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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니엘라 Jan 04. 2024

삼둥이네 크리스마스 전통

산타는 없지만 선물은 있어요!

크리스마스 아침.

둘째 아이가 이른 새벽부터 세 번이나 잠에서 깨 거실로 나갔다 안방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네시쯤 한번, 여섯 시쯤 한번, 그리고 일곱 시 반쯤 한번 더 나갔다가 돌아온다. 잠에서 깼다고 엄마나 아빠를 귀찮게 하는 법은 없다. 조용히 일어나서 거실의 트리 밑 선물을 점검하고, 형이 아직 자고 있는지 확인을 한 후 다시 방으로 돌아와 잠을 청하기를 반복한다. 소풍날 아침의 기분 같은 걸까? 운동회 날 아침의 기분 같은 걸까? 그것도 아니면 난생처음 수학여행을 앞둔 날 아침의 기분 같은 걸까?


아이가 이렇게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 가족의 크리스마스 전통과 지난밤 형과의 약속 때문이다.

그 이야기는 매년 맞는 크리스마스이브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이들을 모두 재운 뒤 남편과 나는 아이들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그제야 택배 상자에서 언박싱하고 정성스레 포장을 한다. 선물 상자 위에는 마치 외국에서 온 산타가 썼을법한 신비로운 글씨체로 아이들의 이름을 영어로 적어 둔다. Issac 그리고 Yohan까지.(올해는 한 명 더 늘어 Eden의 이름도 추가되었다.) 그렇게 밤늦게 잠들고 나면 드디어 성탄의 아침이 밝는다.


큰아이가 열 살이 되던 해, 그러니까 2022년까지만 해도 아이들은 산타의 존재를 믿었다. 첫째는 믿으면서도 자꾸만 질문을 했다. "엄마, 아빠 산타할아버지 직접 봤어요?" "엄마, 아빠가 안 자고 기다렸다가 산타 할아버지 사진을 찍어두면 어때요?" "산타 할아버지가 어떻게 들어와요?" 등 대답해주기 어려운, 그러니까 자꾸만 거짓말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만드는 질문들이 쏟아졌다. 그리고 더 이상 진지하게 답하는 건 정말로 아이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 밖엔 되지 않을 것 같아 남편과 나는 산타 놀이를 멈추기로 했다. 그리고 아기예수님이 탄생하신 성탄절의 의미와 엄마아빠 산타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성탄절에 이렇게 즐겁게 지내며 이 날을 기념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아기 예수님 때문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일렀다. 너무 이른 산타 공개라 당시 여섯 살 난 꼬꼬마 둘째에게는 미안했지만, 둘째는 상상 속의 산타가 사라진 사실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그건, 산타는 없어도 선물은 그대로 존재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재미있는 사실은 올해 성탄절에도 우리 둘째는 산타에게 직접 만든 카드를 써서 트리 밑에 고이 놓아두었다. 엄마 아빠더러 보라는 건지, 진짜 산타에게 보내는 건지 확실하지 않지만 아이에게 더 이상 캐묻지 않고 아이의 간절한 마음만 접수했다.


우리 집에서 맞는 성탄의 아침에는 아이들 중 한 명이라도 먼저 일어나는 사람이 있더라도 혼자서 먼저 산타 선물을 뜯어보는 법이 없다. 먼저 일어난 사람이 형제를 깨우고 (주로) 손을 잡고 거실로 걸어 나와 함께 산타 선물 언박싱의 기쁨을 누린다. 함께 기대하고 함께 웃으며 때론 떠들썩하게, 때론 잠에 취한 채 성탄의 아침을 맞는다. 선물이 공개되고 나면 산타에게, 부모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인증샷을 찍는 것으로 성탄 아침 행사는 마무리된다. 그리고 아이들은 새로 받은 선물을 활용해 놀거나 시간을 보낸 뒤 성탄 감사예배를 드리러 교회로 향한다.


그리고 올해 성탄절.

하루 전 날 잠들기 전, 첫째와 둘째 아이는 다음 날 아침 먼저 일어난 사람이 아직 자고 있는 사람을 깨워 산타 선물을 함께 뜯어보기로 약속을 하고 잠들었다. 그리고 둘째가 정말로 먼저 일어났지만 혼자서 언박싱의 기쁨을 누리지 않았다. 둘째 아이는 형을 깨워야 했지만 시간이 너무 이르다는 걸 알고 다시 이불속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결국 밀린 잠을 채우느라 깊이깊이 잠들었고, 한두 시간 후 먼저 일어난 형이 동생 둘을 깨워서 우리 집 아이 셋은 다 같이 거실로 걸어 나왔다. 셋째가 생기고 처음 맞는 완전체의 성탄절 아침 풍경이다. 아이들은 눈도 제대로 못 뜨고 비틀거리는 셋째를 잘 챙겨서 무사히 트리 앞까지 걸어갔고 첫째 오빠는 막둥이의 성탄 선물의 포장지를 먼저 뜯어주며 성탄 아침에 걸맞은 미소를 얼굴 가득 담았다. 아이들은 각자 선물을 뜯고 감사 인사를 나누었으며 인증샷까지 찍고 나서 우리 집 성탄 전통의식을 마무리 지었다.

 

내 돈 내산의 선물을 전달하고 남편과 셀프 포장까지 하며 수고스러움이 덕지덕지 달라붙은 선물 전달이지만, 사실은 성탄의 아침 내내 아이들을 바라보는 우리 부부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흐뭇하고 행복하다. 언젠가는 첫째, 둘째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막내가 부모 품을 떠나 친구를 찾아 나서며 성탄 선물 대신 용돈을 원하는 날이 오겠지만,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가능하면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은 우리 집 크리스마스 전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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