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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일월 Dec 18. 2023

낯선 남자와 방 안에서 둘이, 대화록 1

소개팅 어플남

#6. 낯선 남자와 방 안에서 둘이, 대화록 1



집앞 편의점 앞에는 다소 특이한 외제차 한 대가 비상 깜빡이를 켠 채 서있었다. 나는 허리를 숙여 그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다행히도 카톡 프로필 사진과 똑같아 나는 안심했다. 그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그의 차에 탔다. 집 앞으로 주차를 하기 위해서는 나의 짧은 길 안내가 필요했다.


“여기서 우회전이요.”



어색한 기운에 안 그래도 어눌한 내 말투가 더 어눌해졌다. 떨리고 있는 내 목소리가 들리는 것은 정말 곤욕이었다.


주차를 하고, 그의 차에 내려 공동현관문 키를 누르고 계단을 올랐다. 내 밑으로 따라오고 있는 그의 존재가 어색했지만 불편하진 않았다.


삑삑삑- 집 현관문이 열리고, 주황색 무드등이 은은하게 빛나는 나의 14평짜리 세계로 그가 발을 들이는 순간은 나와 그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나 옷좀 갈아 입고 올게.”

“왜 갈아입지마, 이쁜데. 지금"

“불편해서.”


‘이쁘긴 뭐가 이뻐. 입 터네.’ 어딘가 꼬여버린 나는 옷방으로 가 회색 나시티와 짧고 편한 바지로 갈아입고 있었다. 그 때 다 닫히지 않은 방문이 끼익 열리더니 그가 따라 들어왔다.



“찌찌 만져도 돼?”

“와, 진짜 내 앞에서 이 말을 하네?”

“엉. 한다니까? 히히. 만져도 돼?”

“응. 만져.”



내 뒤로 와서는 장난스럽게 가슴을 움켜쥐고 좋아하는 이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히죽히죽 웃는 30대 남성을 보라. 나는 그의 손을 잡아 허리춤으로 내리며 말했다.



“그만 만지고, 술이나 마시자.”

“당황스러워?”

“가슴을 만지는 건 당황스럽지 않은데, 그 말을 진짜로 할줄은 몰랐어.”



‘당돌한 녀석이군.’ 거실 흰색 원탁테이블에 마주보고 앉은 우리는 올라오기 전에 편의점에서 사온 소주를 깠다.


또로로록-

짠-



“나는 남궁효원이고, 32살이야.”

“나는 최하늘이고, 34살.”

“사실 오기 전에 잠깐 잠들었었거든? 순간 깼는데 귀찮은 거야. 가지 말까 했는데. 아무튼 약속은 약속이니까 왔어.”

“아, 그래서 늦었구나?”

‘약속은 약속이니까'라는 말, 현실에서는 당연한 것이지만 어플에서는 당연하지 않은 말. 그 말이 뇌리에 박혔다.

“응, 미안해. 늦어서.”

“아니야, 상관 없어. 그나저나 너는 어플로 많이 만나봤어? 난 이번이 두번째인데.”

“많이 만나봤어. 잠수도 많이 당해보고, 그래서 너 번호 알려달라고 한 거야. 번호 정도는 받아야 만나.”

“아, 잠수… 잠수 당하는 구나.”

“ 만나기로 약속해놓고, 약속 장소 가면 카톡 탈퇴되어 있고, 잠수 타고. 많이들 그래.”

“와, 대박이다.”



그에게 어플 관련 팁을 들으려고 했지만 딱히 들을 것도 없다고 판단이 되었다. 이런 인스턴트 만남들. 실물로 만나기 전에는, 대면하기 전에는 알 수 없는 불확실성.


그는 고개를 돌려 방안을 쓰윽 둘러보며 말했다.



“나도 전에 살던 집이 딱 이랬는데. 방 두개에 거실 하나. 닮았네, 우리. 혼자 사는데 이렇게 큰 테이블도 있고, 요리를 해먹나봐?”

“엉. 요리하는 거 좋아해. 친구들 와서 밥 해주는 것도 좋아하고.”

