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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니엘라 Jan 20. 2024

가끔은 우행시가 필요해

막내가 일찍 잠든 날

우행시

우리만의 / 행복한 / 시간


우리에게도 가끔 이런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진작에 알고 있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그 시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 쉽지 않았기에  가벼운 시도조차 해보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 전 첫째, 둘째 아들과 엄마, 이렇게 세 사람의 데이트 시간이 극적으로 마련되었다. 그리고 우리들은 막내와 함께할 때와는 또 다른 행복감을 듬뿍 느꼈다.



생후 15개월 차 막내.

막내는 여전히 하루 두 번의 낮잠을 꼬박꼬박 챙긴다. 오전에 한 번 길게, 그리고 오후에 한 번 짧게. 생체 리듬에 큰 변화 없이 비슷한 패턴으로 장소나 상황을 크게 가리지 않고 자기가 자야 할 잠은 스스로 잘 챙기는 편이다. 터울 큰 셋째 아이는 첫째를 키울 때처럼 낮잠 시간을 피해 외출을 하고, 아이가 잠들었다고 외출을 피하거나 다른 가족의 계획을 취소하며 배려해 주기가 쉽지 않다. 막내가 잔다고 해서 둘째가 유치원 등원을 하지 않거나 하원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고, 아이의 낮잠으로 인해서 가족들의 사회생활을 단절시키기도 쉽지 않다. 그러니까, 아기가 자더라도 할 일은 해야 된다는 뭐 그런 말이다. 그래서인지 막내 아이는 알아서 자신의 잠을 챙기고, 엄마인 나는 아이가 필요로 할 때 언제 어디서든 잠잘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려고 애쓴다.

막내가 늘 이렇게 두 번씩 낮잠을 자다 보니 그녀의 밤잠 시간이 자연스레 늦춰지고 오빠들의 패턴에 맞춰지게 되었다. 주말이 아닌 이상 막내는 늘 오빠들과 비슷한 시간까지 깨어있고, 오빠들의 동생을 향한 배려는 깨어있는 시간 내내 이루어져야 했다. 아이들은 말하지 않았지만 잠시 동생과 떨어져 온전한 자유의 시간이 필요함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며칠 전, 드디어 원년 멤버들만의 시간이 허락되었다.

셋째가 낮잠을 한 번만 잤던 날이라 아기는 저녁 식사 시간부터 잠에 취해 비몽사몽 했다. 셋째의 상태를 재빨리 캐치하고 초저녁부터 아이를 재우는 데 성공했다. 동생을 재우는 동안 첫째와 둘째는 엄마와 한 팀이 되어 동생이 잠들기를 숨죽여 기다렸다. 그리고 막내 재우기에 성공하자 우리는 몰래 숨어 데이트하는 연인들마냥 소리 없이 키득거리며 서로를 얼싸안았다.

삼총사는 큰아이 방으로 모였다.

큰아이가 학교에서 가져온 미니어처 만들기 세트 재료를 가지고 초밥집을 만들기로 했다. 학교에서 쓰다 남은 거라 재료는 조금 부족했지만 엄마와 아들 둘이 만들며 이야기를 나누기엔 충분한 것들이었다. 각자 역할을 나누어 근사한 초밥집을 완성해 나갔다.

“이거 너무 재밌다. 엄마도 재밌죠?”

첫째 아이가 즐거움을 한껏 누리며 말을 걸어온다.

“그래, 엄마도 재밌네. 동생이 먼저 자니까 편하지?"

아이는 한 박자 늦게 대답을 한다.

“이든이가 귀엽긴 한데, 좀 귀찮을 때가 있긴 해요.”

“그렇지, 당연히 그렇게 느낄 수 있어. 엄마도 네 맘이 완전히 이해가 된다. 그래서 지금이 더 즐거운 것 같아. “

“네 맞아요. 엄마 근데 이것 좀 봐요. 새우 초밥이 엄청 커요!”

아이의 진심이 담긴 짧은 대답을 뒤로하고 우린 초밥집 만들기에 열중했다. 약간은 쓸데없고, 작고 귀여운 것에 마음을 쏟았더니 우리만의 행복한 시간은 금방 흘러갔다. “엄마, 이것 좀 보세요.” “얘들아, 엄마가 만든 것 좀 봐.”를 서른 번쯤하고 나니 작품이 완성되어 있었다.



아이가 둘일 때는 몰랐던 우리들만의 소중한 시간이었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작은 꼬마가 태어나면서 첫째와 둘째에게 쏟던 시간과 관심은 자연스레 막내에게로 흘러갔다. 그러는 과정 중에 첫째와 둘째는 엄마와의 시간과 엄마의 관심을 늘 필요로 하고 있었다. 채워주지 못해 미안했고 내 몸이 둘, 셋으로 쪼개지지 않아 아쉬웠다. 같은 사랑과 관심을 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은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는 이상 전달되기가 어려웠고, 우린 오래오래 서로를 그리워하며 지냈다. 그리고 짧지만 굵은 우리들만의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아이 셋과 함께 지내며 모두에게 동일한 관심과 사랑을 쏟아주는 일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때론 첫째에게, 때론 둘째에게, 그리고 때론 셋째에게 조금 더 무게를 실으며 사랑하며 살아가는 중이다. 아이들은 때론 불공평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우리가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며 서로를 사랑한다는 사실만큼은 어렴풋이 느끼고 있을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아빠가 되고 엄마가 되면 작고 귀여웠던 시절의 엄마 아빠의 사랑만큼은 선명하게 기억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사랑해, 보석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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