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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니엘라 Mar 28. 2024

삼둥이네 라면 끓이기 대회

삼둥이네가 함께 놀고먹는 법

"엄마, 아빠! 이번 주 일요일이 라면 끓이기 대회인 거 아시죠?"

5학년 형아인 우리 집 첫째가 자꾸만 저녁 식사로 라면을 끓여달라길래 일주일 후 주말에 엄마 아빠가 라면 끓이기 대회를 할 테니 그때까지는 라면을 참아 보자고 했다. 아이는 일주일을 잘 참았고, 라면 끓이기 대회가 있기 나흘 전부터 재차 확인을 해왔다. 진짜 경연 대회를 할 거니까 엄마 아빠가 준비를 좀 잘해달라는 이야기도 했고, 집에 있는 옥주부 레시피 책을 참고해도 좋다고 했다.

우리 부부는 라면 취식을 일주일 늦춘 것이 그저 만족스러웠고, 아이는 이 대회에 진심이었기에 그저 만족스러워했다.


대회 당일은 일요일 저녁이었다. 교회를 다녀와 청소를 하고 아이들이 놀이터에 간 사이에 우리 부부는 각자 비밀스럽게 메뉴를 구상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가족 모두가 이 대회에 진심이었던 것 같다.) 남편은 옥주부 레시피를 흉내 낸 라면 볶음밥을, 그리고 나는 냉파를 위한 차돌 짜장라면을 선택했다.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라면을 조리했다. 사실 조금 피곤해져 있던 나는 대충 고기를 굽고 짜장라면을 볶아 겨우겨우 구색만 갖추었다. 정반대로 남편은 조리법에 어긋나지 않도록 재료를 충실히 준비했고 정성스레 요리를 했다. 데코까지 훌륭하게 해낸 남편의 요리에 비하면 내가 만든 짜장 라면은 누가 먹던 걸 가져온 것처럼 형편없는 모양새였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양손의 엄지를 들어 올리며 맛있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아빠가 만든 메뉴는 두세 번씩 리필해서 먹었고, 엄마 메뉴는 여분이 없었기에 한 그릇만 맛있게 시식해 주었다.  

시식이 끝나자 아이들은 자기들 방으로 건너가더니 둘이서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근엄한 표정으로 돌아온 첫째와 둘째는 점수를 확인한 뒤 심사평을 하겠다고 했다. 그 모든 절차를 얻어내기 위해 엄마와 아빠는 "점수~ 주세요!"를 리듬감 있게 외쳐야 했다.

"자, 하나 둘 셋! 점수~우~ 주세요오!!"

"먼저, 아빠의 점수와 심사평을 들려 드릴게요! 제가 드린 점수 98점과 요한이 점수 95점을 합해 193점 되겠습니다. 아빠 메뉴는 아주 창의적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점수를 많이 드렸어요."

첫째는 요리 대결 방송의 사회자라도 된 듯 깔끔한 진행을 이어나갔다.

"자, 이번엔 엄마 점수입니다. 외쳐주세요!"

시키는 대로 잘 따르는 엄마 아빠는 다시 리듬감 있는 구호를 외쳤다.

"점수~우~ 주세요오!!"

"엄마 점수는요, 제가 드린 점수 95점과 요한이가 드린 점수 99점으로 총점 194점 되겠습니다. 우승은 엄마입니다! 엄마 메뉴는 맛있긴 했지만 너무 평범했어요. 그래도 요한이가 엄마한테 99점을 드려서 엄마가 우승할 수 있게 되었어요. 우리가 준비한 상품 받아주세요!"


첫째 아이의 똑소리 나는 진행 덕분에 재미있는 쇼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아이들이 꼬깃꼬깃 모아둔 용돈으로 산 1등과 2등 상품을 수여했고, 이것으로 즐거웠던 라면 끓이기 대회의 막을 내렸다. 정말 멋진 대회였고, 거기엔 그보다 더 멋진 아이들이 있었다.


비록 가족끼리만 모여서 진행한 소소한 경연 대회였지만 그 속에서 첫째 아이의 주도성과 기획력, 그리고 다정함이라는 숨은 재능을 발견했고, 둘째 아이의 세심한 관찰력과 협동심을 발견해 냈다.  아이들은 놀면서 자란다는 말, 그리고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가장 좋은 학교라는 말이 '라면 경연 대회'와 같이 가끔씩 나오는 성공적인 날들 덕분에 만들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에게 받은 선물은 각기 종류가 다른 과자 한봉 씩이었다. 그리고 그 과자는 수상자인 우리 부부가 아닌, 우리 아이들이 맛있게 먹어 주었다. 아이들의 주도하에 이뤄진 가족 행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남겨 주었다. 함께 하는 시간의 소중함, 그리고 서로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여유롭게 나눈 달콤한 대화까지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는 귀한 선물 보따리였다.


아이가 셋이 된 이후로 주로 시끌벅적하고 정돈된 분위기의 삶을 지속해 내기는 어려운 편이지만, 마음 한가득 채워주는 아이들의 떠들썩한 웃음소리와 언제나 일관되게 뿜어내는 아이들의 사랑이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자, 그럼 다음 달엔 어떤 가족 행사를 한번 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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