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둥이네가 주말가족으로 사는 법
"요한아 빨간색 색종이만 모두 모아 봐. 나한테 아이디어가 있어."
형의 깜짝 지령에 두 동생이 바빠진다. 둘째는 빨간색 색종이를 찾느라 바쁘고, 셋째는 흩어진 알록달록한 색종이를 만지고 구기느라 바쁘다.
"형아, 그런데 말이야. 빨간 색종이로 우리 뭐 할 거야?"
"나한테 아이디어가 있어. 색종이 가져오면 내가 길게 연결할 거니까 나한테 전부 다 줘."
아빠의 귀가 5분 전 아이들은 깜짝 이벤트를 준비하느라 야단 법석이다. 현관문 번호키를 누르는 소리가 들리자 아이들은 엉성하게나마 레드카펫을 완성했다.
"아빠, 짜잔! 다녀오셨어요?"
"아빠 짜자잔!"
"아빠~ 아빠아~ 압빠!"
첫째, 둘째, 그리고 몇 마디 말을 할 수 있게 된 막내까지 아빠를 반기며 레드 카펫을 소개한다. 우리 집 설명맨인 첫째가 간단히 작품(?) 소개를 하고 나서야 아빠가 집안으로 발을 내딛는다.
"아빠가 내일 발령지로 먼저 떠날 거니까 우리가 아빠를 위해 레드 카펫을 만들어 봤어요."
"근데 아빠 안 가면 안돼요? 근데 아빠 간식 사 오셨어요?"
아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한동안 떨어져 지낼 아빠와의 작별 의식을 차근차근 해냈다.
아빠는 웃고 있었지만, 미소 뒤에 아내에게는 감추기 어려운 복잡 미묘한 표정을 담고 있다. '뛰지 마라. 싸우지 마라!' 하며 수시로 단속을 해야 하는 아들들과 잔소리와 만담을 넘나들며 혼을 쏙 빼놓는 아내와의 짧은 작별이 시원하기도 섭섭하기도 한 모양이다.
우리 가족은 아빠 홀로, 그리고 엄마와 아이들이 한 팀이 되어 당분간 주중에는 떨어져 지내기로 했다. 남편의 발령 때문이다.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인데, 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낯설고 반갑지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열흘정도의 시간을 지내오며 우리의 짧은 이별을 축제처럼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이들은 레드카펫으로, 그리고 나는 바싹 구운 삼겹살로. 우리 가족은 맛있는 저녁 식사를 나누고 늘 그래왔듯 얼른 자자, 엄마 한 권만 더 읽어 주세요의 실랑이를 지루하게 펼치다가 전날, 그리고 그 전날과 비슷한 모습으로 꿈나라를 여행했다.
자동차로 꼬박 네 시간을 달려야 도착하는 낯선 도시로 남편을 환송했다. 아이들도 저녁에 다시 만날 아빠의 출근길을 지켜보는 것처럼 팔락 팔락 가벼이 손을 흔들며 "아빠 잘 가요." 했다. 그리고 우리는 금방 우리들만의 주중 생활에 적응해 갔다. 남편에겐 조금 미안하지만, 물건을 이리저리 꺼내놓고 제자리를 절대 찾아주지 않기로 결심한 사람처럼 정리와는 거리를 둔 멤버 중 한 명이 잠시 여행을 간 것처럼 집은 한결 깨끗해졌다. 남편이 퇴근을 해서 집으로 돌아온다는 생각을 하면 시계만 바라보며 저녁을 보내지만, 막상 그가 없으니 기다릴 이유가 없어져 오히려 홀가분한 마음으로(조금 더 솔직하게는 포기해 버린 마음으로)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보니 남편을 타지로 보내고 좋은 일만 가득한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다. 그립고 보고 싶은 건 당연한 데다, 곁에서 투덜거리거나 시간을 죽이는 잡담 상대가 없어진 것이 말할 수 없이 섭섭하다. 아이들의 잘못을(내 기준) 침 튀겨가며 낱낱이 고해바칠 이가 바로 곁에 없다는 사실도 너무나 슬프고 반짝반짝 웃으며 잊힐만할 때쯤 사랑한다는 말을 휘파람처럼 날려줄 상대가 곁에 없다는 사실도 깊은 쓸쓸함을 더해준다.
그의 빈자리를 느끼는 건 나뿐만이 아니다. 아침마다 "대장~ 부대장!" 하며 아침 알람을 대신하는 아빠의 목소리도 그리워하며, 캐시워크를 핑계로 밤잠이 들기 전 휴대폰을 슬쩍 쥐어주는 아빠의 너그러움도 아이들은 무지하게 그립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에게 아빠를 그리워하는 내색을 하지 않고 아빠의 빈자리를 또 다른 바쁨과 즐거움으로, 그리고 그간 미뤄뒀던 잠으로 차곡차곡 채우는 중이다. 초저녁 시간을 이용해 옆집 친구도 초대해 보고, 2월의 작별을 앞두고 지인들과의 이른 환송회도 즐겨보고, 묵은 짐을 비워내며 당근 거래를 하느라 낯선 이들에게 문고리 앞을 내주기도 한다. 그리고 나와 아이들은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안방에 모여 책도 읽고 농담도 하고 막냇동생의 재롱을 즐기기도 하며 한참을 웃다가 일찌감치 잠이 든다. 그렇게 시간을 채워가다 보니 벌써 우리의 주말이 다가오고 있다. 주말 가족의 꽃은 역시 주말의 초입인 금요일 아닌가. 온 식구가 손꼽아 기다린 날이다. 짧은 만남 뒤엔 또다시 작별이 있겠지만 우린 제법 잘 적응해 가는 중이다. 몸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서로에게 보내는 사랑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촘촘하게 우리를 연결하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