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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디오 Mar 16. 2022

사랑니 뺀 썰

누구나 가슴속에 '발치'에 대한 기억 하나쯤 있잖아요.

치과의사가 치아를 잘 빼면 환자에게 급하게 신뢰를 얻을 수 있다.

1. 뺄 때 아프지 않고

2. 빨리 빼며
3. 빼고 나서도 아프지 않은

이 3가지가 모두 이루어져야 이를 잘 뺀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치과의사에게 발치(치아를 빼는 치료)란 여간 부담스러운 진료가 아니다. 그 이유는 이를 뺀다는 것은 마취도 해야겠거니와 피가 나는 진료이기 때문에 특히 전신질환 환자를 상대할 때 신중을 기해야 해서 그렇다. 또한 신경손상에 대한 위험이 종종 있어 환자와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 수 있다.(너 고소~!)

그리고 환자의 치아 상태나 치아를 둘러싼 치조골(뼈)의 상태, 환자의 개구량(입 벌리는 정도) 등 숙련된 치과의사도 간혹 예상치 못한 상황에 빠져 곤욕을 치를 때가 있다. 그리고 오발치(다른 치아를 빼..ㅜㅜ)에 대한 두려움도 빼놓을 수 없다.


모든 치과의사에게는 저마다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발치에 대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오른쪽 사랑니를 빼기 위해 오른쪽에 마취를 해놓고 실수로 왼쪽 사랑니를 뺐는데 환자가 발치가 완료될 때까지 마취는 반대쪽에 했다고 말을 안 했다는 것이다. (for real?)


"아팠을 텐데 왜 말을 안 했어요?"

"사랑니 뺄 때 아프다고 그래서 원래 이 정도로 아픈 줄 알았어요."

"아이고 정말 대단하십니다. 옛날에 독립운동하면서 나라 구하셨을 분이에요!"

(이 이야기는 나도 정말 믿을 수가 없다.)


또 누군가는 사랑니를 뺐어야 하는데 그 옆에 사랑니가 아닌 어금니를 뺐다는 이야기. 과잉치를 빼야 했는데 그 옆의 영구치를 뺀 이야기. 유치를 1개만 뺀다고 했는데 2개를 빼서 욕먹은 이야기 등. 듣고만 있어도 등골이 오싹하고 언젠가 내 이야기가 될까 봐 소름이 돗는 그런 이야기들이다.


그리고 최근에 있었던 나의 이야기.


오후 5시 30분에 발치 예약 환자가 왔다. 왼쪽 위 사랑니였기 때문에 별 부담 없이 환자의 차트를 봤다.

(일반적으로 위 사랑니가 아래 사랑니보다 빼기가 수월합니다.)

이전 내원 때 이미 사랑니에 충치가 있어서 내가 발치를 권했고 환자분은 동의한 상태였다.

40대 중반의 여자 환자분은 늦지 않게 치과로 내원하였다.

마취를 리도카인 앰플 2개를 써서 충분히 하고 발치 동의서를 받고 발치 도구를 준비했다.

모든 것이 착착 이루어졌다.

어제 저작(씹히는)이 되던 60대 남자 환자분 윗 사랑니를 힘들게 뺀 기억이 있어서 환자분께 사전 고지가 나갔다.


"씹히던 역할을 충실히 하던 이라서 잘 안 나올 겁니다. 이 빼는데 시간이 좀 걸릴 수가 있어요"

"시간이 걸리면 얼마나 걸리죠?"

"5분 10분 정도 걸릴 것 같아요."


환자분은 그 정도 시간이라면 별것 아니라는 듯이 안심하는 눈치였다.

사랑니를 빼기 전 다시 입안을 보니 사랑니 바로 옆에 치아의 금니에 구멍이 나 있는 것이 보였다.

금니가 오래되어 닳아서 생긴 구멍이었다. 이럴 경우 그 구멍을 통해 음식물이 금니 속으로 들어갈 수 있고 그러면 치아가 썩을 수 있기 때문에 교체가 필요했다. 환자분께 이런 내용들을 설명드리고 교체를 할지 망설이는 환자분께 오늘은 사랑니만 빼고 금니 교체는 생각해 보시라고 말했다.


이제 사랑니를 빼기 위해 발치 기자(발치 도구)를 치아의 근심 치조골과 치아 사이에 정확히 밀어 넣었다.

"제가 힘 좀 줄게요."

드드득-

보통 이러고 사랑니는 바로 치조골 밖으로 나오게 된다.

그런데 이 사랑니는 꿈쩍도 안 했다. 예상대로 잘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다시 발치 겸자(뺀찌같은 발치 도구)로 바꿔서 이를 잡고 흔들었다. 또 꼼짝을 안 한다.

'아휴'

속으로 한숨을 쉰다.

다시 한번 더 발치 기자. 또다시 발치 겸자.


'1000번 흔들면 무조건 나온댔어. 믿습니다. 나는 뺄 수 있습니다.
나는 할 수 있씁니다..!'

오른팔의 모든 근육들을 풀 파워로 쓰고 얼굴 근육도 힘껏 같이 써가며 치조골을 후비고 이를 잡고 흔든다.

'여자 원장이라서 이 못 뺀다는 소리 들으면 안 돼. 그건 정말 안돼~'


그때 뭔가가 쑥 빠졌다. 사랑니였다면 좋았겠지만 그것은 안타깝게도, 아니 깜짝 놀라게도 사랑니 옆의 금니였다. 아까 내가 환자에게 열심히 교체를 설명했던 금니였다.

금니 안의 치아는 썩어있었고 그것이 나에게는 차라리 다행이었다.


"금니가 빠졌어요. 금니 안의 치아는 썩어있고요."

"......"


환자분은 입을 벌리고 있었기 때문인지, 같이 놀라서인지 아무 대답이 없었다.

이제 이도 빼야 하고 떨어진 금니도 수습을 해야 했기 때문에 나는 마음이 더 급해졌다.

힘을 막 줘버리면 이가 부러진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항상 뼈의 탄성보다 적은 힘을 주고 있었지만

딱! 소리를 내며 사랑니가 부러졌다.

하...

5분 10분은 무슨.

이제 머리가 없는 치아의 뿌리를 빼는 일은 난이도가 더 올라갔기 때문에 나는 멘붕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이걸 이제 어떨게 빼지. 나는 더 이상 못 뺄 거 같아. 난 틀렸어...'


라고 머릿속에 자막이 지나가다가 갑자기 잘라서 빼자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환자분 괜찮으세요?"

"네~"
'저는 안 괜찮아요...'

"하이스피드하고 치관 분리하는 버 갖다 줘요."

윙윙윙- 두두둑.

지금까지 많이 흔들어놨던 치아여서인지 뿌리를 쪼개고 힘을 주니 사랑니가 다행히 금방 나왔다.

뿌리가 3개였던 사랑니를 3조각을 내서 각각 뺀 것이다.

"환자분 이 잘 나왔어요. 금니 떨어진 것은 다시 붙여드릴 건데 안에 충치도 있으니까 치료를 하세요."


환자분이 금니가 빠진 치아 치료를 결정하였다.

내 오른팔은 근육들이 놀래서 떨어져 나갈 것 같지만 결국 사랑니를 뺐고 환자분도 금니를 치료하신다고 하니 결과적으로 모두 잘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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