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둥이 엄마의 멘탈 고속 낙하
"나 요즘 말이야. 정말로 미쳐 날뛰는 것 같아."
하는 나의 말에 친구는 내가 그만큼 바쁘고 하루하루를 스펙터클하게 보낸다는 뜻일 거라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아주 잠깐 동안은 위로가 되었지만 이내 마음은 또 살살 달아오른다. '도저히 못하겠네 진짜.'
아이 셋을 키우다 보면 마음이 밑바닥까지 고속 낙하하는 일들이 생기곤 한다. 아이의 수가 문제가 아닐 테지. 아이가 하나라도 둘이라도, 서넛이라도 엄마 마음이 툭 툭 떨어지는 일은 육아맘이라면 일상다반사라 할 수 있지. 그럼에도 늘 내 아픔과 내 고통은 세상에서 가장 크게 보이는 게 순리다. 아이 셋을 키우는 일은 일상이 참 알록달록하고 새롭고 신비하고 사랑스럽고 좋지만, 가끔은 정말 마음과 몰골이 잿빛으로 물든다. 나의 우선순위는 늘 아이들이니까, 아이들을 챙기다 보면 샤워 시간을 놓치고 아이들이 모두 잠든 후 씻어야지 다짐하지만, 아이의 등을 토닥이다가 내가 제일 먼저 잠드는 일들이 허다하다 보니 내 몰골은 점점 어려워지는 수밖에. 나를 잘 챙겨야 아이들도 잘 챙길 수 있다는 나 이외의 모든 사람들의 애정 어린 조언이 귀에서 뇌까지 전달이 잘 안 되는 통에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또 그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결국은 내가 자처한 일.
나에게는 주기적으로 미쳐 날뛰는 시기가 찾아오곤 한다. 아이들과 부대끼는 시간들을 자연스럽게 부드럽게 잘 이어가다가도 한 번씩 모든 게 눈에 걸리고 모든 일이 잘 용납되지 않는 때가 온다. 우리 아이들은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는 건지, 나는 왜 이렇게 아이들에게 인상만 구기고 있는 건지, 우리 아이들은 왜 이렇게 정리를 안 하는 건지, 아니 도대체 6층이나 되는 집에 살면서 왜 이렇게 뛰어다니면서 장난을 치는 건지.
그날이 그런 날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하나도 성에 차지 않는 저녁이었다.
아이들의 요구를 단 하나도 제대로 만족시킬 수 없는 날이었고, 큰 아이 둘은 해야 할 일들을 온몸으로 거부하고 있었다. 저녁을 준비해야 하는데 둘째 아이의 공부를 봐줘야 했고, 막내의 요구를 들어줘야 했으며 첫째가 흩어놓은 옷가지와 물건들을 제자리에 두도록 잔소리까지 곁들여야 하는 피곤한 저녁이었다. 저녁 식사가 끝나면 아이들에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지 않고 자유롭고 편안하게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각자의 과제를 일찌감치 끝내라 했던 건데, 그러다 보니 저녁 식사를 준비하며 아이의 공부까지 돌봐줘야 하는 복잡한 상황을 만들어낸 것이다. 내 뜻대로 하나도 되지 않는 저녁이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화를 돋구었다. 게다가 김치전과 고구마 전이라는 손 많이 가는 기름 요리를 내가 왜 그 바쁜 시간에 두 가지나 하려고 마음먹었는지 후회가 밀려왔다. 씩씩 소리를 내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났다. 무슨 영문인지 둘째 아이는 숙제를 하다 말고 눈물을 뚝뚝 떨구고 있었다. 주방과 공부방을 왕복으로 몇 번이나 오갔는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드나들었다. 그리고 잔뜩 무거워진 내 마음은 내려앉을 대로 내려앉았다. 결국 아이에게도 들릴 한숨 섞인 혼잣말을 내뱉었다. "미안해, 엄마가 최선을 다하는데도 너희들 요구를 다 못 들어주겠어." 아이에게 들리지 말았어야 하는 말인데, 내 감정에 깊이 잠겨 아이의 귀와 마음을 지켜줘야 한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 말을 내뱉었다고 내 마음이 괜찮아졌을까? 아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때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혼자만의 시간이었다. 뚜렷한 목적이 없는 분노와 끓어오르는 마음의 불꽃을 차분히 식힐 시간이 필요했다.
아이는 방에서, 그리고 나는 다시 주방에서 각자의 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흐른 뒤에야 우리는 각자의 웃음을 되찾았다. 아이는 그로부터 십분 쯤 지나자 배시시 웃으며 방에서 나왔다. "엄마, 제가 깜빡하고 내일 숙제까지 한 페이지 더 해버렸어요. 히히." "그랬구나, 수고했어. 고구마 전 먼저 먹어." 우린 각자의 시간을 뒤로하고 서로의 마음을 녹이는 일은 함께했다.
열불이 터지던 저녁을 또 한 번 넘기고 나니 생각이 많아진다. 내가 정말로 잘하고 있는 건지, 세 아이 육아의 모범답안을 찾아 깊고 깊은 사고의 숲을 헤매기 시작한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보살피고 따뜻하게 대하는 일은 자신이 있지만, 아이들과의 갈등 앞에서, 그리고 내 체력의 한계 앞에서 맥없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 내 자신이 한없이 작게 느껴진다. 나에게 세 아이를 키울만한 자격이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다 보면 이게 바로 현실 육아임을 뼈저리게 깨닫는 순간이 온다. 현실은 늘 아름다울 수는 없는 법이고, 지지고 볶고 눈물 콧물 좀 짜 봐야 진짜 육아라는 걸 깨닫는다. 이런 구질구질한 순간들이 한 번씩 다가와 줘야 다시금 겸손한 태도로 아이 셋 엄마의 길을 지켜나갈 수가 있다. 오히려 다행인 순간들이다.
쉽지 않지만 오늘도 또 해내고야 말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이 땅의 엄마들이여, 치얼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