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내가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
아침 바람이 차다.
이번 주 내내 봄답지 않은 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런 날씨와는 상관이 없다는 듯 첫째 아이는 샛노란 후드티 한 장만 걸치고 집을 나선다.
“밖에 추운데 외투 좀 입으라니까.”
“지금 너무 더운데…. 아, 알겠어요 입고 갈게요.”
집안의 온기에 속아 사흘째 외투 없이 등교를 하더니 오늘 아침부터 목에서 쉰 소리가 나오는 첫째 아들이다. 좋은 말로 외투를 권할 수도 있었지만, 아이들이 눈을 뜬 7시 30분부터 시작해 50분째 다양한 지령을 내리고 구슬리다 보니 내 안에는 더 이상 긍정의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았다. ‘다정한 엄마 달력’의 오늘 날짜에도 엑스표를 그려본다.
요즘 부쩍 혼날 일이 많아진 둘째에게 자꾸만 마음이 간다. 도대체 왜 저러나 궁금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지만 아주 조금은 얄밉기도 하다. 일 학년쯤 되면 이런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닌가? 일 학년쯤 되면 이런 일은 혼자서 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며 내 안에 갖춰진 기준에 어긋날 때마다 둘째에게 한 마디씩 던지며 아이의 기를 풀썩풀썩 꺾게 된다. 첫째와 둘째 사이의 터울은 네 살, 둘째와 셋째 사이의 터울은 다섯 살. 터울이 큰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둘째와 셋째를 기르며 과거 첫째의 모습이 전혀 생각나질 않아 그 나이에 어느 정도의 발달 과정을 겪었는지 전혀 감이 잡히질 않는다. 타인의 눈에는 아이를 셋이나 키우고 있으니 베테랑 일 거라는 기대감이 있겠지만, 사실은 첫아이를 키우는 엄마보다 모르는 것들이 더 많은 어리숙한 엄마다. 첫째 아이를 키운 지 너무 오래되어 기억이 나질 않고, 그렇다고 매 순간 육아서를 들여다보기엔 자존심이 상한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앞으로도 뒤로도 꽉 막힌 육아 초보가 되어 버린다. 그러다 보니 가볍게 이해하고 지나갈 일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이에게 한마디, 두 마디 반갑지 않은 소리를 보태게 된다.
아이들에게 꼭 하지 않아도 될 잔소리를 건네거나, 목청을 한껏 뽐내며 야단한 날이면 글을 쓸 용기가 나지 않는다. 특히 아이들과 관련된 글을 쓸 때면 마음이 더 어려워진다. 오늘만 해도 분명 쓰고 싶은 글이 있었다. 아이들과 경험한 소확행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싶어서 사진도 저장해 두고 글감 정리도 어느 정도 해놓은 참이었다. 그런데 막상 이른 아침부터 아이들에게 사나운 엄마 노릇을 하고 나니 우리의 즐거웠던 일을 글로 옮길 엄두가 나지 않는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쓰다 보면 결국 내 마음도 즐거워질 것을 알지만, 잔뜩 가라앉은 감정을 끌어올리는 일이 지나치게 수고스럽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어려운 건, 필행 일치가 되지 않음이 나 자신을 가식적인 사람으로 몰고 가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다. 이런 이유로 오늘도 결국 계획했던 글쓰기를 내려놓는다.
내가 품었던 감정과 한 발짝 떨어져 상황과 감정을 객관화하며 어떤 글이라도 쓸 수 있어야 하는 게 작가다. 일기장을 기록하는 게 아니라 삶에서 끌어올린 이야기들과 생각을 정리한 어엿한 에세이를 쓰려면 당장의 감정과의 분리가 먼저다. 그럼에도 오늘의 나는 아이들의 뒤꽁무니를 떠올리느라 마음을 바싹 졸이며 글 한편 대차게 뽑아내질 못하는 초보 엄마이자 초보 작가임을 다시 한번 인증한다.
아쉽지만 오늘 계획했던 즐거웠던 일에 대한 기록은 다음번에 허락될 지면에 옮겨야겠다. 조금 더 작가 다운 마음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