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에 써놓은 글입니다.
나는 토요일 오전에 성당에서 사역을 합니다. 미사가 끝난 후 한 시간 정도 성당 내부를 청소하며, 내가 주로 하는 일은 성당 복도를 물걸레로 닦는 일입니다.
<마르띠노>라고 부르는 팀에는 나를 포함해 두 명의 형제와 여섯의 자매님이 계십니다. 모두 연배가 나와 비슷하거나 높으신 분들입니다. 60대 후반의 한 자매님은 이 사역을 7년이나 하셨다는데, 양손에 두 자루의 걸래를 들고 마루를 미는 경쾌한 동작은 한 편의 예술입니다.
우리는 청소를 마치고 삼십 분 정도 간단한 다과와 함께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며, 가끔은 기분 좋은 일이 있는 분이 점심을 사기도 합니다.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가끔씩 빠지기도 하는데, 그다음 주에 나가면 내가 미안해할까 봐 건네는 배려에 고마움을 느낍니다. 두 주를 못 나갔는데 그 사이에 지리산 흑돼지고기를 공동으로 구매하였답니다. 내가 아쉬워하자 한 자매님이 아내의 전화번호를 알려 달라 하네요. 그날 저녁 아내는 그분 댁에서 얼마간의 고기와 다른 몇 가지 반찬을 얻어 왔습니다. 나는 여기서 함께하는 분들의 순수함과 따뜻함을 느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지난해 서울로 오면서 다시 성당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시간적으로 여유도 있기에 봉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성당 사무실에 가서 나의 뜻과 함께 간단히 프로필을 소개하였습니다. 며칠 후 지역장에게서 연락이 왔는데 일주일에 한 번 청소 사역을 해 보라네요. 좀 당황하였습니다. 강의 경력이 있었기에 은근 교육 분야에서의 활동을 기대했었는데. 일주일간의 장고(?) 후 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돈 주고 운동도 하는데 청소하면 최소한 운동은 되겠지라는 심정으로.
그동안 머리로만 살아온 나에게 몸으로 하는 일은 힘이 들었습니다. 사람이 왕래하는 복도를 청소하는 일이기에 더 함이 들었습니다. 일에 따라 가치의 차이가 있는가? 내가 왜 이 일을 하려 하는가? 조금씩 익숙해져 갔고, 조금씩 뿌듯함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일,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 나는 지금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집안일을 앞으로 내가 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아마 이즈음일 것입니다.
지난주에는 장모님께 다녀왔습니다. 유리창 청소부터 시작하였으며. 커튼도 빨고, 다용도실을 포함하여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를 하였습니다. 돌아오는 길이 가벼웠습니다. 아내가 옆에서 흐뭇해하는 모습을 봅니다.
내 친구 이야기입니다. 그는 나의 고교 동창입니다. 그는 허드렛일 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마치 좋아서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함께 놀러 가면 식사 준비, 설거지 등을 혼자 도맡아서 다 합니다. 나는 그를 은퇴 후 동창 모임에서 처음 보았는데, 혼자 일을 하는 그를 보며 오늘 식사 준비를 위해 고용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우리 친구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친구들은 모두 그를 좋아합니다. 나도 그를 좋아합니다. 사람들은 머리나 말로 하는 일을 하는 사람보다 몸으로 일을 하는 사람을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아내가 아직도 나를 좋아하는 것은 집안일을 내가 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