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디오 Mar 16. 2022

우울증이 있던 그녀

아프시면 왼손을 드세요.

치과에 가끔씩 우울증 약을 먹는 환자들이 온다.

접수를 할 때 평소 본인이 먹는 약과 다니는 병원 등 전신질환에 대한 히스토리를 문의하도록 되어 있는데, 가끔씩 우울증 약이 표기되어 있는 환자들이 있다.

이런 분들은 우선 안심이다. 우울증 약을 잘 먹고 있고 자신이 우울증 약을 먹고 있음을 밝힌 환자들과는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울증을 앓고 있는대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따라서 병원에도 가지 않는 사람들은 좀 무섭다. 우울증 증상을 마구 발현하며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데도 정작 본인은 자신의 병을 인정하지 않고 본인의 아픈 상황을 남 탓으로만 돌리기 때문이다.


이 분은 40대 후반의 여성분으로 우울증 약을 한두 개 먹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를 드셨다. 그 모든 약들을 접수할 때 알려주셔서 그분의 차트가 약 이름으로 상당히 길어졌다. 많은 약들의 부작용 때문이었는지 살이 쪄 있었다. 그리고 치과 치료를 무서워한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치과의사로서 고마운 일이었다. 우선 자기가 우울증이 있어서 치료 중이라는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처음 본 나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었다. 물론 내가 자신을 치료할 치과의사이기 때문에 그랬겠지만 기본적으로 치과의사를 믿지 못했다면 얘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치과 진료를 무서워한다고 얘기했기 때문에 나는 이 분이 최대한 편안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드리고 싶었다.


환자분의 내원 이유는 왼쪽 아래 어금니의 보철물이 빠졌다는 것이었다. 아프지는 않다고 했지만 검진해 보니 보철이 빠진 자리에 음식물이 끼여서 충치가 있었다. 기존 보철물이 컸기 때문에 충치를 제거하고 다시 예전처럼 인레이(부분으로 들어가는 보철) 치료를 할까 아니면 크라운(치아를 전체적으로 감싸는 보철) 치료를 할까 고민이 되었다. 고민 끝에 인레이를 하기로 했고 충치가 깊어 신경치료를 할 경우 크라운 치료를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마취를 하고 얼굴을 가리는 방포를 덮고 치료를 시작했다. 치과 진료는 으레 물이 나오기 때문에 대부분은 이런 부분을 불편해하신다. 환자분도 마찬가지였고 중간에 힘드셨는지 왼손을 이따금씩 드셨다. 그러면 나는 진료를 멈추고 말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여 불편을 해소한 후 진료를 이어나갔다. 그런데 이 분은 그럴 때마다 죄송하다는 말을 계속했다. 치과 진료를 하면서 환자가 치과의사에게 죄송하다고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이분은 내 진료를 멈추게 했다는 미안함 때문인지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를 연발했다. 나는 그 말을 듣는 것이 마음에 불편했다.


"죄송한 일이 아니에요. 그렇게 말씀 안 하셔도 돼요."

"아니요. 그래도 죄송해서..."


충치를 제거해 보니 신경과 꽤 가까웠다. 이런 경우 바로 신경치료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날은 신경치료를 바로 들어가지 않고 마취 풀리고 아픈지 또는 괜찮은지 한번 지켜보자고 했다. 만약 아프게 되면 그때 신경치료를 하자고 했다. 환자분은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뭐든 좋다고 했다.

나를 본 첫날부터 신경치료를 들어가야 된다고 하면 충격을 받을 것 같아서 그랬을까. 왜 그날의 나는 지켜보자고 했을까. 진료 끝나고 나서도 그 환자 생각이 자꾸 났다. 그렇게 생각을 계속해서인지 내 머릿속은 그 환자분이 마취가 풀리고 아파했을 것이라는 결론을 냈다. 하지만 내 예상과 다르게 그 환자는 아프다고 다시 치과를 찾지 않았다.


아프지 않았을 수도 있고 아프지만 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나는 왜인지 후자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이 별것 아닌 걸로 나에게 계속 죄송하다고 해서일까.

그분에게 치과 치료를 받기 위한 외출은 얼마나 큰 일이었을까.

아프면 아프다고 표현하세요.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못했던 것이 그녀 우울증의 원인은 아니었을까.

이전 13화 사명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