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받을 수 있는 용기

by 이재현
아내는 늘 좋은 며느리가 되어야 하는가?


아내와 시댁 사이에 갈등이 시작되었습니다. 4년을 우리와 함께 살았던 여동생(아내의 시누이)을 내보내 혼자 살게 한 것이 원인입니다.


“여보, 막내 아가씨 울산에 있는 대학에 원서 내보라고 하면 어떨까?” 결혼 일 년이 되던 해 아내가 나에게 한 제안입니다. 아내의 뜻밖의 제안이 나는 너무 고마웠습니다. 시골 고향에서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막내 여동생이 자신의 진로를 찾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나의 여동생은 우리와 함께 지내게 되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였고, 울산에서 취업을 하였으며, 그렇게 4년을 우리와 한 집에서 살았습니다. 물론 그동안의 동생의 학비, 용돈, 생활비는 모두 우리가 부담하였으며, 또 동생이 취업하는 과정에도 아내가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첫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아내가 교직에 있었기에 아이를 돌봐주러 장모님이 우리 집에 오셨습니다. 한 공간에 함께하기가 좀 어려운 관계의 조합이었나 봅니다. 예전에는 없었던 이런저런 문제들이 하나씩 생겨나기 시작하였고, 급기야는 어떤 해결책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내린 최선은 방안은 여동생이 독립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때까지 아내는 시부모에게 참 좋은 며느리였습니다.


동생이 이젠 성인이고, 직장도 있으니, 독립에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에겐 어린 막내가 여자로서 혼자 살아간다는 것이 허락되지 않으셨나 봅니다. 그것도 큰오빠가 바로 옆에 있는데. 이때부터 갈등은 시작되었고, 시간이 갈수록 아내와 부모님 관계의 틈새는 벌어져 갔습니다. 중간에 있는 나는 양쪽으로부터의 불평과 비난을 감당하여야만 했으며,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아내는 시부모에게 더이상 좋은 며느리가 아니었습니다.


탈출구가 필요했습니다. 질문을 던졌습니다. “아내는 항상 좋은 며느리여야만 하는가? 좋은 새언니, 좋은 형수여야 하는가? 또 내 부모는 항상 좋은 시부모여야 하고, 형제들은 좋은 시누이 좋은 시동생이어야 하는가? 왜, 누굴 위해서 그래야 하지?”


나는 대답했습니다. “아내와 내 부모의 관계는 그들 간의 문제다. 아내에겐 시부모와의 문제고, 내 부모님에겐 며느리와의 문제다. 나와 아내와의 문제가 아니며, 나와 내 부모와의 문제가 아닌데, 왜 내가 그들에게 좋은 관계가 되라고 강요해야 하는가. 사람이 살다 보면 서로 사이가 좋을 수도, 안 좋을 수도 있다. 억지 화해를 강요할 수 없고, 서로의 관계가 불편함이 싫으면 본인들이 해결하면 된다.”


나는 버리기로 하였습니다. 아내가 늘 좋은 며느리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을, 내 부모가 항상 좋은 시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을. 그리고 인정하기로 하였습니다. 아내가 내 부모를 싫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내 부모가 아내를 싫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또 받아들이기로 하였습니다. 그 이유로 아내가 나를 미워하고, 또 부모님과 형제들이 나를 미워하는 것 까지도.


그러니 마음이 많이 홀가분해졌습니다. 아내가 시부모에 대한 불평을 합니다. 아내의 입장이 되어 맞장구를 칩니다. 아내가 시댁에 안 가겠노라고 협박합니다. 그럼 그러라고 합니다. 집에 가서 내가 적당히 둘러댈 테니 걱정 말고 집에서 푹 쉬라고 말해줍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고도 아내가 명절에 시댁에 안 간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 후로 아내는 내게 시댁 욕을 아주 마음 편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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