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둥이 육아의 비밀
"그 약한 몸으로 애 셋을 어떻게 키워요? 정말 대단해."
"...."
아이 셋을 올망졸망 데리고 다니다 보면 종종 듣는 말이다. 그럼에도 이 물음에 대한 적절한 답을 찾지 못해 매번 우물쭈물하다 대답할 기회를 놓치고 만다. 상대 역시 뚜렷한 답을 얻기 위해 건넨 말은 아닐 테지만, 티키타카를 중시하는 나로선 '타카'를 놓칠 때마다 상대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을 갖고 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 같은 찝찝함 마저 느껴진다.
아무도 없을 때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나는 정말로 이 약한 몸으로 아이 셋을 어떻게 키우는 걸까?
답을 찾기 전에 나에게 왜 자꾸만 사람들이 약한 몸으로 라는 표현을 쓰는가에 대해 부연하자면... 나는 자타공인 말라깽이다. 의외로 허벅지와 팔뚝에 숨은 살 비슷한 것이 있지만, 전체적인 피지컬은 '말라깽이' 말고는 설명이 어려워진다. 거기에다 잔잔한 다크서클까지 장착되어 있으니(이건 피곤함과는 별개로 유전적인 문제인 것 같다.) 약해 보이고 덜 튼튼해 보이는 모양이다.
자 그럼 다시 질문으로 돌아와서, 나는 이 약한 몸으로 아이 셋을 과연 어떻게 키우는 것일까? 두 가지 정도의 답변을 생각해내본다. 우선은 내가 아이를 굉장히 잘 키우는 편은 아니라고 본다. 좋게 말하면 수수하게 키우는 것이고, 조금 나쁘게 말하면 아이들을 대충 키운다는 뜻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나의 기본적 성향도 있겠지만, 아이가 셋쯤 되니 정말로 외동아들을 키울 때와는 달리 챙기고 싶어도 챙기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고 결국에는 조금은 느슨한 마음으로 아이들과 세상을 대하게 되어버린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결국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는 온전히 부모의 힘 만으로는 키울 수 없음을 깨닫는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안팎으로 함께 힘을 모아 한 아이를 키워내는 것이기에 이 약한 몸으로 나 홀로 아이를 셋이나 키우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결론에 닿는다.
아이들은 늘 함께 키워가는 중이다. 남편과 우리 아이들, 그리고 양가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교회 식구들과 이웃 주민들, 거기에 생판 모르는 행인들까지...
그중에서도 오늘은 함께 키워가며, 함께 자라는 우리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우리는 늘 아이를 키운다고만 생각했지 아이들이 서로를 키우고 다독이며 살아간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런데 요즘 우리 가족을 들여다보면 아이들을 키우는 것은 나와 남편만의 몫이 아니라 그 무게가 아이들 서로에게도 돌아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얼마 전 첫째와 둘째가 유난히 사이가 좋던 날이 있다. 그 시작점은 어디인지 모르겠으나, 그날 첫째 형 기분이 아주 좋았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나는 그날도 '빨리, 빨리'를 입에서 놓지 못해 어쩔 줄을 몰랐다.
"얘들아 빨리 씻자. 누가 먼저 씻을래? 요한이는 엄마가 씻는 걸 도와줄게."
분명 잔뜩 지친 얼굴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첫째가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엄마 오늘은 우리끼리 씻을게요. 조요한 너 지금 빨리 옷 벗고 욕실에 들어오면 내가 형아 포인트 줄게."
일단 동생의 목욕에 대한 책임은 형아 포인트 하나로 엄마에서 형으로 넘어갔다.
"형아 포인트가 뭐야?"
둘째는 솔깃해서 형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
"내가 형아 포인트 줄 건데, 이거 100개 다 모으면 네가 좋아하는 놀이 네 번 해주고, 니 소원도 하나 들어줄 거야. 그러니까 이제 씻으러 가자."
"그럼 지금도 형아 포인트 한 개 줄 거야?"
둘째는 옷을 훌러덩 벗으며 반짝이는 눈으로 형을 바라본다.
"네가 잘 씻으면 주는 거야. 자, 어서."
형아 포인트 도입으로 형님의 권위가 하늘을 찌르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평화롭게 샤워를 하고 나와 '우리 잘했죠?' 하는 표정을 짓는다. 잘했고 말고.
형은 동생에게 형아 포인트를 하나 허락하고 다음 미션을 주기 시작한다.
"요한아 이제 너 밥 먹기 전까지 눈높이 숙제 다 하면 형아 포인트 하나 더 줄 거야. 하루에 형아 포인트는 최대 두 개까지 받을 수 있어. 근데 오늘은 매니 포인트(many point- 문법은 4학년 형아 수준의 문법이니 눈 꼭 감기로 해요 우리.) 데이라서 세 개 까지도 받을 수 있어."
"세 개? 그럼 숙제하고 뭐 하면 세 개 줄 거야 형아?"
"그건 나도 몰라. 내가 좋아하는 행동 하면 또 받을 수 있어."
"형아가 좋아하는 행동? 그게 뭐지? 안마해 줄까?"
"아니야, 지금은 숙제부터 해, 조요한."
동생에게 숙제를 시켜주고 형은 방으로 향한다. 첫째도 한참을 나오지 않기에 공부를 하는가 싶었는데, 조금 있으니 직접 만든 형아 포인트 장부(?)를 가지고 나온다.
"엄마, 이거 잘 잘 보이게 냉장고에 붙일게요."
두 아들은 저녁 내내 형아 포인트를 논하며 비교적 평화로운 저녁 시간을 보냈다.
동생이 덧셈을 하며 끙끙거리자, 형은 자기가 하던 공부를 제쳐두고 나와 동생에게 덧셈 꿀팁을 전수해 준다. 자기가 하던 공부를 제쳐두고 나온 부분이 살짝 아쉽지만, 동생에게 가르쳐주려는 그 마음이 고맙다. 막둥이 아가씨가 걸음마를 하며 자꾸만 넘어지자, 작은 오빠는 그게 안타까워 자꾸만 아기 옆에 서서 손을 잡아주며 걸음마 특훈을 시킨다.
형아포인트며 걸음마 특훈이며 아이들은 어디서 많이 본 걸 조금씩 따라 하며 동생을 돌본다. 엄마가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빠가 했던 것 같기도 한 육아의 기술들을 각자의 방식대로 만들어내 서로가 서로를 돌본다. 그렇게 정신없고 긴 저녁 시간은 아이들 덕분에 조금 더 쉽게 흘러간다.
혼자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세 아이가 저녁 내내 나만 바라보며 돌봄을 기다리고 있었다면, '이 약한 몸'으로는 단 한 명도 제대로 돌볼 수 없었을 것이다. 아이들도 서로가 서로를 돌보고 키워내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오늘도 아이들 덕분에 삼둥이 육아를 할 맛이 나고, 할 용기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