“그러게 저기 쌀도 있고. 기본적으로 뭘 할 수 있는 사람이네. 조명도 예쁘다.”

날 좋게 보고 있다고 느껴졌다. 그는 질문을 이어나갔다.

“넌 어떤 일 해?”

“나는 편집 디자이너야. 근데 그게 주는 아니고 퇴근하고 집에와서 그림 그리고 글 써!”

“오, 멋지다.”



나는 으레 사람들에게 그러듯 내가 그린 그림 몇 장을 보여주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림을 보고 흥미로워 한다. 그 다음 잘 그린다고 칭찬하거나 난 그림 그릴줄 모르는데,라고 말하며 내가 참 대단하다고 반응한다. 효원이도 마찬가지였다.



“너는 무슨 일해?”

“나는 르꼬르라드 나와서 요리사 하다가, 지금은 그냥 회사다녀.”

“어! 알아. 르꼬르라드? 거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요리학교잖아!”

그는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내게 건네주었다.

“이제 요리를 주로 하진 않고, 식품 회사 랩실에서 제품 개발하고 그래. 스타트업이야.”



명함에서 그의 이름 네 자를 확인했다. 직함은 대표이사였으나 그것에 대해 별로 관심은 가지 않았다. 그가 말한 자신의 이름이 진짜인지 아닌지만 확인했다. 어린 나이에 대표이사 직함을 달고 있다는 게 믿음직스러운 사실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르꼬르라드 나온 것부터 뻥 아니야?’라고 생각이 들었다. 아무렴 어때. 그냥 그렇다고 믿자. 알 게 뭐야. 오늘만 만나고 말겠지?



그는 이름만 들으면 다 아는 유명 레스토랑에서 수셰프까지 올라갔다고 했다. 그리고 르꼬르라드 출신의 유명 쉐프에 대한 가십거리들을 말해주었다. 평소 좋아하는 요리사의 얘기도 들을 수 있어서 흥미로웠으나 동시에 허세 섞인 경험담을 들으니 조금 졸려워져 티내지 않았으려 노력했다. 또 가끔은 ‘진짜 많이 힘들었었구나.’라는 연민이 잠깐씩 들기도 했다. 


소주 두 병은 어느새 비워졌고, 나는 친척 언니에게 받은 찬장에 옛날부터 존재한 이름모를 데낄라 한 병을 꺼냈다.


짠-


그는 매우 흡족해보였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이렇게 술맛이 날줄은 몰랐어.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아? 한 두 시간 얘기하다 잘 줄 알았는데, 대화가 이런 식으로 흘러가게 될줄 정말 몰랐어. 정말 술맛 좋다. 이 술 뭐야?”

“너 취했어? 왜 계속 똑같은 얘기해?”

“아니, 정말 그렇잖아. 너무 재밌잖아!”

“맞아. 인정!”



나또한 마찬가지였다. 그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 감독 작품을 줄줄이 잇는 나의 모습,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밴드 오아시스의 ‘Wonderwall’의 노래가사를 읊는 그의 모습은 어제 나눈 조금은 원초적이고 저급했던 것과는 상반되는 지점에 있었다.



“이 술은 어디서 났어? 술 좋아해?”

“아니, 거의 술 잘 마시는 편은 아니야. 친척언니가 줬어.”

“나도 술 엥간하면 잘 안 마셔. 언니랑 친해?”

“응. 친한데. 지금 방콕에 살아. 이민 갔어. 그래서 두달 뒤에 놀러 가려고.”

“너 갈 때 뭐라도 사서 너한테 들려보내야겠다. 이렇게 맛있는 술을 주셔서 감사하다고.”

“응. 그래”


‘얘, 뭐지?’ 입을 잘 터는 건가? 아니면 앞으로 날 계속 보려고 하나? 왜 이런 말을 하는 지 넘어가지 못하는 나는 너무나 순진했다.



“근데 아까보니까 방에 베이스가 있대?”

“엉. 고등학교 다닐 때 잠깐 꿈이 베이시스트였거든. 그랬더니 아빠가 사줬어. 아빠가 악기 욕심이 있어서. 근데 한 번도 배운적 없어. 근데 넌 저게 기타인지 베이스인지 아네?”

