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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치명 Apr 10. 2021

성스럽지 못한

에필로그

 독립출판을 하는 선배가 제안을 한 적이 있어요. 에세이를 써보지 않겠냐고요. 그래서 계약서를 썼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유롭게 하라고 했어요. 나는 원고지 400매 가까이 글을 썼습니다.


 선배는 글 안에서 우울하고 슬픈 나와 눈이 마주쳤다면서 몹시 당황했어요. 내가 마냥 밝고 재미있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어떤 배신감을 느꼈나봐요. 사실 뭐, 나는 조금 웃기는 사람이 맞기는 합니다만.


 선배가 내 글을 읽은 독자들의 반응을 생각해 봤냐고 질문을 했어요. 에세이는 교훈 하나 정도는 찾을 수 있는, 따
뜻해야 하는 글이 아니냐면서. 결국 출간은 엎어졌고 나의 시간들은 버려졌습니다.


 나는 오기가 생겼어요. 나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을 누군가가, 분명 나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일거라고 쓸데없는 확신을 가졌죠. 그래서 성스럽지 못한 글에, 성스럽지 못한 나를 실컷 담아 냈어요. 혹시라도 내 글을 읽고 불편함을 느꼈다면 미안해요.


 나는 이미 창문 밖으로 날아가 버릴 수도 있을 만큼 너무나 가벼워졌어요 . 하지만 지금은 두 발목을 꼭 쥐고 앉아서 버틸 거예. 아직 해보지 못한 즐거운 일들이  많이 남아 있거든요.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무척이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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