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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치명 Apr 10. 2021

성스럽지 못한

 서른두 살. 나는 모교 대학원 박사 과정에 진학했다. 사실 일이 너무 지긋지긋해서 도망친 것이다. 공부에 대한 뜻도 없었고 등록금을 낼 돈도 없었다.


 대학원생 중 박사 과정은 나 혼자였다. 나이도 가장 많았다. 게다가 쭈뼛거리는 성격까지. 반면 석사 과정 중인 후배들은 학부 시절부터 꽤 친한 사이였다.


 나는 은근한 따돌림을 당하기 시작했다. 조교를 하고 있던 후배에게 Q교수 빙모상에 같이 가자고 이야기를 했다. 후배는 네, 언니! 하고 대답했다.


 일정 조정을 하려고 전화를 했는데 후배의 말이 가관이었다. "어머, 언니 저희들 이미 다녀 왔는데." 그런데 말투가 너무 얄미웠다. 얘야, 혹시 잊어버린 거냐, 아니면 작정하고 나를   먹이는 거냐.


 따돌림의 기미는 줄곧 보였는데 나는 호갱이기도 했다. 수업을 마치고 학교 식당에 가면 후배들이 팔짱을 끼고 나한테 메뉴를 통보했다. 그리고 자리에 가서 수다를 떨었다. 주문과 계산은 내 몫이었다.


 그러니까 얘네가 나를 싫어하는 것은 알겠는데 너무 사소한 것 투성이였다. 동화를 쓰던 K가 특히 나를 경계했다. K가 주도자였으니. K가 강의실 문 옆에 있는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고 있었다. 나는 G랑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K가  G를 불렀다. "무슨 음료수 뽑아야 할 지 모르겠어. 나와!" 야야, 바로 옆에 있는데 뭘 그렇게 크게 소리질러. 그리고 나이도 서른인데 음료수 뽑는데 상의씩이나 해야 하니.


 나는 K가 엄청 따랐던 T강사한테 찍혔다, 영문도 모른 채. 나중에 알고 보니 강사가 K한테 일을 시켰던 모양이었다. 나도 마땅히 했어야 하는 일인데 바로 거절한 싸가지 없는 학생 따위가 되어 있었다. 나한테 전달되어야 하는 사항들이 중간에서 차단되고 있었던 것이다.


 싸워서 사이가 안 좋은 것이라면 이해라도 하겠는데 왜 그러는 걸까. 내가 그냥 싫은 건가. 스타벅스 커피 사줄 때는 잘만 처먹더라.


  유일하게 나에게 마음을 열었던 D가 내 편이 되어줬다. D는 대학원생들 중 막내였다. "박사랑 가깝게 지내지 말라고 했어요. 두고 보니까 걔들이 너무 못 된 거 있죠." D는 K 등등에게 잘못을 따지고 나를 두둔했다. D도 그들에게서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학과 Q교수와 T강사 사이도 틀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내가 이간질을 해서 그런 것처럼. 나는 Q교수가 동화 창작 수업 성적을 묻길래 비뿔이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Q교수는 T강사에게 불 같이 화를 냈다. 사실 석사만 해도 웬만해서는 비뿔 이하의 성적을 주지 않는다. 대부분 에이뿔이거나 에이제로. Q교수는 지각 한번 하지 않았고 리포트를 모두 제출한 내가 비뿔을 받은 것은 T강사의 개인적 감정때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도 뭐, T강사가 나를 그렇게 판단했으면 어쩔 수 없지.


 나는 늦은 밤 S교수한테 전화를 받았다. T강사가 S 교수를 찾아가 억울함을 토로한 모양이었다. " 너는 Q교수한테 성적을 그대로 말하면 어떻게 하냐. 좋게 좋게 해야지. 한심해." 아니, 그럼 비뿔을 에이뿔이라고 뻥치냐. 나는 질문에 사실대로 이야기한 것뿐이다. 그리고 비뿔이요, 외에 다른 말은 덧붙이지도 않았다. 나는 왜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고 혼나는 거지?


 그런데 내가 모르는, 나와 관련된 일들이 생각보다 너무 많았다. 나는 이 상황이 짜증났다. 술 취한 척 연기하면서 내 엉덩이를 툭툭 건드리는 Q교수도 싫었고.


 다음 학기 등록을 안했더니 대학원 행정실에서 전화가 왔다. "휴학하시나요?" 나는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 "아뇨. 제적시켜 주세요. 그 학교 다시는 안 가요."


 나는 대학원 학자금 천만 원을 아직도 갚는 중이다. SBR! 친한 언니들한테 아주 사소해서, 헛웃음만 나오는 이 따돌림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언니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가 그럴 성격이 아닌데." 따돌림은 나와는 전혀 무관한, 나를 대하는 그들만의 방식이라는 것을 나이가 들어서야 알게 되었다.


 나도 저 별 거 아닌 듯한 1년의 시간이 진절머리 나는데 집요하고도 폭력적인 따돌림을 당하는 사람들은 오죽하랴. 따돌림은 멀쩡한 사람을 미치게 만들 수도 있다.


 물론 누군가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지, 싫어할 수도 있고. 그럼 관계의 거리만 조절하면 된다.  변태적인 생각따위 하지말고, 유치한 행동따위 하지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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