“나 고등학교 때 밴드부였는데, 베이스쳤어.”

“와, 대박. 그래서 오아시스 노래도 알고 있었구나. 탑 100들을 거 같이 생겼는데. 의외였어.”

“죽고싶냐?”



그는 진심으로 내 말이 웃겨서 웃었다. 이건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였다. 나는 누구를 웃게 만드는 게 좋았다. 꿈이 개그우먼이냐는 소리도 여럿 들었었다.


그의 웃음은 예뻤고, 나는 그의 미소를 바라보았다. 웃을 때 봉긋이 솟은 그의 광대는 조명을 받아 빛이 났고, 발그레한 볼, 완벽한 삼각형 입술과 웃을 때 생기는 입동굴, 잘 정돈된 치아, 갸름한 턱선이 예뻤다.

나는 그의 웃음 속에서 나의 뇌 어딘가가 반짝하는 것을 느꼈다. 순간 이 남자를 좋아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남자를 좋아해도 되나? 라는 의심도 함께 들었다.



“효원아, 너는 제일 오래 사귀어 본 기간이 얼마나 돼?”

“나는 4년, 너는?”

“나는 6년. 근데 마지막 2년은 섹스리스 커플이었어.”

“아, 근데 오래 사귀면 진짜 다들 그런가봐. 나도 마지막 2년은 섹스를 안 했어.”

“근데 그걸 안해도 괜찮더라고? 섹스 그 이상의 것이 있다고 해야하나? 별 생각도 안 났어.”

“그래서 어른들이 그런말을 하나봐. 얼굴 뜯어먹고 살거 아니니까, 얼굴 그렇게 많이 보지 말라고.”

“그런가봐?”



짠-. 아는 구나, 너도. 오랜 연애가 무엇인지. 동질감이 느껴졌다. 역시 사람 사는 거 다 똑같구나. 특이한 아이인줄 알았는데, 평범해 보여 안심되었다.



“아쉬운 점은 없었어? 나는 전 남친한테 좀 못했었거든. 가진 게 별로 없었어.. 그래서 못해준 게 너무 아쉬워.”

“난 없어. 섹스 존나 많이 했거든.”

“아오, 미친놈아!”

“넌 안 그래? 사람들 다 이런데, 나처럼 말만 안 하는 걸걸?”

“나도 그래.”

“나는 진짜 섹스 좋아하거든? 난 절대 마약, 주식, 도박 이런 거 절대 안 해. 근데 섹스만 해.”

“아, 네네. 감명깊은 연설 잘 들었습니다.”

“아, 죽는다? 내가 얼마나 섹스를 좋아하냐면은 진짜 친한 친구들 만나서 맛있는 거 먹잖아? 그럼 보통 ‘와, 이거 진짜 맛있다.’이러면서 감탄사를 연발하잖아? 나는 그 감탄사 자리에 섹스를 넣어. 맛있는 거 먹었다? 그러면 ‘‘와! 이게 섹스지~! 어?’, 뭐 재밌는 거 하면은 ‘아! 이게 섹스지!’ 이래.”



나는 배를 잡고 깔깔대면서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와, 너도 보통 이상한 애는 아닌 거 같아. 근데, 또 막 나쁘진 않은 거 같아. 왜 소개팅 안 받고 어플해?”

“소개팅은 누구랑 엮여있잖아. 나는 섹스를 졸라 좋아하는데, 소개팅 가서 이런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잖아.”

“뭐, 그건 그렇지.”



인정. 천천히 알아간다고 해도 그를 받아주지 않을 수도 있는 거니까.


“그리고 나는 안 해본 섹스가 없어.”

“안 해본 섹스? 섹스가 섹스지 뭐가 있는데. 안 해볼 게 뭐가 있는데!!!”



흥분한 나는 말이 막혔다.



“막 그러면, 안 넣어야될 곳에도, 어? 막 2대1도 해보고 그랬다는 거야? 어?”



나는 흥분해 격앙된 상태로 질문을 했다. 그는 아주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해봤지,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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