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나라인가? 도시인가? 원숭이들이 통치하는 곳인가?
생소하지만 처음 보는 단어는 아닌 Gibraltar.
재즈 앙상블에서 연주했던 Gibraltar이라는 곡이 있었다.
템포도 빠르고 난해해서 연주하기 어려운 곡이었다.
당시, what does Gibraltar mean? 하고 1초 정도 궁금했지만 찾아보지 않았다. ㅋㅋㅋㅋㅋㅋ
호기심이 있다가 마는 스타일.. ^^
그래서 의미도 모른 채로 그냥 연주를 했던 기억이 있다.
2018년 4월, 평생 모를 수도 있었던 Gibraltar가 뭔지, 머리로만 아는 게 아니라 온몸으로 체험을 했다.
Gibraltar의 미국식 영어 발음을 한국어로 표기하면 “지브랄터” 가 더 가까운데…ㅋ ㅋ ㅋ ㅋ
아무래도 어감이 조금 ^^;; 그렇다 보니, 한국어 표기는 “지브롤터” 혹은 “지브랄타“ 가 맞다.
지브롤터 해협이 있다는 것도 새로 알았다.
자 그래서 지브롤터는 어떤 곳인가?
Let’s go!
지브롤터는 스페인 남부에 있는 섬인데, 스페인 땅이 아닌 영국의 영토이다.
그런데 지브롤터만의 국기가 있다. 휴대폰 이모티콘에서 지브롤터/Gibraltar 검색하면 빨간색 성이 그려진 국기가 뜬다.
스페인에서 가까워서 그런지, 상점에는 스페인어가 영어만큼, 혹은 그보다 더 쓰이는 분위기였다.
크루즈가 며칠 뒤에 지브롤터에 또 오는 루트여서 시내 구경은 그때로 미루고, 친구들과 바로 바위산 등산로로 향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여섯 시간짜리 등산이 될 줄은…
등산 시작하기 전 마주한 강아지. 같이 가고 싶은지 담을 넘고 싶어 했다. 너도 같이 등산할래?
총 8명인 우리는 다 같이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바위산 오르기 딱 좋은 날씨였다.
크루즈 뮤지션이 처음인 클래식 연주자 친구들은 아주 발랄하다.
그중 “open relationship”중인 아만다의 남자친구가 일주일간 게스트로 크루즈에 탔다.
(friend/family on board라는 혜택으로 크루즈 직원들은 지인을 저렴하게, 혹은 무료로 크루즈에 데려올 수 있다.)
아만다 덕분에 크루즈 여행 공짜로 하는 “오픈 릴레이션십 남자친구”의 이름은 타마스다.
타마스도 이번 등산에 합류했다.
내겐 오픈 릴레이션십이라는 개념이 굉장히 낯설고 (솔직히 이상하고) ‘특이한 사람들‘ 같은데, 아만다와 타마스는 평소엔 평범 그 자체인 사람들이다.
대놓고 밝히는(?) player같은 이미지가 아니라서 내심 더 놀랐다.
나는 사람들한테 사적인 질문을 잘 안 하는 편인데, 시원시원한 베프가 아만다&타마스에게 오픈릴레이션십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는 덕분에 그들의 관계 시스템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오픈 릴레이션십이라고 해서 적극적으로(?) 새로운 사람을 항시 찾고 있는 건 아니고
일상을 살다가 자연스럽게 호감 가는 새 인물이 생기면 약속한 파트너에게 미안함을 가질 필요 없이 새로운 사람에게 접근하고 접근받는 시스템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언제 어디서나 자만추 대환영! 이런 느낌이다.
일주일 뒤에 타마스가 집으로 돌아가면 둘은 계속 연락은 주고받되 아만다는 크루즈에서, 타마스는 미국에서 각자 자유롭게 사는 거다.
보는 사람 입장에선 흥미진진한 관계다. ㅋㅋㅋㅋㅋㅋ (앞으로 연재할 크루즈 스토리에 이 둘의 이야기도 종종 등장할 예정이다.)
그렇게 오픈 릴레이션십에 대해 배우다 보니 ^^; 어느덧 바위산에 꽤 많이 올라왔다.
저- 수평선 너머 보이는 능선이 아프리카라고 한다.
아직까지 아프리카 대륙에 가본 적은 없지만 눈으로는 보았다!!
언젠간 저기도 가보리라!
해안길로 바위산을 오르니 뷰가 탁 트여있는 게 너무 좋았다.
숲 속 등산이랑은 많이 다른 느낌!
얼마나 올라왔는지 실시간으로 보며 느낄 수 있으니 올라가는 재미가 쏠쏠~
친구들과 노래도 흥얼거리며 지브롤터 바위산을 한 걸음 한 걸음 정복해 나갔다.
지브롤터는 mountain보다는 giagantic rock이라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다.
