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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an Jun 02. 2020

헝가리의 악몽

#30

차가 흔들리고 신발이 벗겨지면서 낯선 사람이 말까지 걸고 지나가니 온통 정신이 없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무엇이 원인이지 파악하기가 힘들었지만 일단은 차가 흔들려서 나온거니 반대쪽 운전석으로 돌아가 보았다. 앞바퀴에는 아무런 걸쇠나 자물쇠가 걸려 있지 않았으니 일단 다행이었다. 앞문도 대충 보기에 억지로 열려고 찌그러뜨리거나 파손시킨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차는 왜 흔들리고 덜컹 거리는 소리가 났는지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상태였지만 조금 전 날 지나쳐간 사람이 우리 차의 운전석 문을 열려고 시도한 것 같다는 확신이 들어 불안해진 우리는 그곳을 바로 떠나기로 했다.

밴을 정박 모드에서 이동 모드로 바꾸는 데에는 꽤나 많은 일을 해야 한다. 먼저 부엌에 있는 냄비, 그릇 그리고 양념통 같은 것들이 떨어지지 않게 고정을 해야 하고 냄비에 먹고 남은 음식이 있다면 바닥에 놓아야 쏟아지지 않는다. IKEA에서 산 더블침대는 접어서 싱글 침대로 만든 뒤에 남는 자리 한 켠에 운전석과 보조석에 놔두었던 우리의 큰 두 개의 캐리어를 옮겨 놔야 싱글 침대가 운행 중에 펼쳐지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iMac 컴퓨터와 각종 전자기기는 떨어지거나 넘어지지 않도록 침대에 곱게 엎어두면 출발할 준비가 끝난다.


우린 익숙하고 또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바로 이동 모드로 바꾼 뒤 주차장을 출발했다. 이미 해가 진 늦은 시간이었지만 1분 1초도 더는 그곳에 있고 싶지 않았고 부다페스트는 그리 큰 도시가 아니어서인지 얼마 가지 않아 금세 도심을 벗어나 텅 빈 국도로 들어섰다. 지난번 부다페스트 외곽의 정박지에 차나 사람이 거의 없었기에 우린 다시 부다페스트의 북쪽 외곽 어딘가에서 하룻밤을 머물기로 했다. 하지만 정신없이 그리고 계획 없이 출발하느라 정박지를 찾아두질 않아서 조금 한적한 곳이 나오면 그곳에 밴을 세우고 찾아보기로 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텅 빈 도로 맞은편으로 경찰차가 지나갔다. 늦은 시간이니 이런 한적하고 자그마한 마을을 당연히 순찰하는 거겠지 싶었지만 사이드 미러 속 저 멀리서 경찰차는 얼마 가지 않아 차를 돌려 우리 뒤에 바짝 따라붙어 차를 세우라고 헤드라이트를 번쩍이고 있었다. 공터까지 가서 차를 세우니 나이가 제법 있어 보이는 남자 경찰 한 명과 젊은 여자 경찰 한 명이 경찰차에서 내려 운전석 쪽으로 다가왔다. 누가 봐도 캠퍼밴인걸 알 수 있을 만큼 이곳저곳에 창문이 뚫려 있지만 워낙에 밴이 낡고 허름하니 제대로 보지 않으면 의심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이 많은 남자 경찰은 여권과 자동차 등록증으로 요구했다. 영국의 자동차 등록증은 한국과 다르게 꽤나 간단하다. 집에서도 싸구려 프린터로 인쇄할 수 있을 것 같은 디자인의 종이 위에 쥐똥만 한 크기로 자동차 번호와 소유자의 이름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경찰들은 가끔 이게 진짜냐고 물어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경찰들은 차로 돌아가 우리 여권의 이것저것을 검사하는 듯하더니 이내 돌아와서는 자동차 관련 서류들을 더 내놓으라고 했다. 자동차와 관련된 서류는 그것뿐이라고 답을 했지만 다짜고짜 알 수 없는 등록증을 보여달라며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이 늙은 경찰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에게서 돈을 받아내려고 할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다른 서류는 자동차 검사증이나 수리내역 영수증 따위 밖에 없었는데 그걸 받아 든 경찰은 차량검사 날짜가 지났다는 걸 걸고넘어졌다. 드디어 꼬투리를 잡아낸 것이었다.


경찰이 지적한 차량검사는 영국에서만 해당되는 MOT라는 서류였다. 영국 내에서 차를 운행하기 위해서 필요한 차량검사의 날짜가 지나 있었는데 전혀 관련 없는 헝가리의 경찰이 그 날짜가 지났다면서 벌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건 영국에서만 검사를 받을 수 있으며 당신네 나라의 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했지만 늙은 경찰은 내 말은 듣지도 않고 무조건 아니라면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부다페스트에 올 때마다 좋은 일을 한 번도 겪지 못했는데 이번에도 별로 다르게 없다는 생각에 점점 나도 화가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남의 나라에서 경찰과 부딪혀봤자 좋을 게 없으니 벌금을 물리라고 신경질적으로 답을 던졌다. 그리고 난 지금 현금이 없으니 딱지를 끊던 카드 리더기를 가지고 오건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몇 분 뒤 여자 경찰이 경찰차에서 나와 꽤나 미안해하는 표정으로 11유로가 찍혀 있는 딱지를 건네주었고 난 낚아채 듯 받아 들고 자리를 떴다. 그리고 우린 헝가리에서 머물지 않고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당장 떠나버리기로 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국경 근처 들판 정박지

