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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디오 May 17. 2024

네고시에이션

현재 치과를 운영하고 있는 자리는 같이 일하던 치과의 대표원장님이 골라주었다.

부동산 사장님하고 자리를 보러 다닐 때는 긴가민가한 느낌만 가득했는데,

대표원장님이 짚어준 자리는 바로 Feel~이 왔다.


보통 자리가 마음에 들면 거기에 꽂혀서 다른 조언들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지 말고 먼저 개원한 사람들에게 자리를 보여주며 끝까지 살펴봐야 한다.

또한 계약금을 입금하고 난 후라도 개원 자리의 문제점들이 발견된다면 계약금을 포기하고 더 좋은 자리로 찾아가는 것이 맞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가까운 곳에 개원한 사람에게는 조언을 구하지 말자.

안타깝지만 우리는 모두 경쟁자이다.

아주 멀리 있어서 환자층이 전혀 겹치지 않는 곳에 개원한 원장님에게만 진실된 조언을 들을 수 있다.


"어, 거기 코너에 xx건물 2층이나 3층에 누가 계약한 사람 있어요?"



다행히 아직 계약한 사람이 없었다.

속으로 기뻤지만 그 이유는 뻔한 것이기 때문에 걱정이 되었다.

아마 임차료가 매우 높을 듯~


부동산 사장님은 예상대로 매우 높은 보증금과 매우 높은 임차료를 알려주었다.

"아오~ 치과 계약하면 건물주 좋은 일만 시켜준다더니~!"

"재주는 치과의사가 부리고 돈은 건물주가 가져간다더니~!"

나는 너무나도 높은 임차료에 이만 다른 자리를 알아볼까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


그러나 네고(임차료 협상)가 되지 않겠나 하는 마음으로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깎을 수가 있을까...


우선은 거기 건물주가 누구이며 건물은 총 몇 층이고 완공 예정 날짜와 주차 가능 대수 및 엘리베이터 여부 등을 물어봤다. 그리고 해당 건물 2층과 3층의 도면을 보내달라고 했다.

그리고 해당 건물의 등기부등본을 열람해서 건물주가 건물을 짓기 위해 얼마의 대출을 받았는지 확인했다.


여기서부터는 예시입니다.




상가는 1층이 가장 비싸고, 위로 갈수록 가격이 낮아지는데 보통 3층 이상부터는 거의 같다.

월세는 잘 보이는 순서를 반영한 것이고 그 상가의 가치를 나타낸다.


건물주는 해당 건물을 짓기 위해 12억을 대출받았다. 그러면 대략 이자를 3%로 계산했을 때 매월 300만 원의 이자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해당 건물은 분양을 하지 않아서, 근처에 분양하고 있는 건물의 분양가를 토대로 해당 건물의 분양가를 예상해 보았다.

예상된 분양가는 대략 평당 1400만 원.

그러면 상가가 60평이니까 1400만 원 x60평 = 8억 4천만 원.


건물주가 최초로 제시한 상가 임차료는 보증금 1억에 월세 400만 원.


만약에 건물주가 이 상가를 8억 4천만 원을 주고 샀다면 보증금 1억이 있으므로 실투자금은 7억 4천만 원이다. 수익률 4% 잡고 계산해 보면,

7억 4천만 원 x 0.04 = 2960만 원 (1년 수익)

2960만 원 / 12개월 = 월수익 대략 247만 원이 나온다.

여기에 건물 전체 12호실에서 300만 원의 이자비용이 발생되고 있으니

대략 300만 원 / 12호실 = 1호실당 25만 원의 이자비용까지 월세에 더해야 찐 4%의 수익률이 나온다.

그러면 247만 원 + 25만 원 = 272만 원이 내가 생각하는 적정 월세이다.


근처 다른 상권의 비슷한 자리 이보다 넓은 평수가 보증금 5천에 월세 400만 원으로 임차 중이었다.

그러니까 저 자리에 월세 400만 원을 다 주고 들어가는 사람은 바보이며 현재 건물주는 너무 월세를 비싸게 부르고 있다.

덕분에 아직 아무도 안 들어가고 있었지만.


보통 신도시 건물주들은 처음에 월세를 세~게 부른다.

그러나 임차가 계속 안되면 건물 지을 때 받은 대출의 이자비용 때문에 슬슬 조바심이 나고, 결국은 월세를 조금씩 내린다.

치과는 워낙 입점 경쟁이 치열해서 좋은 자리는 건물주가 월세를 스스로 내릴 때까지 기다리기에 리스크가 있다. 다른 원장님이 치고 들어갈 수가 있으니까.

그래서 월세를 깎고는 싶은데 그냥 깎자고 하면 씨알도 안 먹힐 것 같아 보증금을 올리고 월세를 내리는 방식을 제의했다.

나는 보증금을 5천만 원 올리는 대신 월세를 100만 원 내리는 것이 어떠신지 건물주님께 문의를 넣었다.

그러자 건물주는 바로 콜~! 을 외쳤다. 오 주님! 감사!


보통 건물주들은 병원 입점을 매우 원한다. 치과도 병원이니 건물주들이 매우 반긴다.

그런데 나 같은 치과의사가 한 건물주에 2명 이상이 붙었다? 이러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건물주는 당연히 더 높은 월세를 받을 수 있는 치과의사와 계약을 할 것이다.

전국에 치과의사들이 너무 많고 치과도 많고, 아.. 또 답답하다.

암튼, 다행히 저 때는 나와 같은 자리를 두고 건물주와 네고하는 다른 원장님이 없었던 듯하다.

이렇게 네고시에이션이 나쁘지 않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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