 나는 명동에 있는 의원을 찾았다. 지방 분해 주사를 맞고 식욕억제제를 처방받았다. 그런데 식욕억제제를 먹으니 속이 너무 울렁거렸다. 대신 효과가 더 좋다는 카복시 패키지를 끊었는다. 카복시는 액화 가스를 피하지방층에 주입하는 것인데 피부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뒤따랐다. 내가 누워 있던 침대 시트는 항상 축축하게 젖었다. 온몸에서 땀이 났기 때문이다. 나는 카복시 패키지를 환불받았다.


 닭가슴살을 먹으면서 매일 줄넘기를 천 개씩 했을 때 적정 몸무게를 가장 잘 유지했다. 방법은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 실천이 어렵다. 그러니까 나는 나의 가짜 식욕에 휘둘리는 것이다.


  아, 내가 다이어트에 회의를 느끼게 된 일이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종종 말했다. "다이어트만 하면 괜찮은 외모인데." 고뤠? 그런데 개고생을 해서 다이어트 후에 어떤 평가를들었냐면  말이다. "노인 같다. 그 전이 훨씬 나아." 이런 쒸바.


 지금은 생긴 대로 살자, 주의자가 되었다. 대신 건강한 돼지로. 나는 가끔 등산을 하는데 북한산 날다람쥐 돼지가 되는 꿈을 꾸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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