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현실에 만족하는 것만이 답일까?
퇴사하기 전, 출근길 아침 버스를 기다리면서 나는 거의 매일 행복에 대해 생각했다. 아마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삶은 원래 이렇게 고통인걸까,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하나 매일을 괴로워했다.
그때 당시 나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누리는게 답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흔히 듣던 말들은 파랑새는 어디에도 없다, 현실에 만족할 수 있어야 하며 행복은 지금 여기에 있으니 소확행을 누려라, 하는 것이었으니까.
물론 일리가 있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때의 나는 현실에 만족은 커녕 적응조차 하지 못하는것 같았다. 소확행은 단지 고통스러운 현실을 버티게 해주는 진통제같은 것이었다. 매일 맵고짜고단음식을 찾고, 공허한 마음으로 필요없는 자잘한 물건을 사기도 했으며, 놀러나갈곳을 찾거나 술을 진창 마시기도 했다. 책도 읽어보고 취미도 가져보았으며 종교도 가지고 기도도 했다. 진통제의 효과는 찰나였다. 나는 매일 매순간 더이상 이렇게 살수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어딜가나 그런 이야기들이 들려왔다.
-원래 다들 힘들게 버티며 사는거야, 삶이 별거 있는줄 아니, 일하는거 모두가 싫어해. 다른 직장은 더 힘들어. 니가 아직 어려서 뭘 몰라서 그래..
그리고 어느 날 유튜브에서 누군가가 행복에 대해 이야기한 영상을 보게되었다. 행복해야한다는 관념을 버리라고, 원래 인생은 고통일뿐이라는 이야기를 보게되었다. 나는 그때 체념하게 되었다. 그래, 행복해야한다는 생각때문에 힘들었나봐. 인생은 원래 고통이구나.
하지만 여전히 억울했다.
행복을 추구할수 없다면,
그렇다면 더이상 살아갈 이유가 있을까?
그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채 매일을 버텨냈다. 그러다가 문유석판사의 <최소한의 선의>를 읽게 되었는데, 그 책에서 작가는 헌법의 이런 조항을 다루었다.
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생략)
나는 그 ‘행복추구권’에 대한 조항을 오래도록 들여다보았다. 그러니까, 모든 국민은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는게 헌법에 나와있단 말이지. 그걸 행복추구권이라고 부른단 말이지. 물론 작가는 모두의 공존과 사회의 역할을 말하기 위해 법을 이야기했지만, 내게는 사뭇 새롭게 느껴졌다. 냄새도, 감정도, 색깔도 온기도 없는 법이, 마치 내게 용기를 주는 것만 같았다.
-너도 너의 행복을 찾아갈 권리가 있어. 행복을 찾아가도 돼.
나는 한참을 가만히 앉아 눈물흘렸다. 그후로도 계속 그것은마음속에 맴돌았다.
-난 행복할 권리가 있어. 법도 그렇게 말해주고 있는걸.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이야기같지만 그때까진 누군가 권위자의 허락을 받고 옳다고 제시해준 방향으로 가는 것이 마음편했던 내게 법이 방향을 제시해준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법에서도 법 조항사이에 충돌이 생길땐 보다 상위법을 따르고 그중 최상위법이 헌법이듯, 일정 수준 이상의 직업을 가져야하고 특정나이가 되면 결혼을 해야한다는 둥의 규범들은 모두 내게 하위법과 같았다. 내 삶에 있어서도 최상위 법은 바로 행복을 추구하는 것임을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는 결심했다.
남아있는 모든 날에 가장 적극적으로 행복을 찾아보겠다고.
그렇게 다짐하고 보니 나는 지금 현실에선 행복할 수 없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나에게 행복이란 곧 자유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갖은 방법으로 소확행을 누리며 현실에 만족해보려던 시도들이 모두 실패했었다는걸 깨달았다. 이젠 현실을 바꿔야할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선가 본 말도 내게 하나의 위로이자 이유가 되어주었다. 인류 전부가 현실에 있는 그대로 만족했다면 인류는 아직도 동굴에 살며 뗀석기를 쓰고 살았을지도 모른단 말. 현실에 불만을 가지고 더 나은 상황을 누리려던 사람들이 발버둥을 쳤기 때문에 사회가 조금 더 발전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현실에 만족하는 것만이 답은 아니라는.
내게 사회를 바꿀만큼 대단한 능력과 야망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나는 ‘나’라는 사회는 바꿀 수 있는 사람이야. 그래, 현실을 바꿔보자.
심지어 내가 추구하고자 한건 대단한 명예도, 권력도, 돈도 안정성도 아닌 단지 자유였다. 그것만이 내가 원한 전부였다. 자유를 위해서라면 나는 현실을 바꿔야 했다. 그렇게 나는 임용고시까지 보고 힘들게 들어간 직장에서 사직서를 쓰고 9년간의 서울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우붓으로 날아온것이다. 다들 아깝다고 했지만 나는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오직 자유를 위해서라면.
지금의 나는 물론 행복하다. 우붓에서 나는 만화를 그리고, 글을 쓰고, 영상을 만드는, 말하자면 당장 돈도 되지 않는 일들을 혼자서 잔뜩 행복하게 꾸려나가고 있다. 주말도 평일도 아침7시부터 눈을 뜨자마자 그 일들을 하고 잠들때까지 글과 만화와 영상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잔다. 말그대로 그냥, 너무 즐거워서.
신기하게도 나는 20년 뒤도 알것 같던 교사시절보다, 20일 뒤 내가 어디에 있을지도 모르겠는 지금이 더 좋다. 아직 잘 모르겠다. 내가 가고 있는 길이 옳은지. 하지만 그 누가 판단할수 있을까?
더이상 행복을 미루지않기로 하고 세계일주를 떠난 내게 그런 유튜브 댓글이 달렸다. 지금이야 좋지, 늙어서 망할거고 후회할거라고. 그런 댓글을 보며 다시 한번 행복이란 무엇인가 생각해본다.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결국 다른사람의 행복도 빌어줄 수가 없구나. 행복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그리고 내가 가는 길은 적어도 내게 있어서만큼은 정답이라고 믿기로 한다. 왜냐하면 현실을 바꾸는 시도를 해본 지금, 나는 정말로 행복해지는데에 성공했기 때문에. 그리고 앞으로도 나는 ‘헌법 제10조’를 충실하게 지키는 국민이 되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