말 그대로 거대한 회색빛 바위 덩어리다.
고개를 옆으로 돌려도 돌, 위로 올려다봐도 돌.
돌은 돌이요, 물은 물이로다…
땀이 삐질삐질 나기 시작했지만 워낙 맑은 공기에 시원한 바람도 더해져서 여유로운 등반이었다.
여덟 명이 같이 다니니까 웃음도 끊이지 않아서 그런지 크게 힘들진 않았다. (이때까지는…)
세상은 참 넓지.
이 바위산을 쟁취하기 위해 옛날엔 얼마나 많은 싸움을 했을까.
내겐 생소하고 작아 보이는 이 섬이, 여기 주민들에겐 넓은 삶의 터전이고 수많은 스토리가 만들어지고 있겠지..
하지만? 지구는 pale blue dot에 불과하기도 하지.
돌계단의 연속이라 미끄럽지 않은 건 좋았지만 계단의 폭이 높아서 다리가 후달달~_~
Monkey!!!!
원숭이 발견!!!
이 바위산에선 원숭이들이 갑이라고 한다.
사람이 와도 도망가긴커녕, 어~ 왔냐~? 하는 표정으로 빤히 쳐다보거나 오히려 가까이 다가온다.
가까이 오면 난 무서워서 도망 다니느라 바빴다.
이 원숭이를 시작으로 한 50마리는 마주했다… ^^
크~ 넓은 바다는 매일 봐도 매일 좋다.
바다에도 노동자들은 많다. 열심히 일하는 각종 선박들 ㅋㅋㅋㅋ
나는 바다에서 일하는 피아노동자.
쭉쭉 올라가는 길 곳곳에서 마주한 원숭이 친구들.
지브롤터에서 찍은 사진의 절반은 원숭이 사진이다. ㅋㅋㅋㅋㅋㅋㅋ
두 번째 사진은 사이좋게 이 잡아주는 원숭이 가족이다. 누워있는 친구는 꽤나 만족하는 표정이다.
많이 올라왔다!
이제 고개를 많이 올리지 않아도 지브롤터 바위산이 한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길목에 원숭이 조심하라는 싸인을 볼 수 있었다.
공격성이 있는 애들이 있나 보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원숭이 한 마리가 내 베프의 배낭에 갑자기 올라타는 소동이 벌어졌다!!!
난 멀찌감치 있었는데도 너무 놀라서 꺅 소리를 질렀는데 ㅋㅋㅋ 생각보다 차분했던 내 베프와 그 주변 사람들…
그리고 사람들이 간식 먹고 있으면 원숭이들이 낚아 채기도 한다.
원숭이가 갑인 거 인정.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 중 하나,
O’Hara’s Battery(오하라 포대)에 올라와서 찍은 베프와의 우정여행 샷!
보고 싶다 내 베프 ㅠㅠ
챙겨 온 간식으로 허기를 달래고, 바위산의 통치자 원숭이님들을 수없이 마주했다.
난 아직도 무서워 가까이 오지 마. ㅠㅠ
목표지점까지 왔으니 하산할 시간!
힘을 내 보자!!!!
Mediterranean Steps라고 불리는 계단길을 따라 크루즈 항구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힘들었다…
11시간 걸린 한라산 성판악 코스에 비할 건 아니었지만 평소에 등산할 일이 없는 내 몸뚱이에게 지브롤터는 꽤나 혹독했다.
올라갈 때와 다르게 말 수가 줄어든 우리. ㅋㅋㅋㅋㅋ
흥얼거리는 콧노래 대신 oh my legs.. 하며 끙끙거리는 소리가 절로 났다. ㅋㅋㅋㅋㅋ
영국 국기와 지브롤터 국기(아랫부분 조금 잘림)가 그려있는 계단.
이 날은 역대급 계단을 많이 오른 날임이 분명하다.
헬스앱에 5만보 가까이 기록됐는데 평지 5만 보가 아니라 가파른 돌계단 5만보 오르락내리락^^
그래도 여차저차 씩씩하게 내려와서 바위산 등반을 마쳤다!!
6시간 걸렸다!
이렇게 아침-초저녁까지 바위 타고 저녁엔 연주자로 변신해서 공연한 우리들 ㅋㅋㅋㅋㅋㅋㅋㅋ
수많은 크루지 여행지 중 지브롤터는 유난히 독특한 기억으로 남았다.
평생 볼 원숭이 하루에 다 보고, 10년 치 계단을 하루에 오르내리고, 아프리카 땅도 보고, 친구들과도 돈독해진 하루.
아직까진 또렷한 이 기억이 오래오래 남았으면 좋겠다.
안녕 Gibraltar, 며칠 뒤에 또 올 테지만 그땐 등산은 패스하고 평지 시내 구경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