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니엘라 Dec 21. 2023

공갈 젖꼭지여 안녕

삼둥이 꿈나라 담당자의 긴긴밤



아이 셋을 키웠지만 공갈 젖꼭지가 통한 아이는 셋째뿐이었다.

첫째도 둘째도 한낱 공갈 젖꼭지 따위에 쉽게 위로받는 타입은 아니었고, 공갈 젖꼭지의 도움을 받아 잠이 든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혹시나 해서 구매했던 공갈 젖꼭지들은 오래지 않아 쓸모없는 물건 취급을 받았고, 자연스레 쓰레기통에 갇혀 버리고 마는 신세가 되곤 했다. 성별만 다를 뿐 오빠들과 비슷한 외모의 셋째도 당연히 공갈 젖꼭지와는 거리를 둘 것을 예상했다. 그리고 그 예상은 가볍게 빗나가고 말았다.


우리 집 막내에게 공갈 젖꼭지는 가장 좋은 친구였고, 위로자였고, 입면을 위한 필수품이었다.

모유 수유를 중단하며 자연스레 시작된 공갈 젖꼭지의 사용은 그저 밤잠을 재우기 위해 잠시 사용하는 가벼운 도구였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점차 사용시간과 횟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치아의 수가 늘어나며 아기의 구강 구조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 우려되어(이미 어느 정도 악영향을 끼친 것 같지만) 공갈젖꼭지를 떼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마음먹은 것을 실행하는 데까지는 또다시 한참이 걸려 생후 14개월이 조금 지난 어느 날 드디어 공갈젖꼭지와의 작별식을 가졌다.


공갈젖꼭지를 떼기 2주쯤 전부터 아이에게 이따금씩

"이든이는 언니니까 이제 쪽쪽이(공갈젖꼭지 애칭, 이하 쪽쪽이) 그만할 거야."

"이제 쪽쪽이는 빠이빠이 할 거야. 안녕 할 거야." 하며 반복적으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아이도 어느 정도는 쪽쪽이와의 작별을 감지는 했을 거라 믿고 있지만, 막상 당일이 되니 아이보다 내 마음이 더 어려워졌다. 공갈 젖꼭지와의 이별이 아이에게 너무 갑작스럽고 당황스러운 사건이 되어 버릴까 봐 내 마음은 갈 곳을 잃고 헤매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 이 결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다시 한번 마음에 되새기고, 그날 저녁은 아이와 함께 쪽쪽이 없이 안방으로 입장을 했다. 방에 불을 끄고 입면을 위해 아이를 토닥였다. 아이는 적잖이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쪽쪽이를 달라며 "맘마, 맘맘(아기는 공갈 젖꼭지를 맘마라고 불렀다.)."을 외쳤다. 아이의 울부짖음에 마음이 약해질 뻔했지만, 나는 세 아이의 엄마다. 아이들을 위해 마음을 단단히 먹으면 산을 옮길 의지까지도 있는 삼둥이 엄마이기에 아이를 향해 따뜻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이제 우리 쪽쪽이 없이 코 잘 거야. 이든이 쪽쪽이 없이 코 잘 수 있어."

아이는 엄마가 그러거나 말거나 있는 힘을 다해 울었다. 그리고 나도 있는 힘을 다해 아이를 재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헤맸다. 아이를 안고 흔들었지만 아이는 더 크게 울었다. 아빠가 안아보아도 결과는 같았다. 아이를 다시 뉘어 등을 어루만지고 머리를 쓰다듬었지만 아이는 잠이 들었다가도 깨고 또다시 깨며 울었다. 누워있는 아이의 다리를 부드럽게 주물렀지만 아이는 다시 울었고, 아이를 만지지 않고 가만히 두어도 또다시 울기를 반복했다. 40분쯤 실컷 울고 나서 조금씩 진정되어 가는 아이를 다시 안아 올렸다. 그리고 좌우로 부드럽게 몸을 흔들며 숨소리까지 줄이고 아이가 잠들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아이는 '지쳐서'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모습으로 깊이 잠들었다.  



쪽쪽이를 떼는 첫날, 아이가 얼마나 울어야 하는지 수치화된 자료를 찾지 못해 우리가 상대적으로 지독하게 고생을 한 건지 안 한 건지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우린 그날 밤을 우리가 모두 이긴 싸움이라고 결론지었다. 부엌 상부장 깊숙하게 넣어둔 쪽쪽이를 다시 꺼내지 않은 것만으로도 그날 밤은 성공적이었다.

둘째 날은 15분 정도의 눈물 대치 끝에 아이는 잠들었고, 셋째 날도 비슷한 시간을 버티다 아이는 잠들었다. 그리고 넷째 날, 아이는 더 이상 쪽쪽이를 찾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여전히 어떻게 잠이 들어야 할지 방법을 몰라 헤매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조금은 울었다. 그리고 다섯째 날, 아이는 여전히 칭얼대거나 조금은 울었지만 쪽쪽이의 부재로 인한 어려움은 확연히 줄어든 모습이었다. 아이가 입면을 하지 못해 헤매는 동안 나 역시 같이 허둥지둥 어찌할 바를 몰라 앉았다 누웠다를 반복했다. 그러나 아이는 오래지 않아 잠들었고 내일의 나와 내일의 아이가 더욱 쉽게 잠들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아이가 쪽쪽이와 헤어지던 첫날, 아이는 힘껏 마음껏 울부짖었다. 아이는 자신이 보일 수 있는 '지랄발광'의 레벨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저항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며 그 강도와 모양새는 점차 옅어지고 다듬어졌다.

다남 독녀인 귀한 우리 막둥이를 예뻐하는 마음과, 울리고 싶지 않은 간절함은 늘 내재되어 있지만 이번만큼은 두 눈을 감고, 두 귀를 모두 틀어막은 사람처럼 아이의 고통에 동요되지 않고 버텨냈다. 그리고 우리는 조금씩 '없는 것'에 익숙해져 가는 중이다.



첫째도 둘째도 겪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카테고리의 사건을 온몸으로 겪어보니 육아는 역시 신입이고 경력이고 없다는 것이 깨달아진다. 매일매일이 새롭고 나날이 강도 높은 도전 과제들이 얼굴을 내민다. 뭐 이런 힘든 게 다 있냐며 모든 걸 내팽개치고 전속력으로 질주해 우주 어딘가쯤으로 도망쳐 버리고 싶다가도 쪼로록 귀엽게 난 이를 드러내며 함박웃음을 짓는 아이를 보면 또다시 힘을 내 삶과 육아를 이어간다. 뭐 하나 쉬운 게 없고 뭐 하나 간단히 풀리는 일이 없으니, 10년에 걸쳐 아이 셋을 낳고서도 육아 앞에서는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지 않을 수가 없다. 힘들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아이들 덕분이다.

이전 05화 누가 저 좀 말려주세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