어차피 우린 며칠 뒤 오스트리아 빈에서 어느 젊은 부부의 스냅 촬영을 해주기로 되어 있었기에 내친김에 오스트리아로 가기로 했다. 혜아는 빈의 크리스마스 마켓이 유명하다며 오히려 더 신이 났고 나도 크리스마스 마켓을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으니 이왕 이렇게 된 거 미리 빈으로 가서 구경도 하고 미리 촬영지도 가서 예쁜 곳을 찾아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았다. 헝가리와 오스트리아의 국경을 통과하자마자 호숫가 근처 빈 터에 밴을 세우고 하루를 잔 뒤 다음 날 바로 빈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정박지를 찾기 위해 구석구석 다녀보니 빈은 꽤나 크고 복잡한 도시였지만 밴을 세울 만한 정박지가 없었다. 빈의 중심가에는 주차장은커녕 한적한 공원 조차도 없었다. 물론 ‘공원’은 있었지만 콘크리트로 뒤덮인 삭막한 공원이라 우리가 스며들만한 장소가 전혀 아니었다. 빈 시내를 몇 바퀴나 돌았지만 정박을 살만한 장소가 보이지 않아 우리는 다시 캠핑 앱을 이용해서 빈 시내에서 20 정도 떨어진 외곽의 큰 공원의 공터 한 켠에 늦은 밤이 되어서야 자리를 잡았다.

오스트리아 빈 외곽의 공원 정박지

스산해 보였던 정박지는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사람들이 말을 타고 산책을 하는 곳이었다. 넓은 들판과 나무들이 고즈넉해 보였고 말을 탄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아 사랑이와 산책도 하고 운동을 하기에 안성맞춤인 듯했다. 생각보다 일찍 오스트리아에 들어왔기 때문에 우린 나름 시간 여유가 많아졌고 계란과 소시지로 아침을 풍족하고 여유롭게 즐긴 뒤에 밴을 세워둔 곳 옆 공원에서 처음으로 사랑이에게 목줄을 채우지 않고 신나게 뛰어다녔다. 제대로 된 주차장이나 아무도 없는 자연 속이 아니라서 조금은 눈치가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꽤나 평화로운 곳이어서 우린 이곳을 떠나기 싫어졌다. 그래서 최대한 머물면서 빈에서 하기로 했던 일들을 하기로 했다.

가장 먼저 하기로 한건 빈에서 살고 있는 지인을 만나는 일이었다. 바빠서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이날 오후 2시밖에 없다고 하는 바람에 우린 사랑이와의 놀이를 끝내자마자 부랴부랴 빈 시내로 들어갈 준비를 했다. 혜아와 난 오랜만에 한국 사람을 만나는 거였기 때문에 외모에도 신경을 많이 쓰고 사랑이도 목줄 대신 몸줄을 매서 장시간을 걸어도 덜 피곤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서 밴을 나섰다.

빈으로 가는 버스 타러 가는 길

택시를  생각이었다. 우버(Uber) 이용하면  세계 어디에서든지 스마트폰만으로  한마디 하지 않고 편하게 목적지까지   있으니 말이다. 약속시간을 여유롭게 앞두고 택시가 도착했다. 그런데 차에 오르려고 하자 아마도   없는 말로 소리를 외쳤는데 그중에 영어인  알아들을  있는 말이 No dog 였다. 개는 택시에   없다며 짜증 나는 표정으로 우릴 두고 떠났다. 심지어   곳까지 우릴 모시러 와서인지 5유로 정도의 돈까지 부과되었다. 우린 잠시 멍하니 서있었다. 크로아티아에서 동물병원을  때에 아무런 문제 없이 사랑이를 들쳐 앉고 우버를 이용해 갔었는데 갑자기 안된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일단은 약속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급하게 대중교통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구글맵으로 보기에 약속 장소까지 가는 버스는 그리 멀지 있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공원을 가로질러 버스 정류장까지 열심히 걸었다. 정말 열심히 20분 가까이 걸어서야 가뿐하게 지하철 역 앞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스트리아는 아주 작은 강아지를 들쳐 앉고 타는 게 아니면 개도 티켓을 끊고 버스에 같이 타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린 지인도 만나고 빈도 여행하면 티켓 값이 절대 아깝지 않다고 애써 세뇌를 해가며 3명의 티켓을 샀다.

이미 생각보다 큰 공원을 건너느라 약속시간에서 30분 정도 늦은 상태여서 겨우겨우 지인에게 양해를 구하며 한참을 기다린 끝에야 우리가 기다리던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만 타면 약속 장소까지는 얼마 안 걸릴 터였다. 버스의 뒷문으로 올라 혜아와 사랑이를 자리에 앉혔는데 저 멀리 앞에서 운전기사 큰 소리로 나를 부르는 듯했다. 따로 티켓 검사를 하지 않는 오스트리아여서 사랑이 티켓을 샀는지 확인을 하려나보다 하고 운전기사 옆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버스기사가 "개 입마개?"라며 질문인지 요청인지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시커먼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운전기사는 표정이 보이진 않았지만 뭔가 기분이 상한 듯 보였다. 난 질문이겠지 싶어 마스크가 없다고 하자 아무런 자세한 설명 없이 내리라고 했다. 물론 영어가 서툴어서이겠지만 아주 무례한 말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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