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난다는 것

by 이재현

유시화 작가의 인도 여행 이야기에서 읽었던 이야기입니다.


작가는 인도 친구와 공연을 함께 가기로 하였습니다. 그 공연은 작가가 매우 보고 싶었던 공연이었습니다. 만나서 함께 가기로 했던 장소에 나갔으나 시간이 지나도 그 친구는 나타나질 않았습니다. 공연이 열리는 장소를 모르는 작가는 더 기다리다가는 공연을 영영 볼 수가 없을 것 같아 무작정 택시를 탔고 우여곡절 끝에 공연장소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기가 막히는 일은 그 인도 친구가 공연장 맨 앞자리에 않아 공연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작가는 너무 화가 났습니다. 그 친구에게로 가서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고 따졌습니다. 더 황당한 것은 그 친구가 작가를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며 하는 말이 “ 왜 당신이 화를 내는 겁니까? 약속을 못 지킨 사람은 당신이 아니고 나이며, 화를 낸다면 잘못한 내가 화가 나야지 왜 당신이 화를 내는 겁니까?” 이렇게 이야길 하더란 것입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상황입니다.


나는 당시 이 글을 읽으며 인도 친구의 말이 수긍은 가면서도 설명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 말이 이해가 되고 한번 음미해 볼만한 이야기라 생각합니다. 우리 문화에서는 작가가 화를 내는 일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나는 작가가 화가 난 이유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상황에서 화가 난다면 두 가지 이유가 가능합니다. 하나는 자신이 무시당했다는 생각이고 또 하나는 자신이 고생했다는 사실일 겁니다. 나는 인도 친구가 어떤 이유로 약속 장소에 나가지 않고 공연장으로 갔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작가와의 약속을 잊었던지, 자기도 어쩌다 보니 시간이 없었고, 또 자기가 그곳에 안 가더라도 혼자 오겠지 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인도 친구가 작가를 무시했다고 판단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작가 스스로가 그 친구로부터 무시를 당했다고 판단한 것이겠지요. 그 친구의 안내를 받으면 좀 편하게 올 수 있었는데, 그리하지 못하고 이곳까지 오느라 고생을 많이 해서 화가 난 것입니다.


나는 일상에서 이러저러한 일들로 인해 화를 냅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화가 나는 이유는 대부분 상대의 말이나 행동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말이나 행동에 대해 내가 내린 판단 때문이며, 그 판단은 거의 자의적 해석에 의한 것으로 항상 같은 패턴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왜 항상 같은 반응을 되풀이하는가? 이것이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며, 내가 치료해야 할 내 상처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내가 어떤 상황에 반복해서 화가 날 때, 나에게 치료해야 할 분명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면 그 상황은 분명 나에게 고마운 일일 것입니다.


오늘 아침 강남에 일이 있어 아내보다 먼저 집을 나섰습니다. 아내로부터 점심을 같이 먹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일을 마치고 아내 회사 근처로 가서 함께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현관 앞 주차장에 우리 차가 없음을 발견하였습니다. 아침에 차를 가지고 출근했나? 확인차 전화를 걸었습니다.


“여보, 오늘 아침에 차 가지고 출근했어?”

“아니, 걸어왔는데” (집에서 회사까지는 아내 걸음으로 20분 정도 걸립니다)

“집에 차가 안 보이는데”

“......... 어머, 어제 저녁에 차를 회사에 두고 집에 걸어갔나 봐”

(주차비 엄청 나왔겠네 라는 생각에 화가 날 뻔)

“차 집에다 갔다 놓고 가세요~~”

“아침에 출근하면서 집에다 차키 놓고 왔는데”

(그럼 내가 키를 가지고 아내 회사로 다시 가서 차를 가지고 와야 된다는 생각에 또 화가 날 뻔)

“여보, 미안한데 당신이 와서 차 가지고 가면 안 될까?”


화 내봐야 나만 손해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스리며 버스를 타고 가서 차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주차비 영수증을 사진 찍어 보냄으로써 속이나 쓰리게 할까 잠시 생각했으나, 엊저녁 차가 회사에 있다는 것을 잊은 채 집에 걸어서 왔던 아내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습니다.


“주차비 얼마 나왔어?”

“이만 원”

“얼마 안 나왔네. 어제 저녁 6시부터 오늘 아침 9시까지는 주차비 안 받아서 그래~”

(속으로 “그래 잘 났다, 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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