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 모든 곳이 내 일터였으면 좋겠어

디지털노마드들의 성지, 우붓에서 꿈을 꾸다

by 박꿀꿀

12월의 첫날, 발리 우붓의 햇빛은 따사로웠다. 나는 여유로운 나시원피스를 대강 주워 입고는 가장 큰 비건 카페 중 하나인 zest로 향했다. 스쿠터를 타고 10분간 달려 도착한 그곳은 칵테일, 스테이크, 햄버거 등을 팔지만 그 모든 메뉴가 비건 푸드인 것으로 유명했고, 또 하나는 디지털 노마드들이 노트북 하나 펼치고 일한다는 카페로도 유명했다.

발리 우붓의 비건카페 Zest.모든 메뉴가 비건인 식당!

그곳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노트북을 펴놓고 일을 하고 있었다. 소파에 누워 맥북을 무릎에 올려두고 일하는 사람도, 꼿꼿한 자세로 심각하게 키보드를 두드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요즘 디지털노마드라고도 불린다는, 업무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온라인으로 업무를 보는 사람들이었다. 발리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친화적인 편이라 가끔 사람들과 스몰토크를 할 기회가 생기는데, 이곳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대다수가 온라인 업무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코딩이나 온라인 마케팅, 또는 에어비앤비 사업 운영 등.


몇 개월째 발리에 살며 일을 하고, 발리가 질릴 때쯤 또 다른 나라로 갈 계획을 세우기도 하는 그들이 참 멋져 보였다. 그 속에 앉아있으면서 생각했다.

나도 이렇게 살고 싶다고.

모든 메뉴는 비건, 제로웨이스트를 지향하는 다정한 카페

직원이 가져다준 메뉴판을 골똘히 들여다보았다. ‘우리가 지구에게 하는 것이 곧 우리 자신에게 하는 것’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너를 케어해. 알레르기가 있으면 알려줘! 너의 웰빙을 보장할게.‘ 라고 말하는, 다정하기 그지없는 메뉴판을 보며 메뉴를 고르는 동시에 나는 고민했다.

-나 우붓을 사랑하는 것 같아. 어떻게 하면 여기에 와서 살 수 있을까? 평생 이렇게 좋아하는 나라들을 돌아다니며 자유롭게 일하고 싶어.

예전이라면 꿈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했겠지만 지금 내 눈앞에는 그렇게 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소파 위에 널브러져 있다. 어쩐지 지금의 나는 더없이 용감해진다.

비건 스테이크, 비건 치즈 플레이트, 로맨틱, 성공적!

비건 치즈는 정말이지 우유로 만든 치즈와 다를 바가 없고, 잘게 부서지는 비건 스테이크는 소스와 함께 버무려져 입에서 녹아내린다. 서빙되어 나온 비건 치즈 플레이트와 채식 스테이크를 집어먹으며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전자책 출판사는 계속 운영할 테지만 아직 생계를 유지할 정도의 수익은 나지 않는다. 유튜브는 더더욱 시간이 걸릴 것 같고 글 또한 그렇다. 이 여행이 끝나고 콘텐츠가 충분히 쌓이기 전까지 실제 생계를 이어나갈 무언가가 필요하다.


나는 고민 끝에 다음 행선지인 인도에서 요가원에 들어가 수련을 받겠노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우붓에서 요가를 가르치며 살면 참 좋겠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요가를 생전 배워본 것도 아니고 영어도 잘 못하면서, 영어로 요가를 가르치는 강사과정을 밟겠다는 이 허무맹랑한 생각.


나의 계획을 여기저기 이야기해보았다. 대부분 그래, 갑자기 요가강사라니 뜬금은 없지만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라, 하는 반응이 돌아왔다. 좋아! 내게 용기를 더해준 마지막 결정타는 막내 외삼촌, 막내 외숙모로부터 나왔다.

나중에 우붓에서 너에게 요가를 배울게.
그리고 채식에도 도전해봐, 마음이 맑아진단다.
언제나 열렬히 지지해!

왜인지 모르게 울컥하다. 마음속에 길이 남을 것만 같은, 잠잠히 있다가도 언제든 튀어나와 용기가 되어줄 것 만 같은 감사한 이야기였다. 어쩌면 정말 현실이 될 수 있을지도 몰라. 인도에서 요가를 배워서 우붓에서 요가를 가르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한국도 오가며 책을 만드는 작가가 되는 그런 행복한 상상을 해본다.

카페에서 나와 오천 원어치 망고를 사들고 숙소에 돌아와 껍질을 까며 생각했다. 아, 그 이상 행복한 꿈이 있을까? 발리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면 이런 삶에 도전해볼 수 있을 줄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결과는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나는 지금 매일, 매 순간이 울컥할 만큼 삶이 소중하게 느껴지니까. 이런 감정을 느껴본 지금 이런 순간이 존재한다는 것 만으로 평생 우려먹으며 살 수 있을 것 같을 만큼 이미 내 삶은 충만하다.

여태 몰랐다. 나만의 행복을 찾아가는 삶이라는 것이 이렇게나 좋은 것이었다는 걸! 인도에서의 다음 여정을 또한 기대해본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내일이 더없이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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