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촉한 캐슈쿠키를 걸고, 공포의 한밤 오토바이 라이딩!
해가 저물어가는 우붓의 어느 날 저녁이었다.
우붓에서 지내는 일주일간, ‘어두워 지기 시작하면 숙소안에만 있을 것’ 이 내 홀로 여행의 원칙이었다. 아무리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순하고 착해도, 여자 혼자 낯선 이국의 땅에 여행온 것은 그 자체로 안전과는 먼 일인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일 저녁 6시도 되기 전 얌전히 숙소에 들어와 쥐죽은듯 박혀있던 나였는데, 불현듯 캐슈쿠키가 너무너무 먹고싶었다.
차갑고 촉촉하고 밀도가 꽉차있는, 캐슈넛을 잘게 다져넣은 고소한 캐슈쿠키. 어디에도 대체할수 있는 쿠키는 없다. 오직 숙소에서 바이크를 타고 10분거리의 카페에만 있는 캐슈쿠키! 한국이었다면 고민없이 가겠지만 발리는 6시만 되어도 해가 저물기 시작하고, 몇분내로 캄캄해진다. 지금 나가면 먹고 돌아올쯤엔 완전히 어두워질 게 분명하다.
하지만 내 입과 내 위장이 외치고 있다. 나는 지금 당장 캐슈쿠키를 먹어야만 해!
결국 나는 그랩 오토바이를 불렀다. 5분쯤 갔을까? 이게 웬걸, 힌두교의 행진이 시작되었다. 가는 길이 완전히 막혀버렸다.
아아, 이러면 더 늦어지는데. 우붓에서 힌두교의 행진은 저녁이고 주말이고 뭐고 도로통행따윈 알바 아닌 것처럼 진행된다. 그것도 하나의 매력이긴 하지만.. 지금 나는 캐슈쿠키를 먹고 어두워지기 전에 돌아가야 한다고! 애타는 내 마음과는 달리 느긋하고 기다란 행진이 모두 끝나고 나서야 오토바이는 움직였고 몇분 뒤 나는 카페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난 이내 그리고 그리던 캐슈쿠키를 입에 넣고야 말았다. 오도독 오도도독 잘게 씹히는 식감과 입에 가득 들어차는 충만함, 그리고 진득하게 오래 남는 진한 고소함. 아아, 이 맛이지. 볼을 채운 캐슈쿠키를 먹다보니 라떼가 필요하다. 아이스라떼까지 다 마시고 나서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10개에 3500원인 캐슈쿠키는 그 두어시간동안 나의 행복이었다.사랑해 캐슈쿠키.
다먹고 나오자 밖은 캄캄했다. 가로등도 없는 도로는 이미 어둡다.
침을 꼴깍 삼켰다. 괜찮아, 내겐 그랩이 있으니까. 그랩은 한국의 카카오택시같은 어플로 언제든 부르면 인증된 기사님과 바이크가 오는 그런 믿을 수 있는 어플이었다. 곧 나는 그랩오토바이를 타고 기사님의 어깨를 잡고 캄캄한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이거.. 내 숙소로 가는 방향이 아닌 것 같은데?’
등골이 서늘하다. 점점 오토바이는 가로등도 하나없는 숲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느낌상 이미 숙소와 멀리 떨어진 길로 온 것만 같다. 순간 머리에 스치는 생각.
‘나 여기에서 잘못되어도 아무도 모를텐데 어쩌지?’
낭패감이 들었다. 우붓시내와 떨어진 어두운 도로를 달리고 있었고, 간간히 스쳐가는 오토바이들은 현지인들이 타고 있다. 온갖 나쁜 상상들이 머리를 스치기 시작했다. 기사님이 날 어디론가 끌고가 나쁜 짓을 하거나, 혹은 어디엔가 날 팔아넘기거나.. 내 소중한 콩팥… 계속해서 온갖 실종과 사건사고들이 머리를 스쳐간다. 기사님이 아까 했던 농담도 자꾸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내가 우붓이 너무 좋다고, 살고싶다고 했더니 인도네시아남자를 만나라고 한 그 농담.
오토바이는 어두운 다리 위를 건너고 있었다. 캐슈쿠키 하나 먹으려다 이게 무슨 날벼락이람. 다시는 밤에 나오나 봐라, 근데 내게 다음번이.. 있겠지? 무서웠다. 내가 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었다. 뛰어내려도, 소리를 질러도 어차피 주변은 완전히 어두운 숲길. 뛰어내리면 최소 골절, 그 몸으론 어차피 집에 못갈테고, 괜시리 소리를 질렀다가 이 길이 맞으면?
나는 지금 이 불안감에 어떤 대처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 순간 그런 생각을 했다. 그냥 모든 생각을 지우고 지금 이 순간에 온 몸을 맡겨야겠다는 그런 생각. 나를 태운, 처음보는 기사님의 뜨끈한 땀내나는 등을, 인간대 인간으로 그냥 믿어봐야겠다는 생각. 분명 위험한 생각이었지만, 어찌 할수 없었다. 지금부턴 무슨 일이 생기건 내 운명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때부턴 잠잠히 앉아 평온한 얼굴로 기사님의 어깨만 붙들고 바람을 맞았다. 그래. 이게 내 마지막 밤이라도 괜찮지 뭐. 캐슈쿠키 먹겠다고 나왔다가 실종되면 그런대로 나답네. 운명, 모든 것은 운명! 불안감이 가라앉자 밤바람은 의외로 상쾌했고, 코를 스치는 밤의 숲냄새는 그런대로 나쁘지 않았다.
그때 내 눈앞에 불빛들이 어른거린다. 불켜진 동네의 슈퍼마켓이 하나 둘 스쳐간다. 빨래방도 지나고.. 유심칩을 파는 가게도 지나고.. 그제서야 익숙한 골목이 눈에 들어온다.
그렇게 오토바이는 숙소 앞에 도착했다. 오토바이에서 내리며 느꼈던 그 무안함과 미안함이란. 나중에서야 구글지도로 찾아보니 그 어둑한 숲길은 매일 숙소에서 그 카페로 가던 길과는 다른 반대편의 도로였고, 여긴 골목길들이 정돈된 상황도 아니라 큰길따라 오다보니 돌아온 것 뿐이었다.
숙소에 들어오니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났다. 그래도 아까 그 순간은 정말 무서웠다고. 캐슈쿠키를 위한 이 한밤의 여정은 정말이지 잊을 수 없는 순간이 될 것이다. 내가 어떤 대처도 할 수 없는 불안감과 걱정이 마음을 붙잡고 뒤흔들던 그 순간. 그냥 가만히 앉아 사람을 믿고, 운명을 믿고, 바람을 맞아보았던 바로 그 순간.
그래도..아무리 그래도…
다시는 해지면 나오지 말아야지.
오늘의 교훈:캐슈쿠키는 미리미리 사놓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